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걸음 더 엄마의 길로
아침에 일어났는데 약간 목이 칼칼하고 이불 위로 나온 코끝이 쨍했다. 쌀랑한 아침 공기가 진. 짜. 가을이 왔다는 걸 알려줬다. 10월 그것도 하물며 절반이 지난 10월의 중순에 가을을 처음 느끼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올해는 참 가을이 늦게 왔다.
원래도 가을을 좋아했지만 올해 더더욱 그 존재가 감사한 것은, 가을이 왔다는 것은 지긋지긋한 모기와의 전쟁이 끝이 보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아. 올해 정말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새벽마다 내 귓전에서 알랑거리는 모기들. 아인이 때문에 모기향을 피울 수 없다는 걸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어디 숨어 있다가 새벽마다 공격을 해댔다. 모기향도 피울 수 없고 불도 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아인이를 최대한 등지고 휴대폰 불빛으로 방 이곳저곳을 비추며 손톱보다도 작은 적들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혹시나 운이 좋아 벽에 붙은 적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아인이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데시벨로 딱 한 번의 기회에 적을 소탕해야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거의 매번 전쟁에서 패하며 내 팔과 엉덩이와 이마, 심지어는 발가락과 겨드랑이까지 적들의 밥이 되었었다. 몸은 긁은 자국으로 울긋불긋 해졌고 가뜩이나 부족한 잠은 새벽의 전투로 더욱 줄어 정신이 피폐해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찾아온 가을 소식이니 이건 뭐 웬만한 주식 보유종목 상한가보다 반가운 일이었다.
내가 모기를 극혐하는데는 어릴 때 트라우마가 한몫을 차지하는 것도 있다. 파티마병원 뒤 주택 2층에 살 때니까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통금시간인 6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여름이었고 해는 늦게 졌고 게다가 모든 친구들이 아직 숨바꼭질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에 나 혼자 집에 가는 게 무진장 싫었다. 안되는 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빠 퇴근시간인 6시를 넘겼고 결국 나보다 먼저 도착한 아빠는 집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폭력적인 일이지만 그때는 사실 나처럼 쫓겨나 문 앞에서 엉엉 우는 아이들이 꽤나 있었다. 그래도 동생처럼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여하튼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나는 거실 문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쭉 깔아놓고 엄마가 몰래 내어준 얇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여름날 신나게 뛰어놀았으니 땀범벅이었고 이는 모기들에겐 동네 축제 바비큐 냄새 버금가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피곤해 지친 나는 실신에 가깝게 잠이 들었으므로 모기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따윈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눈이 잘 떠지지 않고 자꾸만 침이 흘렀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뭔가 부어 땡땡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10살 인생 처음이었다. 살짝 문을 열어 본 엄마는 내 얼굴을 보고는 말 그대로 아연실색을 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심각한 전염병에 걸린 줄 알았단다. 그랬다. 나는 얼굴과 귀와 목, 그러니까 이불을 덮지 않았던 목 윗부분 거의 모든 곳에, 정말 바늘을 꽂을 공간만 있어도 모기가 침을 꽂아 내 피를 빨아먹었다. 그때 동생이 세어본 바로는 50군데를 넘게 물렸다.(모기약을 바르며 하나씩 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가려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열이 나고 팅팅 부어서 물을 마시기도 힘들었고 앞도 잘 안 보였다. 난 그렇게 모기의 무서운 맛을 봤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유독 모기를 싫어함과 동시에 무서워하게 되었다. 여름이면 매일 모기 물린 곳이 없나 살펴보고 물린 개수를 세아리고 모기약을 열심히도 바르고 퇴치제도 늘 지니고 다녔다. 다시 모기들의 만만한 밥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부단한 노력 끝에 그럭저럭 모기로부터 안전하게 지내오고 있었는데 올해는 정말이지 그 옛날의 악몽이 되살아 날 만큼 모기에게 패배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화나고 짜증 나고 신경질 나고 열받고 가질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2021년의 여름밤. 그런데 내가 올해 처음 모기에게 물린 걸 발견했을 때 한 것은, 아인이 침대에 있는 아기용 모기장을 들추며 아인이는 물린 곳이 없나 확인한 것. 물린 곳이 없구나. 다행이다. 생각한 것.
작년 여름,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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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의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