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짊어지는 일, 어른이 되는 것
스물아홉이 된 지 어느덧 6개월.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던 나이가 익숙해졌다. 남들보다 늦게 세상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지금, 얼마 남지 않은 이십 대의 시간은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게 지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고양이 밥과 물을 챙기고, 화장실을 치우고 나서 샤워를 한 뒤 로션을 바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물건을 대강 치워놓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출근이다.
나는 디자이너이다. 재택근무를 조건으로 회사에 입사하여 주 1회 지방으로 왕복 4시간의 외근을 다녀온다. 입사할 땐 2,3주에 한 번이었으나 입사이래 그런 적은 없었다.
주 3-4회 외근을 다녀와야 했을 땐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 회사를 계속 - 다니는 이유는 스물여덟에 어렵사리 들어온 첫회사이기도 했거니와, 내가 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오래오래 얼굴을 마주하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힘들어도 같은 사람들과 계속 부딪히지 않아도 되는 이 일이 내게 적성이었다. 같은 곳에 갇혀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더 좋기도 했다.
일 년 뒤에 뭘 하고 있을지, 내일 당장 뭘 해야 할지 그런 계획이 없어졌을 때 모든 걸 그만두고 방 안에 틀어박혀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병원의 도움 없이 우울증이 스스로 완화되는 시간이 3년이라고 한다. 스물 중후반의 무렵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병원에 내원을 다닐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종교인이 되겠다며 종교 대학을 다니며 스무 살부터 종교기간에서 일을 해왔다. 한시도 일을 쉰 적이 없고 휴일도 없었지만, 사회에서 내 경력을 인정해 줄리는 만무했다. 여자인 내가 목회자가 되어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길은, 내가 그리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만 일깨워주었다. 스스로를 희생하여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기꺼이 녹아내릴 각오도 없이, 조금의 희생도 아까워하며 이십 대가 모두 지났다.
월급은 매월 50만 원, 그것도 25가 되어 겨우 받게 된 첫 월급이었다. 그전까지는 교회의 장학금이 내게 월급을 빙자하여 주어졌고, 그 마저도 감사히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생계는 주로 알바로 꾸려졌다. 서울에서 혼자 힘으로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으며 생활할 것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스무 살부터 모든 걸 스스로 해결했기 때문에, 나의 노동의 대가를 감사히 받으라고 주어지는 장학금을 보며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6개월 장학금 300만 원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한다는 건, 최소한의 생활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나마 초반에는 성적장학금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그나마 주어지던 성적장학금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부턴 안 해본 알바가 없었다. 끈기가 부족해서 매번 한 달을 채우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열심히 산 사람의 어떤 깊이가 느껴져야 할 텐데, 모든 걸 어쩔 수 없이 해온 나는 성숙해지기는 커녕, 그저 세상을 탓하는 한심한 어른이 되어있다. 어떤 해택을 받지 않았으니, 이만큼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부모님이 주는 안락함과 정서적 지지는 모두 받으며 자랐으면서 말이다. 물론 우울증이 깊어졌을 때 내가 숨어든 동굴은 부모님 품이었다. 그곳에서 꼼짝 않고 웅크리며 세상 탓, 가족 탓을 하며 부족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걸 아무 소리 않고 받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그렇게 부족하게 사는 동안 시간은 착실히 흘러갔고, 나는 어느덧 삼십 대를 코 앞에 두었다. 내가 살기 급급한 시간 동안에 친구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착실히 승진을 하고 있었다.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거나, 목표가 있었다. 사람을 사귀는 건 지출과 직결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며 살아온 나와는 달리 친구들의 곁에는 사회에서 만난 무수한 인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고목나무처럼 제자리에 박혀있는 나의 모습이 처음으로 외롭게 느껴진다.
어른이란 그런 걸까? 철없던 옛날과는 달리 인성으로 그 사람을 알아보는 시기. 사람의 됨됨이를 누구보다 선망하면서도 왜 나만 착해야 하냐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징징거리는 어른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나이. 세상의 무게와 사람의 시선을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라는 사람은 단순히 한 존재를 넘어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만의 우주에 갇혀있던 시간을 깨고 나와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본을 보여야 하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본을 받아 어른이 될 시간.
한참 늦은 내가 그럴듯한 어른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일은 나라는 사람의 천성적인 게으름과 나태함, 오만함을 내려놓는 일이 되어야 한다. 얼마나 늦은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조금씩 되고 싶은 어른을 생각하며 닮아가야겠다. 서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른다고 징징거리는 추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스스로에게만 관대한 나조차도 말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날마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제 물장구를 쳐볼까. 큰 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오늘부터 하루에 한 번씩 이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