03에서 아감벤은 정경(正經, canon: 기독교에서 공식적인 경전으로 인정받는 문서이나 가톨릭은 73권 그리고 개신교는 66권을 채택)의 복음서 이외에 소위 외경(外經, Apocrypha: 정경에 들지 못한 문헌으로 주로 개신교에서 부르는 명칭이나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제2경전으로 취급함)에 빌라도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예로 드는 외경은 [니고데모 복음서]이다.
복음서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를 만나러 온 유대교 지도자 회의(산헤드린, sanhedrin: 유대교 법에 의해 세워진 23-72명의 지도자, 재판관 단체)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에게 중생, 거듭남의 의미를 물어보고, 답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니고데모 복음서가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보다 더 상세하게 예수의 재판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예수가 빌라도 앞으로 나아갈 때 마치 기적처럼 기수들이 들고 있던 깃발들이 일제히 예수를 향해 펄럭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열두 명의 개종자들이 모여 예수가 (마리아의) '간음에 의해 태어난 아들'이라는 주장에 자신들이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고 증언하며, 저자인 니고데모도 역시 직접 예수를 위하여 증언한다. 또한 원고 측 유대인--안나, 카이파, 유다, 레비, 알렉산더, 네프탈림, 자이로--과 빌라도 간의 팽팽한 대립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빌라도는 재판장에서 때로 자제심을 잃은 채 매우 노골적으로 예수를 편들기도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아내가 '신을 두려워하여 유대교를 신봉했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는 빌라도와 예수 사이의 대화가 빌라도의 질문 이후 갑자기 뚝 끊어지는데 반해 니고데모 복음서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며 그 덕분에 대화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 부분은 아감벤이 04에 나오는 [빌라도 행전]의 내용과 착각한 것 같다. 실제로 [니고데모 복음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니고데모와 가말리엘과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에수의 부활 사건과 예수가 지옥에서 일으킨 기적에 대해 말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빌라도 행전] 제1장 서두에는 "안나스, 가야파, 세메스, 타타에스, 가말리엘, 유다스, 레비, 네프탈림, 알렉산데르, 야이루스 등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들이 대회의에 모였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많은 행적들을 고발하였다."로 시작한다. 1-11장까지는 재판과 처형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12장에는 잡혀온 요셉이 부활 사건을 증언하는 장면과 이를 네고데모가 보증하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인터넷 검색으로 한국어 번역 전문을 볼 수 있다.)
04에서 아감벤은 [빌라도 행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고대 기독교 문헌 중에서는 성경과 외경 이외에도 위경(僞經, Pseudepigrapha: 거짓이나 허구인물로 쓰인 문서)이 많았는데, 빌라도 행전은 바로 위경에 의해 전승된 것으로 설명한다. 전승에 따르면 빌라도와 그의 아내 프로클라는 예수의 신성을 알아보았으나 유약함 때문에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한다. 초대 교부 터툴리아누스는 이 전승에 의거하여 빌라도가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처형하였지만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는 그리스도인'이었던 빌라도가 티베리우스 황제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의 기적과 부활을 보고했다고 말한다.
빌라도가 황제에게 보낸 것으로 여겨지는 편지, 즉 '빌라도의 파라도시스(넘겨줌)'는 진위 여부가 의심스러운 초안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모두 서두에 이 편지 때문에 티베리우스가 격노했다는 말로 시작된다. 황제는 빌라도를 포박하여 로마로 압송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그에게 묻는다.
'너는 예수가 그토록 위대한 기적들을 행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그를 못 박히도록 내버려 둔 것이냐' 빌라도는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전가하면서 예수는 '우리가 숭배하는 어떤 신보다 위대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빌라도가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이런 백색 전설은 그를 유대인과 이방인에 맞서 기독교를 지킨 비밀스러운 수호자로 만들고 있다.
이 전설의 마지막에는 황제가 빌라도의 목을 치라는 명을 내렸을 때 빌라도가 예수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구원을 약속하는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민족의 모든 세대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이 나에 대해 했던 모든 예언들이 너의 치하에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내려가 너의 이름을 부리지 않는 모든 자들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불러 심판할 때에 너는 나의 증인으로 함께 있을 것이다."
아감벤은 빌라도에 관한 위경들, 콥트어로 기록된 [가마리엘 복음서]와 같은 백색 전설들이 만들어진 것은 초대 기독교인들의 숨은 의도 즉 빌라도가 이미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다음 처형을 당했기에 더 이상 로마인들은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로마 제국에 널리 유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첫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로마인의 박해를 피할 구실을 만들고, 둘째 이유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책임을 오롯이 유대인들에게만 돌리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한국의 기독교인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이집트의 콥트 교회(Coptic church)가 빌라도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그리스 정교회가 10월 27일을 빌라도의 아내를 위한 축일로 봉헌하고 아직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 일은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아감벤의 이런 해석은 마치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개념인 시뮬라크르(Simulacre: 원본이 없는 모방물이나 이미지)와 시뮬라시옹(시뮬라르크가 현실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과정)의 관계와 같다. 빌라도에 관한 위경이나 백색 전설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과는 상관없는 가상적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이미지가 실제 빌라도와는 상관없이 초기 기독교나 이집트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 현실적으로 적용되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만약 누군가 지금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면 거기에 기록된 70명의 인물의 사실성에 얼마만큼 근거하여 사가가 묘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마천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된 인물인지 구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