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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사랑니

"아직도 성장 호르몬이 나오나봐요!"

"이가 너무 아파요. 사랑니가 썪었나봐요!"


이틀 동안 왼쪽 아래 쪽 이가 욱신욱신 아프고, 잠자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있어서 치과로 달려갔다. 오랫동안 다니던 단골 치과라서 예전에 기록된 나의 치아 사진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다시금 CT촬영까지 했다.


"사랑니가 자랐네요.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김소라님 아직 성장기이신가봐요!"


의사 선생님이 웃는다. 다시금 내 나이를 확인하시고는.


"40대에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요. 대부분 20대나 30대에 사랑니가 다 나버리는데, 예전에 나왔던 사랑니에서 조금 더 이가 자랐어요. 통증이나 염증이 가라앉고 난 후 발치할지 말지 생각해보세요"


이가 아픈 원인은 결국 '사랑니가 자라고 있음' 으로 판명되었다. 내 나이 마흔 다섯에 사랑니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웃픈 현실.


여전히 나는 나라는 인간을 모른다. 겨우 이의 통증일 뿐인데, 대단한 병도 아닌데도 정말 아프다. 진통제를 먹으면 통증이 덜한 상태로 일상생활은 문제가 없는데, 진통제의 효능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사랑니와 어금니 전체, 턱과 관자놀이, 머리까지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인간의 몸은 하나로 똑 떼어놓을 수 없는 구조란 거다. 어느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도 덩달아 아프다.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몸의 기관들이 오히려 대견스럽다. 아픔을 서로 나눠 가지려는 걸까. 혼자만 병을 간직하지 않는 사랑니에게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어야 할 판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지함을 갖고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원적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나를 알아가는 배움은 크다.


"40대가 되어서도 사랑니가 자랄 수 있다구요!"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나의 경험이 생겼다. 경험으로만 얘기해줄 수 있는 진실 하나를 갖게 되었다. 태어나서 영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과 청년기를 지나면 거의 대부분의 성장은 끝이 난다. 몸은 완전함을 갖추게 된다. 더이상 자랄 것이 없다. 키도 다 자랐고, 생식능력도 갖추고, 소화기관이나 심장과 뇌까지도 기능함에는 문제가 없다. 어금니 뒤편의 사랑니 네 개도 마지막으로 잇몸을 뚫고 나오면, 20대까지 성장은 완성된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면 뭔가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체념한다. 더이상 뭘 바꿀 수 없는 삶 같다.


"태어난대로 살아야지. 뭐 별 수 있겠어?"


태어난 대로, 본성대로, 주어진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믿어버린다.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지혜를 키워갈 수밖에.


그런데 이게 뭐람. 마흔 다섯에 사랑니가 다시 자라고 있다라는 것 무슨 SIGN인걸까. 썪어서 아팠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사랑니가 솟아오르면서 아팠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나의 사랑니에게 "너는 그동안 다 안 자라고 숨어서 뭐한 거였니?" 라고 묻고 싶다.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성장의 시기를 제멋대로 생각하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시기에 자라난 사랑니. 나에게 큰 혼돈과 충격을 주는 사랑니.


의사 선생님은 "아직도 성장호르몬이 나오시나봐요" 라고 웃으신다. 앞으로 수년 뒤면 갱년기를 걱정하고, 폐경 될 나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중년의 나이에 '성장호르몬' 이 나오고 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오려 한다.


'나 아직도 성장호르몬이 나오고 있다고. 사랑니가 자라나고 있단 말이야' 이렇게 세상에 외치고 싶다. 여전히 나는 아이처럼 자라고 있다는 게 희망이자 가능성 같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너희들은 앞으로 엄청난 고목나무가 될 수 있어" 라고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처럼.


갑작스레 내 안에 질문이 떠올랐다. "나에게 아픔을 주고 있는 사랑니는 어떤 배움일까?" 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한 장의 타로카드를 뽑았다. 이런... 18번 달 카드다. THE MOON...



섬세하고 불안정하며 모호한 상태를 의미하는 달 카드는 예기치 않는 변화를 뜻한다. 바로 사랑니가 예기치 않은 변화였다. 그렇다면 어떤 배움으로 이해해야 할까.


사랑니의 아픔은 커졌다가 작아졌다, 반복적이었다가 간헐적이었다가 한다. 달이 끊임없이 차올랐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근심과 불안이 내재되어 있지만 그 아픔 속에서 내면은 깊어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면의 깊은 무의식을 따라 내 존재를 탐험하라는 뜻인가보다.


간밤에 꿈을 꿨다. 치아의 통증이 영향을 준 꿈 같긴 하지만 일어나서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


큰 서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되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되어 큰 서점을 헤매고 있었다. 그 때 아빠를 만났다. "아빠!" 하고 불렀더니, 예전의 따뜻한 아빠의 모습이 아니다. 아빠도 살 책이 있어서 왔다면서 금방 사라져버렸다. 서점 입구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집에 같이 갈 수 이을 것 같아서. 하지만 아빠는 이미 지하철을 타고 가버리셨다. 나를 남겨두고. 휠체어를 타고 있던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만 했고, 나의 몸뚱아리가 비참하게 느껴졌다. 덩치 큰 휠체어가 흉물스러웠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절뚝거리면서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휠체어를 접어서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휠체어에 의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순간 수원에서 서울까지 휠체어를 타고 오신 네 명의 장애인들이 있었다. "작가님!" 하고 나를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한 분이 있다. 장애인용봉고차를 타고 네 분이 기타를 배우러 오셨다고 하며 인사를 했다. "정말 멀리서 오셨네요. 대단해요" 라며 인사를 했다. 이렇게 나의 꿈은 끝이 났고, 새벽녘의 통증은 더 심해졌다.


18번 달 카드는 '통과의례' 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꿈과 사랑니의 통증은 살아가면서 거쳐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일 수 있을 것 같다.


성장에는 항상 아픔이 존재한다. 여전히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에게 사랑니는 가르쳐주고 있다.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다. 그리고 성장의 아픔은 어느 시기에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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