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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Dec 12. 2023

수학 파이널 4시간 전

불안한 마음을 달래가며 쓴다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시험 공부를 핑계로 하루에 30분 좀 넘게 걸리는 글 한 편 쓰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게 너무나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계속 미뤄왔다.


내가 정말로 공부를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시험이 다가오기 전 막판으로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지는 게 좀처럼 달래지지 않는다. 냉정하게 잘 생각해보면 시험 난이도가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많이 쉬운 편이고 게다가 추수감사절 연휴 이후 2주 동안 꾸준히 공부를 해온 덕에 성적을 잘 못 받는 거에 불안할 필요가 없고, 시험 성적 좀 안 나와봤자 인생에 끼치는 악영향이라고는 미래에 후회할 거리들을 얹는다는 것 뿐이겠다.


전역 후 첫 학기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과거에도 나를 좀먹던 문제들에 시달린 시간이었다. 단지 차이라면 끊임없이 문제들에 대해 인식하고 별로 영향이 없게하도록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는 거지만. 시험이 고작 몇 시간 남은 지금, 아니 한 일주일 전부터 느껴온 이 긴장의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 긴장을 별 거 아닌 것처럼 느끼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시험의 중요도를 절하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지만,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경사로를 따라 굴러 내려가는 바퀴처럼 어떤 외부의 작용이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처럼 내 앞에 다가온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게 된다.

 

힘들게 만들어놓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추수감사절 이후로 원래대로 돌아와버렸다. 이쯤되면 나는 낮보다 밤에 더 잘 맞는 사람인건가 싶기도 하고. 낮에 맞춰서 돌아가는 세상의 시간선에 따라가야하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놀아야해서 한시라도 아까운 해가 떠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이기 위해 어떻게든 일찍 일어나던 어렸을 적의 관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험이 대부분 아침에 몰려있어 패턴을 다시 되돌려보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살짝 밤에 시험을 본다는 느낌으로 아침까지 안 자다가 시험을 보고 돌아온 후 오후에 잠을 자는 식으로 한 주를 보내기로 했다.


정신없이 한 주의 일거리에 쫓기는 일들을 몇 번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학기의 끝과 함께, 한 때는 전역이라는 순간을 담은 2023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해결하겠다고 다짐한 문제들에 여전히 시달리고, 때로는 이유모를 순수한 열정이 있었던 군복을 입던 시기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겠다는 동기가 없는 건 지금 누리고 있는 소중한 기회와 여러 특권들에 대한 미련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부한 거에 비해 지나치게 시험 점수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내가 놓친 것들을 어떻게든 높은 시험 점수로 감추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아닐까? 공부는 잘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기회를 붙잡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공부에 대한 의존적인 태도에 삶의 또다른 기회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 방향성이 맞지 않는 건 분명하다.


지금 공부를 더 한다고 의미가 있을까. 이미 몇 번은 본 문제들을 다시 풀고, 이미 반쯤은 각인된 수학 공식들을 외우려는 노력들은 그냥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다. 불안감만큼, 모든 것들을 마무리하고 좋은 결과를 받아들일 때의 해방감과 성취감 역시 크지만, 사소한 흔들림에 민감한 내 유리같은 멘탈을 생각하면 이런 감정의 고점과 저점을 드나드는 현상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뒷심 발휘해서 공부 좀 하다가, 한 시간 전부터 고양이 영상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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