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벌을 받고 있다. 무슨 큰 잘못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냉랭한 눈빛에 소년은 그저 고개를 떨구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소년은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어 보인다. 마른 체구에 겁이 많아 보이는 인상이다. 실제로도 겁이 많아 친구들과의 다툼에서 툭하면 울곤 하는 성격이다.
적당한 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니의 선고가 떨어졌다.
"옷 다 깨벗고 나가"
소년은 이 선고가 그저 겁박이기를 바래본다. 미동도 하지 않고 선고가 번복되기를 기다려본다. 하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뭐 해 빨리 다 깨벗고 나가!"
어머니의 톤이 높아지자 소년은 선고를 이행하기 시작한다. 최대한 느리게 겉옷부터 벗어본다. 혹시나 느릿느릿 벗는 동안 엄마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까. 하지만 상의와 하의를 벗는 동안 어머니는 아무 번복도 하지 않는다.
깨벗는다는 말. 벌거벗는다는 말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겉옷만 벗는다는 뜻이 아니다. 팬티까지 다 벗어야 어머니의 선고가 전부 이행되는 것이다.
속옷 차림이 된 소년은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매달려 본다. 엄마 잘못했어요 엉엉 하고 아무리 매달려봐도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다시 큰소리로 선고를 외친다.
소년은 이내 이런 발버둥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엔 속옷도 최대한 느리게 벗어본다. 최대한 느리게. 혹시나 엄마가 마음이 바뀌어 '잘못한걸 이제는 알았지?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라'라며 처벌을 거둬들이진 않을지 솜털 같은 기대를 걸어본다. 하지만 속옷을 벗는 시간을 아무리 늘려봐야, 그 늘어난 시간은 몇 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된 소년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다행히 날씨는 그리 춥지 않다. 하지만 현대문명사회에서 옷이란 단지 추위만 방어하기 위한 산물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수치심이 들기 시작한다. 소년은 최대한 현관문에 바짝 붙어서 다른 사람들이 본인을 보지 못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리고 웅크렸다. 최대한 웅크려야 수치스러운 부위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 같은 층에 십 수 세대가 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구조이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들어오고 나갈 때 다른 집들의 현관을 수도 없이 지나가야 하는 구조이다. 불행히도 소년의 집은 복도 맨 끝의 집이 아니었다.
이미 눈물은 말라 버렸다. 집에서 이미 잔뜩 혼났고, 제발 내쫓지 말아달라는 사정을 하며 울고불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펑펑 울 힘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수치스럽고 서러운 감정은 어쩔 수 없기에 소년은 쫓겨난 뒤에도 계속 소리죽여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랬다.
'제발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않기를'
소년의 기대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시간이 얼마가 흘렀을까,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가 소년을 발견하고 말았다.
"저거 ㅇㅇ이 아니야? ㅇㅇ야!"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동상처럼 굳은 자세로 수치스러운 부위를 최대한 가린 채로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발가벗겨 내보내기 형벌의 형(刑) 집행 순간은 누군가 타인이 내 알몸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나는 기어코 형 집행을 받고 말았다.
당황하여 다가오는 옆집 아주머니, 그리고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아주머니가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눌러 들여보내줬는지, 상황을 인지한 어머니가 안으로 들여보내줬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