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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r 20. 2024

단편 소설, <윗집 여자>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드르르륵, 탁. 오늘도 소란하다. 윗집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소리를 낸다. 집에서 뭔가 일을 하는 게 분명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계속 뭔가를 굴려대는 거지?


이사를 한지는 일주일이 지났다. 너무 괴롭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갈까 말까 고민한다. 이사하느라 힘들었는데 또 이사를 해야 하나.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웃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걸까. 이웃 간의 배려가 부족하다. 기록을 해볼까? 분명, 패턴이 있을 거야.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오후 다섯 시경이 되었다. 심란한 마음에 거실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갑자기 두다다다다, 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있나?


"정희야, 음악 들을까?" 

남편은 무던한 사람이다. 둘 다 예민하면 서로 살아가기 힘들겠지. 그나마 나의 예민함을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사람이라 서로의 선을 지키며 30년을 같이 살 수 있었다. 각종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남편이 음악을 듣는 게 어떠냐, 제안한다. 클래식을 들어보려고 거실로 나갔다. 그 순간, 쿵, 울리는 둔탁한 소리.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도대체 이 소리는 뭐지? 윗집과 일단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그냥 경비실에 말할까? 아니야, 나도 좀 알아야겠어, 용기를 내본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면 어쩌지. 주의를 당부해도 안하무인이면? 두려운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여자 목소리. 도다다다 따라오는 작은 발소리가 따른다. 

"아랫집입니다.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의아한 표정을 한, 젊은 여자가 나왔다. 단정한 단발머리와 깔끔한 옷매무새로,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말이 영 통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겠어. 언뜻 보이는 집은 말끔했고, 복도에 매트는 없다. 여자 뒤로, 조그만 꼬맹이 하나가 숨어 있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며 짓는 호기심 어린 표정.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고, 낯을 가리는 듯, 숨어 있는 여자애. 역시, 아이가 있었어. 그런데, 저 째깐한 아이가 낼만한 발소리가 아니었지 않나? 조금 당혹스럽다.


당혹감을 숨긴 채, 조곤조곤 생각해 온 말들을 늘어놓았다. 지난주에 내가 이사를 왔고, 그간 탑층에 살고 있어 층간 소음을 모르고 살다가 이사를 오고 나서 너무나 힘들다, 아이가 어리니 아이에게도 이웃 간의 배려를 가르치는 것이 도덕성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 주의를 당부드린다, 실례를 무릅쓰고 용기 내어 올라왔다, 잘 지내보자.


윗집 여자는 찬찬히 이야기를 듣더니, 미안한 기색을 비추었다. 다만 아이들이 있으니 퇴근 시간 이후 저녁 시간에는 양해를 구한다,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아홉 시 반 이후로도 다들 자니까 조용할 것이다, 서로 간의 배려를 해보잔다. 응? 밤에도 드르르륵 소리가 분명, 났는데? 뭐 어쨌든.


"아 그리고 방금 전에 거실에서 뭔가 쿵! 하던데, 저 그때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거든요. 제가 심장이 약합니다. 거의 대부분을 집에 있는데, 정말 너무나 힘들어요. 도대체 아까 그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조금 전에 쿵! 했다고요? 어유,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를 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아! 아이가 좀 전에 소파에서 내려오면서 무릎으로 바닥을 쳤는데, 혹시 그 소리였을까요? 그런데 그곳에 저희 매트가 깔려 있는데요."


말도 안 된다. 아까 그 자그마한 꼬맹이가 무릎으로 친 소리가 그렇게 어마어마하다고? 내게 공포심을 안겨준, 그 소리가 고작? 이 여자, 어쩌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의아했지만 일단, 이웃 간의 배려를 다시금 당부하고 내려왔다.


"저희도 주의하겠습니다만, 저녁 시간 생활 소음은 양해를 구할게요. 그 시간이 혹 너무 많이 힘드시다면, 안쪽 작은 방으로 잠시 피신해 있거나, 외출을 하는 건 어떨지요?"


이런 어이없는 윗집 여자 같으니. 왜 내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도 모자라, 윗집 사정까지 맞춰줘야 하는 거지? 심지어 난 외출을 좋아하지도 않고, 내 활동 공간은 거실과 안방인데! 윗집에서 조금만 더 주의해 주면 될 일을!


뭐 어쨌든, 용기 내어 올라간 건 잘한 일이야. 이야기를 하면 오해를 조금 풀 수 있으니까. 아이가 있으니 나도 이해를 해줘야지. 당분간은 좀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거야. 윗집에서 주의를 해준다면 나의 삶은 다시 평온 해질 거고.


책을 읽는다. 이상 소설이다. 집중이 잘 안 된다. 약간의 소음은 애써 무시했다. 처음보다는 소음이 조금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렴, 내가 그렇게 좋게 말했는데, 주의를 안 하면 이상하지, 암.


며칠이 흘렀다. 또다시 시작되는 드르르륵 굴러가는 소리가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질 무렵, 나는 윗집 소음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노트를 펼쳤다. 하루 두세 번 바닥을 탁탁 치며 아주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린다. 드르르륵 굴러가는 소리는 식사 시간을 빼고 계속 나고, 저녁 무렵이면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린다. 낮에 사람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들 그랬다. 모두 자기 집은 아니라고 한다. 그 울림은, 바로 윗집이다. 내가 안다.


일주일을 버텼다. 패턴은 매일 달랐다. 답답하다. 이사 온 지 고작 2주인데, 다시 이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서로 외출 정보를 공유하면, 조금 편해지려나. 저녁 무렵,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울림이 있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첫 방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는 여전한 소음에 대해 고충을 표했고, 비록 서로 힘든 상황이지만 공생을 바라고 있으니, 번호를 주고받자고 제안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의 윗집 여자는 찰나의 고민 끝에 번호를 주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소음이 얼마나 크기에 이러시는 걸까요. 제가 혹시 직접 들어봐도 될지요?"


윗집 여자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있는 힘껏 뛰고 있으라고 하고 함께 내려왔다.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쿵쿵거림. 소리가 과연 크다. 윗집 여자도 조금 놀란 눈치다. 하지만 한다는 소리가,


"그러니까, 이 정도가 저희 집 최대 소음이라는 거죠?"


기가 찬다. 그러니까, 윗집 여자의 말은,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소음을 들려주었으니, 이외의 소음은 자기 집이 아니라는 의도가 아닌가. 좋게 해결하려는 내 배려를 무시한 언사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낮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하냐, 재차 확인을 해보아도, 발뺌만 할 뿐이다. 윗집 여자는,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낮에 몰래 집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참으로 답답하다. 여자는, 자신의 잘못 보다는 오히려 나의 예민함이 지나치다는 뉘앙스를 내비치며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여자를 내보냈다.


"정희야, 산책 가자." 천정을 계속 올려다보며 복도를 서성대던 내게 남편이 말한다. 남편은 저 소리가 신경 쓰이지도 않나. 나만 이렇게 괴로워하는 상황도 힘들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지어 이렇게 고통받는가. 왜 나의 고통은 이해받지 못하는가.


소란한 저녁 시간, 산책을 나섰다. 아랫집에 한 시간가량의 자유를 주겠노라. 내가 먼저 베풀면, 그들도 노력하겠지. 선의의 희생이다. 윗집에게 받는 번호로 문자를 한 통 보냈다.

1시간 정도 외출합니다. 이상한 형태의 소통이지만 서로 상생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생각하시죠


문자를 보내기가 무섭게 우당탕탕 뛰는 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 뒤에는 조용해지길 기대하며 집을 나선다. 맑은 공기, 신선한 저녁 내음, 층간 소음에서 해방된 자유시간. 한평 남짓한 숲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며 책을 쓴 작가도 있다지. 세상의 모든 소음에서 해방되고 싶다. 자연의 소리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생각을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가끔 들리는 이명도, 때로는 잊히지만 한 번 들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크게 들리는 법이다. 내 귀에 이미 들리기 시작한 소리들은, 나를 끝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잊어야지 의식하는 순간, 더 크게 울리는 소리들, 소리들, 소리들!


공생의 일주일이 흘렀다. 내가 외출 시간을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게 다인 상황. 윗집 여자는 배려심이 부족한 건가. 나의 일방적인 희생만 이어지는 이 상황이 과연 맞나? 굴러가는 소리는 계속 난다. 며칠 조금 소음이 줄어드는 듯했지만, 완전히 없는 날은 결코 없었다.


늘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간헐적으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간이 두근두근하고 또 나게 될 소리에 긴장하게 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컨디션이 난조인 어느 날, 난 도저히 참지 못하고 세 번째로 초인종을 눌렀다.


윗집 여자는 완연히 화가 난 기색이다. 자기 집에 귀신이라도 사는가 보죠? 하면서, 자기 식구가 내는 소음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은 이제 벨소리만 나도 힘들어하고, 자기도 까치발 생활을 하며 아이들에게 매번 살살 걸으라고 소리친단다. 씩씩대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하였다. 아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한술 더 떠서 언성을 높인다. 피해자는 아랫집인 내가 아니던가.


윗집 여자와의 공생 관계는 끝났다. 나도 싫은 소리 하기 싫다.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뿐이다. 녹취를 하고, 소음 강도를 재고, 하루하루 나의 괴로움을 일지로 남기는 것. 윗집 여자는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더 이상은 찾아가서 이야기해 봐야 무의미하다. 앞으로 찾아가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공생을 위한 나의 희생도 이것으로 끝이다.


그로부터 석 달이 흘렀다. 열흘 정도 제법 조용한 날들이 있었다. 이사를 갔나 싶었는데 어느 날 다시 소음이 시작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결국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잘 지내십니까, 나름대로 소음을 유발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아래층에 대한 배려 바라겠습니다.


더없이 존중하는 태도로, 용어를 고심하여 보낸 문자였다. 나의 이 공손한 문자에, 윗집 여자는 무례한 대답을 보내왔다. 며칠 동안 조금 조용했다면 수일간 집을 비워뒀기 때문이며, 그 사이 발생한 소음이 있다면 자기 집이 아니라는 방증이란다. 하?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를 주고 있으면서, 되려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윗집 여자는,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예민한 아랫집 여자를 만나 자신이 힘들어졌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낮 동안의 생활 소음은 양해를 구한다며, 모든 소리가 윗집일 거라는 편견은 버리라고 느낌표까지 찍어 보내왔다. 나를 예민쟁이로 몰아가는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난다. 나는 마구 소리를 질러댔고, 놀란 남편이 튀어나왔다.


흔들어 깨우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의식을 잃었다. 손발이 저리고, 호흡이 힘들다. 소리가 두렵다. 나는 이것을 버틸 자신이 더는 없어...






병원에 다녀온 후 정희는 곤히 자고 있다. 병명은 과호흡. 정희 남편은 인터넷 창을 열었다. 층간 소음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층간 소음에 대한 현안을 내놓은 게 있을지도 몰라. 사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층간 소음으로 너무나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아랫집에는 소연이라는 아이가 살았어요. 소연이는 인사성이 아주 밝은 아이였지요.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 입장에서 저희 집을 이해해 주었어요. 너무나 감사했죠.

한 번은 집에 에어바운스를 설치해서 논 적이 있었어요. 전 미리 소연이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소연이를 초대해 같이 뛰어놀게 했어요. 소연이는 너무나 즐거워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요. 윗집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생활 소음이 항상 미안했던 저였기에, 생필품을 자주 가져다 드리며 감사를 표했어요. 주의를 기울여도 생활 소음은 나기 마련이니까요, 소연 엄마는 아주 늦은 밤만 아니면 어지간한 소음은 그냥 넘겨가며, 서로 이해하며 지냈어요. 너무나 감사한 이웃이었죠.

그런데 지난주에 소연이네가 이사 가고 다른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이사를 왔어요. 이사 일주일 만에 저희 집에 올라오더군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너무 쿵쿵댔나 보다 싶어 죄송함을 전했어요. 일주일 동안 힘드셨다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죠. 미안했어요. 아이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하고, 저도 폭신한 신발을 신기 시작했죠? 늦은 저녁에는 거의 발끝으로 걸어 다녔어요.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도 아랫집의 민원 경험은 없었거든요. 조금 놀랐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엄청 주의를 기울였어요. 게다가 낮에는 아이들이 다 등원하고 없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이 채 안되어 또 올라오신 거예요!

낮에 집에서 누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냐, 도대체 뭘 자꾸 굴려대는 거냐, 다그치더군요. 시끄러운 소리가 밥 먹는 시간 빼고 계속 난다는 둥, 도통 제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맞벌이 부부라 낮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꾸만 집안을 기웃거리며 살피고, 전혀 제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듣기에는 분명, 벽을 타고 내려오는 윗집 소리라나요. 자기가 다 안대요. 거짓말 그만하래요.

저 정말 힘들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올라와요. 벌써 3번째예요. 아이들은 이제 저녁 무렵 초인종만 울려도 경악하고요. 저는 아이들이 조금만 콩콩거려도 밑에 집에서 올라온다며 아이들을 협박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죠. "엄마, 우리 제발 1층으로 이사하자, 응? 제발" 거의 빌기에 이르렀어요. 아이들은 밤 아홉 시 반이면 다 잡니다, 이후로 어른들은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각자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하거든요. 음악 소리도 아주 작게 해서 들어요. 낮에는 사람이 없고요. 정말 힘듭니다. 이제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으면 해요. 저희를 가해자로 몰고 있지만 저 또한 피해자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로부터 3개월이 흘렀다. 

윗집 여자는 이사했다. 1층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제 조용한 날들이 내게..


"드르르륵, 쿵."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다. 

남편이 말한다. 

"정희야, 소리가 또 나니? 산책 나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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