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일상에서 나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맥북을 샀다. 오늘 산 것은 아니고 며칠 전에 사서 정확히는 엊그제에 발송 완료 되었다. 맥북을 시킨 것은 일본에서. 충동은 아니었다. 본체 겸 노트북으로 사용하고 있던 기존의 노트북 화면이 나가면서 몇 주전부터 고민을 지속해 왔는데 마침 톡학생증을 발급하면 30만 원 할인된 맥북을 구입할 수 있어 바로 주문한 것이었다. 맥북을 백만 원에 살 수 있다니! 아이패드도 아니고 맥북을. 컴퓨터를 찾아 지난 몇 달을 방황하던 나에게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백만 원밖에 안 하는 노트북인 만큼 최신식 노트북은 아니었다. 소위 깡통 맥북이라 불리는 맥북 에어 M1 13인치 256기가 그래픽 8기가의 가장 낮은 사양의 맥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 깡통을 백만 원이나 주고 산 것에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첫째로 원래 가지고 있던 윈도우 노트북을 사용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사용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 그리고 둘째는 포토샵이 가능한 서브컴을 찾고 있었기 때문. 마지막으로 셋째는 아이폰 유저였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그러겠지. 그래도 노트북인데 용량 256기가는 너무 적지 않나요? 백만 원 부을 정도면 돈 좀 더 보태서 더 좋은 맥북 사지. 걱정 마시라 나는 게임도 하지 않고 오로지 문서 편집만 주로 진행하며 프리미어는 다루지 않고, 단순 포토샵 유저이므로 간단한 사진 편집만 가능하면 오케이다. 즉 용량이 충분치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글 작업은 본래 가지고 있던 갤럭시탭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 워드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노트북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뽀대 난다. 이 자그마한 깡통이 생긴 것이 기쁜 나머지 오랜만에 브런치 글도 쓰고 있으니 정서적 건강에도 좋고 그냥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새해가 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나는 1월 1일부터 연극 연습에 돌입하여 40페이지가량 되는 대본을 각색하고 분석하고 정리하는데 바쁜 한 달을 보냈다. 그 사이 일주일 가량 후쿠오카도 갔다 왔다. 좋을 줄 알았던 일본 일주일 여행은 친구와 여행 스타일이 맞지 않는 바람에 곤욕을 겪었다. 마지막 날 즈음에는 서로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여행 초반에 나는 계획을 짰고 친구는 내 계획을 그대로 수용해 주었지만 가끔씩 내뱉는 친구의 솔직한 감정, 부정적인 감정이 자꾸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뭐를 싫어해. 음 별로다. 이런 말들이 하나씩 축적되다 보니 나 또한 예민해졌다. 나이가 드니 사소한 것에 안 맞는 것에 쉽게 위축되어 버리고 마는 것 같다. 나의 자아가 그만큼 유연해지지 못한 것이겠지. 이젠 누군가에 나를 맞추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것을 잘해야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다 보면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두려워지곤 한다.
그렇다고 아예 끔찍했던 것은 아니다. 좋았던 기억도 많다. 일단 수족관에서 본 돌고래 공연은 내 일생 본 동물원 쇼 중에 가장 재밌었다. 사고 싶었던 소품도 많이 샀고 온천도 세 번이나 했다. 혼자 여행하며 친구의 위시리스트를 대리 구매해 주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본어를 잘한다며 현지분에게 세 번이나 칭찬을 받은 것도 뿌듯했다. 그 외에 규카츠, 초밥, 오니기리와 같은 맛있는 음식들도 일주일 동안 꽉꽉 채워 먹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날이 흐릴 것은 뭐람. 그건 조금 아쉬웠고 고기를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육식 식단만 고집하다 보니 변비에 걸린 것도 슬펐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장이 활발히 운동하는 것을 보며 내 몸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밌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 소품샵들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며 빨리 가자는 눈빛을 보낸 친구가 가장 속상했을지도. 다음에는 혼자 느긋하게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꾸준히 기록을 작성하는 것을 결심한 것은 사실 1월이다. 새해니까!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연극 연습 때문에 바빠서 여유가 생긴 이제야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두었던 두 개의 다이어리도 애진작 삼 주나 밀려버렸다. 역시 연극은 참 힘들다. 졸업 전 마지막 연극이라는 생각이 드니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색하다. 나의 삼 년을 함께한 연극부에서 3월부터는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삼 년이면 많이 한 거지. 좋은 추억보다 안 좋은 추억이 많았는데 이것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브런치에는 내가 우울한 이유가 연극부 때문이라는 글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었네요.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이번 방학에 연극 연출을 할 것이라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4학년이 아직도 동아리를 하냐는 놀람이 담긴 반문을 얻었다. 나도 안다. 이런 사람이 흔치 않다는 것을. 4학년은 취준을 해야 할 시간이죠. 암요. 그러나 나도 모르게 연극과 진득한 정이 든 것 같다. 내가 연극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삼 년이 지났다. 나는 연극을 싫어하나?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는 연극을 업으로 삼고 싶은가? 그건 아니다. 연극이 재밌나? 음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연극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술 좋아해요? 아니요. 그런데 분위기는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