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공포의 집

영화같은 아파트 살이

by 독거부인

대상포진이 왔다. 불안으로 인한 불면증과 과민한 상태가 지속되더니 내 몸에서 이상신호들이 나타났다.

끝나지 않는 악몽이라고 했던 외국살이에서 보다 역이민을 한 지금이 더 힘들어졌다.


낮이 되면 등교와 출근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가 했건만 여전히 아파트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존재감이 들려온다. 일상의 소리들이라면 오히려 반가우련만 청소기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아닌 성난 문쾅이거나 고함소리가 날 때면 내 잘못이기나 한듯 숨죽이며 소파 한구석에 앉아있게 된다.


한 집에서 문쾅을 하면 다른 집에서 답쾅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화장실을 가야 함에도 망설이고 있었다.


살짝 문을 닫느라 달칵 했는데 아래층에서 탕탕탕하고 문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주말이면 손님이 오는지 이웃에서 아이들 뛰는 소리가 날 때가 있었다. 그런 날 밤이면 어김없이 문쾅 소리와 벽치는 소리가 난다.


한동안은 웅웅거리는 기계진동음이 밤새 지속되었다. 며칠동안 이어진 소리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고, 급기야 심장이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천장에 보복소음을 내기위해 우퍼를 설치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검색을 통해 알게되었다.


화가 난 사람이 이 안에 있다. 가끔은 밖에서 들리는 택배 소리에도 탕탕탕을 해댄다.


소리와 소음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나보다. 어쩌면 이제 그런 경계는 필요하지 않은가보다.

주의해 달라는 경고가 아니라 화풀이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주위의 사람들을 감정쓰레기 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하나. 묻지마 폭행과 다름이 없다.


지인들의 말은 한결같다. 어디나 똑같을 거란다. 아파트는 어쩔수 없다고 한다.

소리가 나고, 소리를 내고, 듣고, 들리게 하면서 살아간다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조건에서는 어디서나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주택에서 살아도 여러 소리들과 섞이기는 일상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나와 상관없는 이웃의 냄새들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정도도 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판단이다. 나는 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융통성 있는 이해다. 혹시 너가 불편할까봐 하는 배려도 있다.


내가 움직일때마다 주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피해망상이 생기는 것 같다. 집에서 움직일때도 살금살금 걷고, 티비는 자막을 봐야 들릴 정도로 틀고 있다. 어떤 소리에서 이웃이 화가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집에 있는 동안에는 통화도 짧게 끝내버린다.


나같은 소심이에게는 공포스러운 상황이건만, 옆집 애기 엄마는 복도에서도 즐겁게 대화를 하며 지나간다.

너네집이 제일 소란스러운 것을 알고나 있는지.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한숨만 나온다. 똑같은 아파트에 무슨 답이 있겠나.


모두들 잘 살고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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