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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May 24. 2024

저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가능한 교사입니다

제가 장애인입니다

직장에 나의 전용 주차자리가 있다.

그 자리는 항상 비어있어 조금 늦게 가더라도 주차할 공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는 조금 늦으면 주차할 자리가 없어 오늘도 이중주차했다고 씩씩거리면서 들어온다. 그에 비하면 나는 감사하다 생각한다. 거기에다 내가 주차하는 곳은 주차선도 넓게 그어져 있다.

한번씩 일찍 출근하는 때가 있다. 내가 주차하는 곳은 점심급식 조리에 필요한 식품들이 들어가는 통로와도 가깝다. 그래서 일찍 출근하는 날은 식자재 배송차량이 나의 주차구역에 정차해 물건을 내리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면 나는 식자재 배송이 끝나고 차량이 나갈 때까지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나의 주차구역에 주차한다. 일찍 도착했으니 시간 여유도 조금 있다. 그런데 식자재 배송차량 두 대가 정차해 있는 경우도 있다. 두 달 전 쯤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나는 일단 나의 주차구역 앞으로 가보았다. 정차해 식자재를 옮기던 배송기사님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 차에 붙어있는 스티커도 한번 보더니 차의 창문 앞에 와서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고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한다.  


나의 차에 붙어있는 장애인 주차구역 주차가능 스티커는 노란색이다. 노란색 스티커는 장애인 본인이 운전하는 경우에 발급되는 스티커이고, 흰색 스티커는 운전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동반할 경우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가 가능한 스티커이다. 흰색 스티커는 장애인을 동반하지 않은 경우에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면 과태료를 내야한다. 그리고 장애인 주차구역에 침범해 정차나 주차를 장애인의 주차를 방해하는 경우에도 과태료를 내야한다. 배송차량은 장애인 주차구역을 침범해 정차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최대한 또박또박 대답했다.

"제가 장애인입니다"

배송기사님은 나를 한번 더 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당장 배송 차량을 이동했다.

배송기사님은 흰색과 노란색 스티커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듯했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내가 장애인일 거라고는 생각못했을거다. 학교에서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하는 교사를 한번도 못 보았을 수도 있다. 

그 날 아침 나는 학교 건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아주 우울해졌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불편한 상황을 남에게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가 가능한 교사이다. 직장에 나의 전용 주차구역은 두 자리가 있고 늘상 비어있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다른 곳에 주차공간도 있다. 그런데 내가 나의 전용 주차구역을 고집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가까워서 조금만 걸어도 된다. 나는 보행이 불편한 장애가 있어 빨리 걷지 못하고 발이 땅에 닿을 때 균형을 잡기 위해 위태롭게 걷는다. 나의 뒤에서 누가 걸어오면 나의 걷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어 신경이 수축되어 더 뒤뚱뒤뚱 걷게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 한걸음한걸음 아기처럼 천천히 걷는다. 그래서 입구와 가까운 주차구역을 고집한다.

두번째 이유는 같은 교무실에 있는 동료가 불평한 것처럼 학교에 주차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내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해야 다른 차량 한대가 더 주차할 수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나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가 가능한 장애인이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일반인과 다르다는, 일반인처럼 될 수 없다는 증서를 받은 후부터 나는 몸에 주홍글씨가 박힌 듯 죄인처럼 살았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가족들에게는 항상 미안했으며,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알까봐 조마조마했다. 더군다다 나는 혈기넘치는 청소년들과 수업하는 교사이고, 건강한 교사들이 동료인 학교가 나의 직장이다. 겉으로 보기엔 남들처럼 그럭저럭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진정 전쟁이다.  

나를 직접 보이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상에서 나는 장애가 없는 일반인이고 싶었다. 굳이 나에게 돌멩이와 같은 현실을 온라인에서 밝히기가 겁이 났다. 남들처럼 빨리 걷고 뛸 수 있는듯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도 현실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었다. 나를 포장하는 작업에 점점 지쳐갔다.

나는 이제 장밍아웃 (장애 커밍아웃)해보려 한다. 남들이 나를 어찌 볼까 겁이 나서 오픈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꺼내보려 한다.

내가 어떠한 이유로 차에 장애인 주차가능 스티커를 붙이게 되었는지, 일반인들과 다른 몸으로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용기내어 적어보려한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는 나의 장밍아웃으로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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