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일상화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

by 독거부인

슬프고 두려운 속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충격과 놀라움으로 잠시 멍해졌다.


전날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중에 티비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의 얼굴과 일상에서 지나치는 이웃들의 표정의 온도차가 극심하다는 내용이 있었던 터라 그 속내가 확인되는 기분이었다.


분노를 소화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우울증이니 불안장애니 하는 질환으로 포장해서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도 정신과 프로그램이 유행하며 일반인들이 스스로를 진단하는 오류가 대부분일 것이다.


외국에서 살때 담장을 경계로 아주 가까이 있는 이웃집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은 동네가 너무 조용하다며 정원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며 고기파티를 했다. 나는 이 소리들이 동네를 가득 채우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초대를 받아도 거절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북유럽 사람들 중 중산층이상의 사람들은 파티를 하더라도 이웃이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하는지 눈치를 보아 초대를 한다. 그러기 위해선지 주차장에서 이웃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하고 적당한 정보를 주고 받느라 한참을 대화하기 일쑤다. 나 역시 이웃이 잔디를 깎으러 나오면 일부러 나가서 인사를 하고, 요즘 어떤지 나는 언제 여행을 갈것 같다는 등의 대화를 했다.


어떨때는 옆집에서 손님이 온듯해서 가급적 마당에 나가는 일도 줄이고 그들이 편하게 대화하도록 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옆집 사람들이 먼저 나를 배려해 준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밤이었다. 낮동안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고 오후 7시쯤 돌아와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소파에 드러누운것이 8시. 슬슬 졸기 시작한 것이 9시였는데, 갑자기 망치소리와 아이들 뛰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가 진동도 없이 맑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콤보로 남자의 소리치는 소리까지.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던가. 욕실에서 세수할때 시끄러웠나, 티비 볼륨이 6인데 너무 큰가.

오전 9시에 외출했는데 너무 일찍이었던가......


"나만 당할것 같냐..."


이 한마디가 들려온다. 우퍼가 펑하는 소리를 냈다.


삼중 슬리퍼를 신고, 뛰지 않고, 세탁기는 이번주에 한 번만 돌렸다. 잠만 자다가 씻고 오후에는 나가서 놀다가 저녁도 먹고 들어왔는데. 오늘 집에서 요리했다고 그러나?


그동안 문을 쾅쾅 닫는 소리가 들려도 손힘이 좋구나 했고, 새벽까지 둥둥하는 진동음이 들려 어디선가 스피커를 틀었구나 했던 것이 연결이 되었다. 이 사람이 고의적인 경고를 하고 있었다는걸.


그동안 한번도 항의 연락을 한 적이 없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이렇게 폭력이고 계획적인 항의라니. 이건 그냥 복수이지 않나.


범죄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너를 폭행하겠다는 의미인지.


화가 나서 타인을 해하는 사람들. 순간적인 분노를 우퍼처럼 확대해서 터뜨리는 마음들.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적당한 훈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법을 자연히 익히게 된다고 한다. 도대체 그동안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가?


외국에서 이웃에게 함부로 항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결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로를 배려하는 노력만이 같이 사는 최선이라는 것도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불안하다고 여기저기 총을 쏴대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난민들이 선진국으로 밀려드는 이유를 생각해야 된다. 보호막이 없는 사회에서 살며 여기저기 총을 겨누고 싶은지.


편지를 썼다.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고, 하시던 대로 항의소리를 계속하셔도 된다고. 괴로운 마음인거 알고 있고, 빠른 시일내에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내 본심이었다.


1도 없이 100으로 치닫는 분노의 이웃과 함께할 수는 없다. 집이 매매가 될지 확률은 희박하지만 나의 운을 걸고 시작한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분노는 나를 파괴할 뿐이다. 분노의 왕국이 되어가는 이 사회가 안쓰럽다.

충격받은 나도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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