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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an 26. 2023

보이는 나 vs 보여주기 싫었던 나

카톡에 단톡방이 몇 개가 있다.

거의 말을 남기지 않는 투명인간인 방도 있고 내가 자처해서 먼저 안부를 전하는 방도 있다.

그중의 한 방에서 나는 우아한 사람이라 한다.

오프라인에서 나를 직접 본 이는 한 명이 있는 단체방, 나머지는 나를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어딘 다녀온 사진을 올리기는 하지만 온전한 나를 본 적이 없는 온라인 방에서 나는 일단 우아한 사람이다.



남편의 해외주재원 발령으로 외국살이 6년 함

다니던 직장은 퇴사대신 휴직으로 귀국해서 복직가능함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삶의 질이 높아짐을 일찍이 깨달아 중국어 학교에 다님

3학기 수료 후 북경도장 깨기를 하러 다님

시간 날 때마다 가족들과 중국대륙여행함,

남편의 유일한 취미인 골프를 나이 들어 같이하려고 골프에 입문함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산책을 하고 계단을 오르고 필라테스센터에 감

여유시간이 나면 꼭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림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 전시회, 도서관, 서점을 다님

에세이클럽 온라인 수업 후 글을 써 전자책을 냄

이러한 일상을 3년 동안 블로그에 기록함

지금은 귀국 후 복직해 6년 만에 가정경제활동에 기여 중임



이렇게 적고 보니 해외생활했을 때 여유로운 유한마담으로 부러움을 살 수도 있었겠다.



그 어떤 기록에도 남기지 않았던 나는..

중국생활초기 5년 반전 중증 희귀 난치병 HSP 진단을 받았다.

HSP(유전성 강직성 하반신마비)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희귀 난치병이다. 쉽게 말해서 일반인들처럼 못 걷는다. 나는 행동이 느리고 빨리 못 걷는다고 얘길 하곤 했는데 실제로는 하반신 마비환자다.

앉아있을 때는 다른 이들과 같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나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두렵다. 모든 이들이 나만 다보기 때문이다.


뛰지 못한다.

등산을 하지 못한다.

균형감각이 떨어져 뒤뚱거리며 걷는다.

밴딩이 없는 슬리퍼를 신고 걷지 못한다.

난간이 없는 계단을 혼자 오르고 내려오지 못한다.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시간 안에 한 번에 건너지 못해 중간에 주저하며 서있는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걸을 수 없어 큰 마트에 가지 않는다.  오프라인 쇼핑을 주로 한다.

낙상은 정말 위험해 넘어지지 않으려고 천천히 걷는다. 턱이나 돌부리가 있는지 바닥만 보며 걷는다.

남들과 같이 걷지 않고 가족과 갈 때도 먼저 보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예전에 알던 친구들과 지인들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일반인들과 같이 걸을 수 있었던 건강할 때의 나를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면 놀란다.

긴 얘기를 하기 싫어 중국에서 살다 사고가 나서 다쳤다고 둘러댄다.


그렇다, 나도 예전에는 빨리 걷을 수 있었고 등산도 했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배낭여행도 다녔다.

발병원인이 내가 건강관리를 못하고 잘못 살아온 것 때문은 아니다. 그냥 후천적으로 뒤에 발병이 되었다.

그러하니 이 병이, 나에게 닥친 상황이 받아들여졌겠는가.

우아하게만 보였던 해외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다. 집 앞만 나가면 깨끗하고 친절한 병원이 널린 한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도 우아하게 보인다는 나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전쟁이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보려고..

나를 알고 있던 지인들이 있는 곳이라 어쩔 수 없이 나는 꽁꽁 숨기고 싶은 나를 펼쳐놓고 오픈되어야 했다.

지금 나의 몸이,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나의 잘못은 아닌지라 이제는 이러한 나도 서서히 기록해보려 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지 말고
더 이상 스스로를 닦달하지 말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말고
기쁘게 살기를 바란다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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