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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인 Apr 17. 2024

걸작일까? 다시 읽어보자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한승혜 외 7인(문예출판사 2023년)    

  책의 제목이 강렬하다. 걸작들인데 누군가를 모욕한다니.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두 단어지만 이 경우는 가능하다. 즉 모욕 대상이 여자이니까. 역사에서 오랫동안 여자는 열등한 존재였다. 남자보다 힘이 부족할 뿐이었는데, 그 힘에 눌려서 모든 것이 부족한 존재로 만들어져 왔다. 인간과 동물 사이 어디쯤에 있는 존재. 문명사회인 현재는 다를까.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이 알려준다. 모두 8명의 글쓴이가 각자 고른 걸작들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모욕받는지를 조목조목 알려준다.

     

  첫 장은 한승혜의 <말괄량이는 정말로 길들었을까?>이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분석한다. 카미유 클로델, 버지니아 울프, 젤다 피츠제럴드 등 여성 예술가들의 비극적 삶과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카타리나를 함께 보여준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여성 예술가들은 여성이었기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남성들의 보조로 소비되다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지금이라면 ‘걸크러쉬’라고 환호를 받을 카타리나는 말괄량이 취급을 받는다. 여성들은 그렇게 취급받아왔고 이런 ‘걸작’을 통해서 그런 사고는 ‘학습’되어왔다. 그저 재미있다고만 생각하며 읽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고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2장은 <‘미투 이후’의 세상에서 《달과 6펜스》 읽기>이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예술가가 갖는 영혼의 진수를 보여준다며 많은 사람들이 손에 꼽는 책이다. 이 걸작이,   여성을 착취한 비도덕적인 예술가를 어떻게 옹호하고 미화하고, 나아가 그런 사고를 전 세계에 감염시켰는지를 글쓴이 박정훈이 알려준다. 이 글을 읽고 나면 ‘걸작’에 대한 회의감과 허무감이 든다. 타이티에서 어린 여성들의 성을 착취했던 폴 고갱을 모델로 삼았고, 그래서 폴 고갱에게도 면죄부를 주어 버린 책이다.
 4장 <‘위대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글쓴이 심진경은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알려준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왜 개츠비가 위대한가에 대해서다. 이 글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개츠비는 남성들의 로망이 빚어내는 '위대함'을 보여주는 인물인 거다. 상대인 여자는 누구라도 괜찮다. 이 소설 속 여자들은 다 ‘속물’이니까.
 6장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로운 남자’라는 환상>에서는 많은 남성들이 인생의 책으로 꼽으며 환호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여성은 그저 남성의 ‘자유’의 대상이고 그 욕망을 정당화, 신성화시켜주기까지 하는 ‘비인간’이라는 것을 조목조목 보여준다.

7장은 <식민지 남성성과 미소지니>이다. 이상의 <날개>는 첫 구절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이다.  스스로가 부여한 이 구절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우리는 이상을 안타깝게 요절한 ‘천재 작가’로 배워 왔고 들어 왔다. 이런 우리의 학습된 고정관념을 정희진이 샅샅이 깨트린다. 주인공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아내의 부양을 받는 처지이면서 ‘성노동’하는 아내를 은연중에 부도덕한 가해자로 인식시키고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피억압자로서 탈출을 꿈’ 꾸며(p.204) ‘초월적 자아로 포장한다.’ (p.193) 정희진의 글은 늘 깨달음과 영감을 준다. 나 자신의 관습적이고 기성적인 사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정희진은 빛을 빌려 사물을 보는 신체의 눈뿐만 아니라 다르게 보고 꿰뚫어서 보는 사고의 눈을 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읽고 생각할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져준 책이었다.  별생각 없이 읽고, 지은이가 던져주는 사고를 따라가면서, 그 주인공에 그저 공감하고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동정하면서 종종 자신을 등장인물들에 동일시하기까지 했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매 장마다  두 번씩 열이 났다. 이 걸작 속 여성들은 왜 이런 대우를 받는 거야 하면서, 또 왜 나는 이전에 이런 것도 모르고 그저 재미있게만 읽었던 거야 하면서다. 깊은 한탄이 나온다.  8명의 작가 중 6명은 여성이고 2명은 남성이다. 독자에 따라서 작가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남성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합리적인 반론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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