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사람에게
새벽에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이 먼저 떠지는 날이 있다.
자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쉬지 못했을 때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순서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하루를 절반쯤 써버린 기분이 든다.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천장을 본다.
몸은 피곤한데,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진다. 쉬고 있다는 사실보다, 쉬고 있다는 죄책감이 먼저 밀려온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늦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열심히 산다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처음에는 그 말이 좋았다.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고, 적어도 헛되게 살고 있지는 않다는 위안이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기준이 되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는지 스스로를 채점하게 만들었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준이 계속 올라간다는 데 있다.
어제의 열심은 오늘의 기본이 되고, 오늘의 노력은 내일의 부족함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늘 모자란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충분히 해낸 날조차, 마음 한편에는 ‘이 정도로 만족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남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만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실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 커진 건 아닐까.
그래서 쉬는 게 어려운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은 곧 멈춰 있는 시간처럼 느껴지고, 멈춰 있다는 건 곧 사라질 것 같은 불안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계속 앞으로 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남겨질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이 싫어서 우리는 다시 움직인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좀처럼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 목표를 이루면 다음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는 또 다른 불안을 데려온다. 만족은 늘 잠깐 머물다 떠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나는 지금, 나를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살고 있는 걸까.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노력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명, 뒤처지지 않았다는 증명, 이 정도면 살아도 된다는 허락.
우리는 종종 결과를 내야만 자신을 인정해 준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의 나는 쉽게 무시해 버리고, 성과가 있는 날에만 나를 좋아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조건부로 대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질 틈이 없다.
어쩌면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열심히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끔은 멈춰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본다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괜찮다고.
그 말이 모든 불안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많은 노력보다,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아무 조건 없이, 지금의 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
우리는 이미 충분히 오래, 충분히 잘 버텨왔다.
이제는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도 인정해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