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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Sep 26. 2024

놀이터가 쏘아올린 작은 공

10호_건축과 피크닉_프로잡담


가랑비 오는 널따란 운동장에서, 물웅덩이 고인 곳 일부로 밟아가며, 첨벙첨벙 뛰어다니고,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신나게 놀았던 때가 있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게 있다고 한다면 그 때의 나는 어린이였지만, 지금은 어린이라고 불리기에는 한참은 나이를 더 먹은 청년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놀이에 대한 본능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씩 '이게 낭만이지'라는 생각으로 우산을 접고 집까지 뛰어가기도 하며, 일부로 물웅덩이를 밟아 신발을 더럽히기도 하는 소심한 방식으로 장난기 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해본다. 그리고 지금도,그 어떤 놀이보다도,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는 것은 잠깐 제쳐둔 채, 운동장에서 친구와 공놀이를 하며 뒹굴고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즐겁게 느껴진다.


내가 제일 즐겁게 기억하고 있는 놀이의 순간이 있듯이,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의 놀이에 대한 좋은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간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 속에 즐거웠던 놀이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둘 쌓아가는 중인 것이다. 놀이를 통해 그들은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놀이 속에 숨겨진 위험 요소를 맞닥뜨리며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지키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놀이는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인 발달을 도모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인으로 자랄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공간들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 주변의 공간들은 빈틈없이 계획되어지고 있다. 당장 집에서 나와 도심을 걸어보면 바로 옆의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으며, 주변을 둘러보아도 상업용 건물들의 끝없는 배열이 펼쳐진다. 보도 옆에 마련되어진 조경 공간은 그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하지만, 보도와의 뚜렷한 경계를 표시하고 있어 접근성이 낮을뿐더러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말이 적힌 팻말은 심어진 나무와 꽃들이 만지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닌, 단지 조경을 위한, 바라보기 위한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도시에 빈 공터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모든 공간은 목적을 부여받은 채로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놀이터, 공원과 같은 공공 공간이 발달하게 된 것은 이러한 도시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에는 버려져 있는 빈 공터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개발되지 않은 녹지 공간, 정돈되지않은 강둑 등의 다양한 공간들이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도시 속에는 아이들의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놀이터는 근대적인 발명품으로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바뀌게 된 도시의 공간들 속에서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 최초의 놀이터는 1859년 영국 제1의 산업 도시인 멘체스터(Manchester)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도시화가 놀이터의 탄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많은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 공간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어릴 때 놀았던 나무 놀이터를 떠올려 보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형형색색 플라스틱의 획일적인 형태를 가진 놀이터에서 과연 아이들이 재밌게 놀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내가 나무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놀이터의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나무 재질이 주는 친숙함과 편안함은 플라스틱이 주는 인공적이고 딱딱한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도시의 흔한 풍경.


아파트 단지 내 조경 공간. 보도와는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모습.


나무로 된 구조체를 마음껏 손으로 만지고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조체를 활용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플라스틱 놀이터에서는 구조체가 체험의 대상이 아닌, 단지 공간을 형성하는 울타리의 느낌으로 존재하게 되어 아이들의 행위의 다양성은 줄어들게 된다. 또한, 획일적인 형태의 놀이터에서 조합 놀이대는 너무나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행위를 제시하고 있고, 제한하고 있다. 오르기, 내리기, 미끄러지기, 통과하기 기능의 짧은 반복적 배열이 직접적으로 제시된 조합놀이대에서 아이들은 쉽게 놀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모든 것이 계획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자발성을 잃게 되고 당연히 놀이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획일적인 놀이터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여진 것일까? 이는 놀이터의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놀이터 또한 산업의 영역에 포함되면서, 놀이터의 형태와 기능은 만들기 쉽게 표준화되었다. 이로 인해 각각의 놀이터들은 개성을 잃고 비슷한 색상, 비슷한 재료, 비슷한 구성을 한 채로 만들어진 것이다.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그네, 시소, 미끄럼틀과 같은 놀이 기구들은 조합 놀이대와 함께 적당히 배치될 뿐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실질적인 놀이 행위에 대한 고려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좋은 놀이터는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들을 고려해야 할까? 



네덜란드의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가 설계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단순함이 지니는 가치


자신들이 소싯적에 했던 놀이를 떠올려보라. 오랜 시간이 흘러 잊힌 것만 같아도, 놀이에 대한 기억은 꽤나 강렬하게 남아있어,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어린 시절 중 기억에 남는 ‘코알라’라는 놀이를 소개해보겠다.이 놀이가 이루어지던 장소는 학교 놀이터 옆의 나무 정자였다. 4개의 기둥에 지붕을 올린 흔한 정자의 모습이었고, 각 면에 하나씩 총 4개의 벤치가 있던 정자였다. 술래는 정자 가운데의 비어 있는 공간에서 눈을 감은 상태로, 벤치 위와 기둥 사이를 옮겨 다닐수 있는 다른 친구들을 잡아야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술래에게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면 작은 소리라도 내서는 안 되었고, 와중에 술래의 손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벤치와 기둥 사이를 옮겨 다니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던 놀이이다. 별다른 놀이기구 하나 없던 이 정자가 어떻게 하여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었던 것일까?


기둥 4개, 벤치 4개, 그리고 지붕으로 구성된 정자의 건축적인 구조는 정말 단순하다. 적당한 굵기의 사각기둥은 나무를 오르는 곰 마냥 기둥을 부둥켜안고 올라타고 싶게 하고, 앉으라고 놓인 벤치는 어느새 시냇물의 징검다리 마냥 이리저리 뛸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처럼 공간 구성이 단순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들만의 놀이를 만들어 재밌게 놀기도 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대상을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활용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사례로 ‘알도 반 아이크’라는 건축가의 놀이터 디자인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 복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 전역에 1947년부터 1978년까지 약 734개의 놀이터를 계획하는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의『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책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자발적인 감정이 지니는 힘에 관한 것이었고, 그는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를 유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암스테르담시 놀이터의 공간적 구성과 놀이기구의 선택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놀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놀이터의 구성과 설치된 놀이기구들 각각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의 놀이터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뛰거나 앉을 수 있는 원형의 낮은 콘크리트 블록, 구름다리가 설치된 모래밭과 몇 개의 철봉이 전부이다. 다양한 크기와 높이의 블록들이 공간에 배치된 위치에 따라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고 그 사이에서 규칙을 만들어 놀이를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 공간에서 중심이 되어 다른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며 놀이터를 체험하고 경험하게 된다.


최근에 대전을 방문했다가 시청 근처의 놀이터를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널찍한 모래 놀이터에 커다란 나뭇가지 모양의 구조물이 여러 개 놓여 있는 단순한 구성의 놀이터였다. 나뭇가지 구조물의 마감이 매우 매끈하게 돼 있어 편하게 잡을 수 있었고, 나무 재질이 주는 편안함 느낌도 구조물에 대한 친숙함을 더해 주었다. 아이들보다 신장이 컸음에도 나뭇가지를 손잡이 삼아, 발판 삼아 재밌게 놀 수 있었다. 또한, 신설 아파트 단지의 나무 놀이터는 삐죽삐죽 솟아있는 나무 기둥들의 단순한 구성만으로도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어 보였다. 최근의 놀이터에 이러한 단순성이 지닌 가치가 고려된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사진4] 나뭇가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 

[사진5] 나무 놀이터의 밑부분. 

[사진6] 신설된 나무 놀이터의 모습.



계산된 위험?


2005년 플로리다의 한 놀이터에 ‘뛰지 마세요’ 라는 말이 표지판에 적힌 뒤 놀이터 안전에 관한 논쟁이 한창 불거진 적이 있다. 한쪽에서는 놀이터 공간이 아이들의 놀이를 제한적으로 만들더라도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너무 안전하게만 만들면 자극이 떨어지는 재미없는 놀이터가 된다는 주장을 한다. 최근에 이러한 딜레마는 ‘계산된 위험’을 제공하는 놀이터라는 개념으로 해소되고 있다. ‘계산된 위험’이라 함은 위험 요소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요소들은 어른들에 의해 철저히 계획되고 통제된 위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으로 놀이터의 안전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한계점들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까지가 ‘통제된 위험’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고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놀이터를 설계할 때 아무리 그 안에서 일어날 아이들의 행위를 예측해본다 한들, 놀이터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아이들의 행위 전부를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에게 오르고, 내리고, 잡고, 매달리는 등의 행위는 매우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놀이터의 모든 부분은 이러한 행위들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공간으로 인식된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둥근 원통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것보다는 원통 위로 올라가 거꾸로 올라가는 것에 더 재미를 느끼곤 했으며, 놀이터에 있던 플라스틱 지붕 위로 올라가려고 벽체를 낑낑거리며 밟고 올라가서 끝이 날카로운 플라스틱 지붕의 모서리를 움켜잡곤 했다. 놀이터의 구조가 익숙해진 뒤에는 심지어 눈을 감고 놀이터 구조체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까지 하곤 했다. 이처럼 어릴 적 내가 했던 놀이에는 위험의 요소가 다분했고, 밟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분을 밟고, 올라가면 위험할 것만 같은 곳을 올라갔다.


따라서, 놀이터가 계획될 때는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의 가능성이 더 폭넓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어른들이 생각했을 때 ‘설마 저 높은 지붕 위에까지 올라가겠어?’, ‘저 좁은 벽체 사이에 발을 넣겠어?’ 등의 생각들이 놀이터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려 없이 허울뿐인 ‘계획된 위험’만이 존재하는 놀이터에는, ‘아이의 손이 설마 닿겠어’와 같은 안일한 생각을 바탕으로 거칠게 마감된 날카로운 플라스틱 모서리와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안전을 위해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어떤 식으로 제한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한 신설 놀이터의 원통형 미끄럼틀에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미끄럼틀에는 마디를 나누는 접합부 부분이 튀어나와 있어서 그 부분은 분명히 아이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고, 또 그러한 행위를 유발하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단순히 ‘올라가지 마세요’ 라고 적어 놓는 것으로 이러한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안전에 관해서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미끄럼틀 위를, 밟고 올라갈 수 있는 대상으로 계획자가 인식하고 실수로 떨어져도 안전한 바닥을 만드는 식의 안전 장치를 고안하는 것이 더 나은 놀이터가 되기 위한 방향일 것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놀이터의 모습.



놀이터가 지니는 공동체적 가능성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도심 속에 위치하는 공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도심 속 공터는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기도 하며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서로를 확인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앞서 소개했던 알도 반 아이크의 놀이터 프로젝트에서 놀이터가 설치되는 공간은 도심 속의 공터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들이었다. 도시의 비어 있거나 버려진 공간들이 아이들의 창의적인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로 변모하면서 이들 공간은 도시에서 커뮤니티의 기능을 수행했다. 건물들 한복판의 넓은 놀이터는 사람들의 이동 동선에 포함이 되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는 어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세대가 놀이터 공간에 자연스럽게 모이게 됨으로써 사람들 간의 소통을 매개하기도 한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놀이터들은 서로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어 아이들은 도시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고, 각각의 놀이터들을 기점으로 하여 도시에 대한 공간적 경험을 하게 된다. 



알도 반 아이크의 도심 속 놀이터.


실제로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놀이터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놀이터들은 단지를 일자로 길게 가로지르는 중앙 대로에 인접하게 만들어져 있고, 각 놀이터는 일정한 간격을 둔 채 단지 내에 고르게 배치되어 있다. 각 놀이터는 경찰서, 소방서, 악기, 등의 테마를 가진,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놀이터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은 "너희 집 쪽 놀이터로 가자"라는 말을 하며 이동을 한다. 이처럼, 구역별로 설치된 개성을 가진 놀이터는 하나의 공간적 거점의 역할을 하며 아이들의 공간적 체험을 유도한다. 동네에 있는 모든 놀이터가 서로 다르다면 한 번씩은 체험해보고 싶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단지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놀이터 공간은 주변 공간과 분절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놀이터라는 공간은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어른들은 놀이터에서 놀 수 없고, 단순히 어린이들의 놀이를 보조하는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놀이터의 놀이기구와 공간 자체가 어린이의 신체에 맞게 제작된 것이기에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 공간은 어떠할까 생각해본다. 어른들도 탈 수 있는 그네가 생길 수도 있고, 운동용 철봉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함께 매달릴 수 있는 놀이터용 철봉이 새롭게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단순함의 가치를 지닌 공간들은 아이, 어른의 신체적 차이에 제한 없이 모두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나무와 같은 자연적인 요소 자체도 놀이터의 요소, 놀이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놀이터, 크게는 아파트 단지와 같은 주거 공간이 설계된다면 우리들의 삶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놀이터가 세대에 상관없이 커뮤니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지는 아파트 단지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조형물 대신 편안하게 만지고 올라탈 수 있는 단순한 공간적 곁들임이, 분절적인 놀이터 공간 대신 보행 공간과 자연스럽게 섞여서 모든 세대가 이용 가능한 놀이터가, 바라만 봐야하는 나무, 꽃들 대신 나무가 심어진 공터로 아무 제약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놀이와 공간


놀이터 공간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놀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놀이 중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놀이는 신체적 행위를 동반하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신체적 행위를 통해 몸의 다양한 감각을 동원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놀이는 점점 실내화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사이버 세상 속에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어 사람들의 일상을 빠르게 차지해 나가고 있다. 또한, 친구들과 만나면 카페, PC방, 노래방을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현재 청소년의 일상을 보더라도, 일상 공간의 범위는 매우 좁아지고, 한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커뮤니티 기능이 담긴 놀이터, 공원, 공터가 도심 속에 더욱 많아지게 되면 우리들의 일상 공간은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일상 공간의 다변화는 곧 사람들이 더욱더 다양한 놀이를 즐겁게 할 수 있게 할 것이고, 사람들의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놀이터가 변화된 도시의 모습, 도시화와 산업화를 통해 태동한 공간이듯, 변화된 사회와 도시의 모습은 또 다른 새로운 공간을 끊임없이 창출해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의 행복이 어떤 공간에서 지켜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도시에 필요한 공간은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진9,10] 알도 반 아이크의 도심 속 놀이터



참고문헌

오광석 (2009). 알도 반 아이크의 암스테르담시 놀이터 계획에 내재된 인본주의 개념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지회연합회, 11(4)

백기웅 (2019) 세대 교류 활성화를 위한 공동주택단지 부대복리시설 연구: 어린이 놀이터를 중심으로. (성균관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드럼통파파 (2018.02.19) 놀이터의 작은 역사(미래의 육아, 육아의 미래 시리즈)





게재 : Vol.10 건축과 피크닉, 2020년 봄

작성 : 프로잡담러 S | 조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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