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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네티컷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추천 공간 (1)

뉴카난의 그레이스 팜

by 뉴로그림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은 코로나 이후 너무나 비싸져 버린 물가였다. 코로나 전후로 월세도 1000달러는 오르고 게다가 환율도 같이 치솟았으니 한국인이 체감하는 미국 물가는 딱 한국의 2배 정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빠르고 싼 곳이었는지. 시나 구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의 경우에는 주로 만 원 미만의 입장료를 자랑하며 즐길 것도 많은 대한민국과는 달리, 이곳은 모든 것이 자본주의였다. 시답잖은 과학관, 동네 아쿠아리움도 기본적으로 30달러 정도는 하니, 지금 환율 기준으로는 4-5만 원이 인당 드는 셈이다. 뭐 하나 입장만 해도 20만 원을 쓰게 되니 어디 가려고 해도 몸부터 사리게 된다.


게다가 뭐 어디 한번 가려고 하면 기본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2-3시간은 기본. 땅덩이가 얼마나 큰 곳인지, 1시간 정도 거리라고 하면 정말 가깝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내가 사는 곳은 노스 헤이븐(North haven)이라는 코네티컷 주인데, 뉴욕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라고 보면 된다. 미국에 오면 막연히 생각했던 첫 번째 착각이 바로, 여기저기 정말 많이 다닐 것이라는 것. 막 올랜도 쉽게 가고 막 시애틀 찍고 보스턴 찍고 워싱턴 가고 막 이번 주는 여기 다음 주는 저기 이럴 수 있을 줄로 착각했었지. 현실은? 남부 마이애미는 차로 21시간 운전해야 하고, 지도상에 거의 붙어 보이는 뉴욕이나 보스턴이 2시간, 워싱턴이 6-7시간이다. 한국으로 치면 뭐, 부산에서 이번 주는 강원도 양양, 다음 주는 강릉, 그다음 주는 대한민국 한 바퀴, 뭐 이런 식이라는 거지. 이건 말이 안 된다. 노선 변경이다. 아이들 학교 안 가는 날을 노려서 며칠씩 묶어서 다녀야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들 다 미국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들이라고 족보처럼 말하는 곳들 위주로 굵직한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애들 있으니 디즈니월드는 가야지 암. 디즈니 크루즈는 타야지 그래. 서부 옐로 스톤 국립공원부터 그랜드 캐년까지 죽 둘러봐야지 무조건이지. 예산을 잡아보려는데 일단 아이들 노는 날 위주로 가려니 2배는 더 드네? 학교 체험으로 돌리고 다 째고 가자 싶어 알아봐도 기본적으로 4인 가족에 800만 원 정도는 족히 드는 것이다. 전부 다 포함이냐고? 물론 각각이지. 허탈한 웃음이 났다. 역시 뭐 하나 그저 그냥 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이곳은 돈이 많아야 잘 먹고 잘 놀 수 있는 곳이라고. 시간조차 돈으로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저 집에서 키보드만 두드릴 수는 없는 노릇. 흥청망청 돈을 쓰고 학교를 몽땅 빠져가며 놀기만 할 수도 없다. 뒤지고 뒤져보면 어딘들 놀만한 훌륭한 숨은 공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뒤졌다. 뒤져보면 나온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현재까지 찾은 숨은 보석 같은 무료 공간, 혹은 유료이지만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팁을 소개한다. 코네티컷에서 1-2시간 거리 내로, 아이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주말 나들이, 피크닉 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인 그레이스 팜(Grace Farm)을 소개해 보려 한다. 여름이 갓 지난 무렵 갔는데, 이곳의 사과나무들은 정갈하게 잘 익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정돈된 잔디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계속 머물고 싶게 만들었던 곳. 입장료는 무료이나 실외 요가라든지, 아트 스튜디오 등을 유료로 신청할 수 있는데, 아이들을 위해 아트 스튜디오를 신청했더랬다.



팜 내에 있는 제철 나무를 이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그림자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다든지, 이파리를 종이 아래에 두고 칠을 하며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든다든지, 여러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아이들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별 것 아닌데도 재밌었다. 20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굳이 이런 체험을 신청하지 않아도 팜 내부에서도 보고 즐길 것이 많으니 입장만 미리 신청하고 가도 좋은 곳이다. 입장만 신청하는 것은 무료이며, 신청하는 곳은 아래 링크.


https://gracefarms.org/visit



팜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사실 이곳은 복합 문화시설로, 9만 평 규모에 달하는 푸른 대지 위에 전시와 명상 등의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연다. 우리가 방문했던 시점에도 요가 클래스가 야외에서 진행하고 있었고 참여 인원이 꽤 많았다. 다 차서 신청하지 못해 아쉬웠던 클래스. 건축물은 유리로 둘러싸인 다섯 개의 실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연과 친화적으로 지어져 마치 거대한 예술작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유려한 곡선이, 굽이치는 물결처럼 디자인되어 자연과 하나 된 형상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처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사사무소 'SANAA(Sejima And Nichizawa And Associated)'가 만든 곳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흙을 밟고 자연과 하나 되어 뛰놀고, 통유리창 너머로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중간 즈음 가장 큰 건물인 카페에는 여러 차와 커피, 그리고 간단히 먹을 브런치 등을 팔고 있었는데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자리도 여유 있고 실내 벽에 전시된 작품도 멋있고 둥근 건축물이 인상적인 곳.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의 향연에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도서관에는 간단히 읽을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대여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편안히 앉아서 공부할 곳도 있고 혼자 와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조용히 자연과 함께 힐링하며 책 읽고 차 마시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 단위로 잔디에서 배드민턴 치거나 해도 좋은 곳이다.



9월 초 아직은 여름 같던 코네티컷이지만 사과가 무르익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떨어진 멀쩡한 사과는 가져갈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미국은 사과 종류도 정말 많아서, 잘못 고르면 진짜 실패하기 쉬운데 이곳 사과는 품종이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 입맛에도 꽤 잘 맞았다. (우리 집 기준, 아이들 입맛에는 Honey crispy나 Fuji 품종으로 잘 먹는다.) 미국 입성 초반까지 어딜 가나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부담스럽다는 인상이었지만 처음으로 이런 곳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친 어느 날. 덤으로 맛있는 사과까지.



짠내 나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 탐험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 다음 편은 무료로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써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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