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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pr 07. 2024

설계 이모저모: 비정형 건축

11호_건축과 거리두기_프로잡담



설계 이모저모: 비정형 건축


이번 학기 들은 건축설계Ⅰ 수업은 개인적으로 정말 다사다난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로 인해서 학기 초반에 수업 방식에 대한 적응도 필요했고, 1학년 때보다 컴퓨터를 다루는 것을 포함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했던 것도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온라인으로 서로의 생각과 작업 과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면 공유를 통해 발표했고, 컴퓨터에서 만든 모델을 돌려가며 서로의 진행 상황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온라인으로 서로의 발표를 함께 들으며 수업을 해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다른 친구들의 작품에 애정이 생기기도 하였고, 또 그들의 작품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에, 이렇게 설계 이모저모 코너를 빌려 이번 설계반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도중에 들었던 생각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이번 설계 이모저모의 주제는 비정형 건축 설계이다. 무엇인가 독창적이고 재밌어 보이는 결과물을 원하시는 듯한 교수님의 은근한 압박, 그리고 개성과 창의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창작 욕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번 설계반 멤버 중 많은 수가 비정형 건축물을 설계하였다. 나 또한 이번 학기에 비정형 건축물의 설계를 진행했는데, 수업마다 떠오른 생각과 의문을 이 글을 통해 나눠보고 싶다. 설계반에서 비정형 건축 설계를 한 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형식의 설문을 요청하였고, 그들의 답변을 바탕으로 우리 설계반의 비정형 건축 설계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고 한 학기 동안 설계를 하며 느낀 것들을 가감 없이 풀어내 준 설계반 멤버분들께 소소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추가로, 전체적인 흐름 및 사진 화질을 고려하느라 담고 싶었던 자료들을 모두 담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Q. 비정형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수: 사실 평소에 비정형 건축물을 보고 딱히 큰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고, ‘그냥 웅장하고 신기하게 생겼다’ 이 정도 감흥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근데 작년 여름에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Guggenheim Bilbao Museum)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 비정형 건축물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 같아.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해체주의 건축은 저렇게 생겼구나, 꽃을 닮은 건축물도 있네, 춤추는 사람 같이 생겼다’ 정도의 느낌이었다면, 구겐하임 박물관을 보고 나서는 ‘우와 어떤 각도에서 봐도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이런 느낌의 건물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아. 





희선: 솔직히 말하자면 평소에 비정형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근데 이번 학기 우리 설계반 주제가 정해진 클라이언트의 주택 설계였잖아? 그래서 무엇보다도 클라이언트의 아이덴티티를 건축물 자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비정형이든 아니든 일단 그 목적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주택을 설계하고 싶었지. 내 클라이언트는 바로 가죽 공예가였어. 가죽은 단단하지만 동시에 원하는 형태로 구부릴 수도 있어. 이러한 재료의 특성을 살려서, 솔리드 하면서도 유연한 형태의 매스를 중심으로 주택 설계를 하고 싶었어. 



수빈: 설계 시작할 당시 비정형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 나중에 모델 만들 거 생각하면 아무래도 직사각형 매스에서 출발하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교수님이 언제 또 한 번 비정형을 해보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고려해야 할 것도 많아질 텐데 이번에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중에 힘든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비정형 매스를 잡았지. 





재원: 나는 정형 건축물을 설계하려고 하면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이쪽 부분을 곡선으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돼. 그렇게 레퍼런스들을 찾아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 보면 결국에는 전체가 곡면으로 된 건물을 만들게 되는 것 같아.   근데 한편으로는, 아직 설계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왜냐하면 건물을 정형으로 만들게 되면 내부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다른 건물이랑 비슷비슷하게 느껴지잖아. 그래서 나는 비정형을 만드는 것보다 정형으로 예쁘게 설계를 하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것 같아. 


 



재현: 평소에 거리를 걸으면 네모난 건축물들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야. 그러다 보니 외관으로 봤을 때, 특별히 시선을 끌지 않으면 궁금증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내가 설계하는 건축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이번 학기에 주얼리 디자이너를 위한 집을 지을 때, 보석과 연관 지어서 컨셉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Q. 비정형 건축물 설계 과정에서 라이노와 같은 3D 모델링 툴을 이용해서 디자인 모델을 만드는 것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컴퓨터를 활용해 디지털 모델을 만들며 느낀 한계점 또는 힘들었던 점 그리고 컴퓨터 툴을 활용했을 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주수: 아무래도 라이노(3D 모델링툴)를 접한 지 얼마 안 됐고, 곡면의 건축물을 연습해 본 게 아니라서 매스를 잡는데 엄청나게 고생했던 것 같아. 특히 내 건물은 모든 면들이 휘어져 있고 볼록 튀어나와 있어서 휘어진 정도를 조절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 왜냐면 휘어진 정도를 잘못 조정하면 매스 내부에 공간을 구성할 때 제한되는 점이 많아졌었거든. 정말 내 매스는 내 마음대로 만든 거라서 이게 장점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평면을 구성할 때는 이 점이 한계점이기도 했어. 처음에 맘대로 만들고 평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매스 고치기->평면 고치기->매스 고치기를 엄청 반복했거든. 찰흙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다면 더 자유롭게 형태를 표현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난 아직 실물을 라이노 모델로 완전히 구현하기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컴퓨터로 주구장창 연습했던 것 같아. 그리고 컴퓨터로만 이용해서 모델링을 했을 때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 좋게 여러 매스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 

희선: 나는 내 컨셉에 맞게 가죽의 유연함을 매스 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2~3번 접히고 구부러져 S자나 부드러운 W자의 모양을 보이는 매스를 만들기로 했어. 처음에는 임의로 만들다가 이후엔 조금 더 근거가 있는 매스를 만들고 싶어서 종이를 잘라서 구부리고, 나무 막대로 고정해서 원하는 형태의 매스 중심선을 만들어 냈어. 그런데 그 모양을 라이노에서 그대로 구현해 내기가 정말 힘들었어. 내가 하나하나 라인을 따서 레일 기능을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는데, 내가 만든 종이 모형에서부터 공중에 있는 여러 개의 라인을 따서 실제와 완벽하게 같은 각도로 만들어 내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 처음부터 라이노에서 임의로 만들었으면 자연스러움은 갖출 수 있었겠지만, 내 종이 모형이 가진 자연스러움을 라이노 상에서는 구현해 낼 수 없었던 거 같아. 내 능력도 부족했지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의 한계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대신 이후에 내가 만든 타원형 매스들을 위에서 말한 그 가죽을 형상화한 곡면 매스에 끼워 넣을 때, 간편하게 trim¹ 기능으로 원하는 부분들을 제거해서 타원형 매스 내부에는 벽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게 할 수 있었어. 종이 모델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지. 이렇게 실제로는 자로 재가면서, 상상만 하거나 그림을 그려서만 구체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글자 몇 자만 쳐서 실행할 수 있다는 게 컴퓨터 툴의 강력한 장점인 거 같아.


1)  Trim 기능: 3D 모델링 툴인 라이노(Rhinoceros)에서 쓰이는 기능으로, 서로 교차하는 면 또는 선을 자르는 기능이다.  


수빈: 아마 라이노가 아니었으면 비정형 매스를 못 끄집어냈을 거야. 이렇게 말하니까 라이노 선전 문구 같기도 한데, 매스 스터디하면서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떠다녔던 모형들을 모델링해서 구체화할 수 있었잖아. 그게 도움이 컸지.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모형을 3D로 돌리면서 보고 수정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리고 이건 내가 아직 툴 다루는 게 미숙해서 그런 것 같은데 라이노 하면서 우연성에 많이 의존했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나올 것이다'보다는 '어떻게 될까'라는 마음으로. 그 우연성으로 여러 가지 매스들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내가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몰랐서 애 좀 먹었지. 




재원: 나는 이번에 전체적인 매스에서 직선이 하나도 없다 보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처음부터 컴퓨터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어. 그래서 처음 형태 고민을 할 때 천사 점토로 이것저것 돌려보고 꼬아보고 그랬어. 내가 직접 점토를 만지면서 매스를 만들 때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구현하기에는 좋지만 규칙적인 형태를 만드는 데에는 라이노도 좋았던 점이 있었던 것 같아. 나 같은 경우에는 점토를 통해서는 덩어리 형태, 회전하는 형태, (점토를 잡아당겼을 때의) 물방울 형태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매스 전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보다는 건물의 컨셉을 정할 때 용이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초기 컨셉에서 line적인 규칙들을 뽑아서 라이노에서 loft² 를 사용해서 모델링을 해봤는데, 라이노에서 loft 할 때 회전 시작 방향을 정할 수 있는데 그거 시작점을 다르게 하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모양들도 나오더라고. 그래서 손으로는 컨셉을 잡고, 라이노로 모델링하면서 매스를 확정 지었던 것 같아.


2) Loft 기능: 라이노의 기능 중 하나로, 높이 쏘아 올리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녔으며, 면을 형성할 때

쓰이는 기능이다 





재현: 나는 라이노에서 ‘점을 다루는 일’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예를 들어 간단히 삼각형을 만든다 했을 때, 선과 선이 만나는 점을 찍고 다루기는 것은 쉬워, 그런데 나는 보석의 다양한 결정면의 모양을 그려야 했기에 한 점에서 만나는 선이 많게는 10개까지 있었어. 내 의도대로라면 한 점에 10개의 선이 있어야 하는데, 확대해 보니 한 점에 5개의 선만 모여있고, 나머지 선들은 다른 점에 찍혀 있는 경우도 대부분이었어. 그러다 보니 오류가 뜨면 하나하나 확인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어. 내가 아직 라이노에 익숙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라 생각해. 고학년이 되어서 툴에 능숙해지면 지금의 문제는 별게 아닌 게 되지 않을까? 


 



Q. 비정형 건축물의 평면은 정형 건축물의 평면보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 많게 느껴집니다. 비정형 건축물의 평면을 그릴 때 고려했던 점들은 무엇이며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주수: 난 3층 건물이었는데 계단실 자체를 하나의 회오리 매스로 분리해서 계단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적었던 것 같아. 근데 회오리 모양 매스 속의 계단을 어떻게 floor들과 이어야 할지는 스터디를 많이 했어. 또 아무래도 비정형이다 보니까 평면에서 실의 모양 자체가 원하는 만큼의 폭이 안 나오기도 하고, 데드 스페이스가 생기기도 하는 것을 해결하느라 고민을 많이 했어. 그리고 평면을 디자인할 때 가장 많이 고려했던 점은 아무래도 외부는 블렌딩 되는 형태이고 회오리치는 복잡한 모양인데 내부도 같이 평범하면 내 컨셉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서 흥미롭게 내부 평면도 디자인하려고 노력했어. 건물 중심을 뻥 뚫는 공간을 회오리의 중심에 둬서 블렌딩 되는 매스들의 모습을 강조할 수 있었어. 그리고 부엌에는 건물을 외부에서부터 감싸 올라가는 계단실 매스 자체가 실제로 실내로 파고들어 간 채로 있게 했어. 포인트는 데드 스페이스를 최대한 줄이면서, 혹은 오히려 그런 데드 스페이스(부엌에 튀어나온 계단실 매스 때문에 그 부분만큼 데드 스페이스가 생기는 건데 오히려 이게 블렌딩이라는 내 컨셉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줬어)를 건물의 매력 포인트로 바꿀 수 있게 노력했어. 





희선: 난 가죽의 특징을 표현하는 곡면 매스가 내 건축물의 중심부 역할을 했어. 모든 실을 관통하며 가죽이 굽어진 형태를 유지하고 몇 개의 실은 실의 모양을 그 곡면의 굽어진 모양 그대로 따라서 만들려고 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폭이 너무 좁거나 실 넓이가 내 계획만큼 나오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지. 그런 경우가 가장 힘들었고, 이 문제점 때문에 매스는 완성하고 평면을 주로 디벨롭시켜야 하는 단계에서도 계속 매스를 많이 수정하게 됐어. 힘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한 컨셉이고 내 건물이라는 생각으로 놓지 않고 계속 열심히 했던 거 같아. 






수빈: 일단 내가 구상했던 매스에서 바닥을 만드는 게 제일 곤란했어. 단층 구조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거든. 하지만 스킵플로어를 알게 되면서 매스에서 만들 수 있는 평면을 찾고 그 높이를 50mm 단위로 바꾸고 그렇게 바닥을 만들고 평면을 그렸지. 건물 매스가 교차하는 형태여서 오버헤드 그림자 부분도 많이 그려야 했어. 평면을 제일 많이 수정했던 것 같아. 위아래로 곡선 형태이니까. 또 높이가 위치마다 달라서 사람이 서서 들어갈 수 있는 계단 높이를 고려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 






재원: 내 이번 매스가 회전하면서 올라가는 휘핑을 떠올리면서 만들었는데, 마치 꽃이 회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 이 회전하는 부분이 공간을 구분시켜주기도 했고, 클라이언트가 혼자 살기도 해서 굳이 방이나 문이 필요하지 않았어. 그래서 어쩌면 평면에서 공간을 구분하는 게 제한적이었던 것 같아. 이번 평면을 그릴 때에는 나는 스킵플로어의 매력이 너무 좋았서 그걸 구현하려고 고민을 좀 많이 했었어. 한 층에서 조금씩 플로어 레벨이 차이가 난다는 게 동선을 만들기에 단조롭지 않고 재밌다고 생각했고 좁은 공간에서 벽이 없이도 공간을 구분할 수 있어서 공간을 답답하지 않게 만들어준다고 느꼈거든. 그리고 방의 평면도, 외벽들도 둥글둥글하다 보니까 벽 쪽에 가구를 두기 참 애매하게 되어서 벽에다가 가구들을 custommade 해야 해서 그것도 좀 힘들었던 것 같아. 그래도 계단이나 가구들이 매스와 조화롭게 곡선으로 이어지길 바라서 전체적으로 곡선을 살리면서 디자인하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단순히 가구 배치를 할 때 앞서 말한 것처럼 custommade를 했는데 이렇게 내가 가구들을 직접 만드는 게 내 곡선 평면을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좀 어렵기도 했지만 내가 만든 가구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재현: Deadspace가 많이 생겨서 평면 작업에서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나는 외부의 형태와는 달리 내부에서 가구가 들어가는 공간은 평평하게 다듬고, 사람들이 이동하는 동선에는 비정형에서 오는 색다른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설계를 하면서 느낀 점인데 우리는 보통 공간을 설계하잖아? 그런데 나아가서 건축가가 가구에도 많은 지식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맞춤가구를 통해 비정형 설계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서 요즘은 가구에 관한 디자인도 관심 있게 보는 편이야. 



Q. 비정형 건축물을 실제 모델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비정형 모델 작업을 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을 느꼈나요?



주수: 후… 사실 이게 정말 어려웠어. 모든 면의 곡률을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모델 재료에 대한 스터디를 엄청 많이 했던 것 같아. 처음에는 3D프린터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시간상 불가능할 것 같아서 포기했어. EVA 폼 ³이랑 히팅건을 사용해서 할까, 라이싱지를 사용할까, 점토를 사용할까, 철망에 종이를 덧대서 표현할까 등등 생각해 봤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전개도를 만든 뒤에 라이싱지⁴를 휘어서 만들었어. 그리고 1층 퍼퓸샵의 경우에는 유리가 휘어진 매스인데 이거는 pvc판을 히팅건으로 모양을 조절해서 만들었어. 다만 면들이 접합되는 각도나 벽면의 두께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남은 방학 동안 좀 더 고민해서 다시 만들어봐야 할 것 같아. 


3) EVA 폼: 일종의 발포 고무와 비슷한 재료로 푹신푹신한 재료이다.

4) 라이싱지: 두툼한 종이의 일종으로, 건축 모형을 만들 때 많이 쓰이는 재료이다.



 


희선: 3D 프린터를 쓰고 싶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론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 비정형인 부분은 1:50 비율의 모형 상에서 6mm짜리 두께의 곡면뿐이고(조금 복잡하게 굽어 있긴 하지만) 거기에 구멍만 잘 뚫으면 타원형 매스는 쉽게 만들어서 끼울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서 그 곡면을 만들 방법에 대해 조사를 해봤는데, 이렇게 많이 구부러져야 하면서 두껍고 큰 매스인 사례는 없었어. 재료부터 난관이었지. 그러다 우연히 찾게 된 코스프레용 가면이나 소품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는 EVA 폼을 이용했어. EVA 폼에 히팅건으로 열을 가하면 쉽게 모양을 잡을 수 있대서 그걸로 정한 거였는데, 구멍을 뚫어 서로 힘을 주고받지 못하는 EVA 폼의 모양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또 내 타원형 매스들이 서로 겹치면서 스킵플로어를 형성하는 게 생각보다 복병이어서 전체적으로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컸어. 사실 지금 내가 제출한 최종 결과물보다 더 잘 만드는 건 그냥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뿐인 것 같아. 차분하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면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 것 같아. 






수빈: 3D 프린터 도움을 받으려고 했거든? 근데 그럴 여건이 안 돼서 직접 우드락으로 층층 쌓아서 모델을 만들었어. 지하까지 포함해서 약 12 미터 되는 건축을 스케일에 맞춰서 잘랐는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곡선의 경우는 나름대로 곡선의 형태가 나왔는데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곡선은 간격이 크게 보여서 구현되지 않더라고. 찰흙을 넣어서 깎아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만든 것도 바스러질 것 같아서 겁나서 못했지. 피스들로 나눠서 굽혀지는 재료로 만들어도 봤는데 그렇게 되면 벽 두께를 만들기 어렵더라고. 비정형은 3D 프린터가 답인 것 같아. 






재원: 난 사실 내 건물을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3D 프린팅을 해야 했어야 했는데 내 라이노 모형이 그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고, 시간도 없어서, 폼보드에 500mm 간격으로 도면을 층층이 뽑아서 잘라서 붙였어. 그리고 얘네들을 정확하게 수직으로 붙인 후에 각진 부분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사포로 갈아서 정리했어. 곡면이다 보니까 우드락을 자르기 되게 힘들었는데 그래서 이번에 열선이라는 장비를 사기도 했어. 외벽은 사포로 마무리해서 얼추 그럴듯해 보이긴 하는데 내부를 사포로 갈 수가 없으니까 내부 모습이 잘 구현되지 못한 점은 좀 아쉽긴 하더라. 그래서 더 얇은 우드락을 사용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근데 이런 방법도 해보고 저런 방법도 해보면서 배워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재현: 모델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접합되는 점과 면을 정밀하게 맞추는 게 힘들었어. 처음에는 모델이 간단하니 맞춰서 만들었지만, 내부와 외부 공간이 점차 복잡해지면서 하나하나 신경 쓰지 못하다 보니 완성된 모델에 가서는 힘들어졌어. 







<번외질문> 


Q. 설계가 가장 하기 싫어질 때가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주수: 매주 힘들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있는데 이를 3D 모델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

희선: 도저히 하나를 꼽을 수가 없어…

수빈: 평면 구성할 때랑 모델 만들 때

재원: 나는 건물의 형태를 수정하려면 전체적으로 다 다시 만들어야 했었는데, 교수님이 부분 부분 수정하라고 할 때 계속 다시 만들어야 해서 하기 싫어지기도 했었어. 매스 형태 다 정해진 다음에 가구 넣어야 했었는데 비정형이 아닌 애들은 캐드 소스나 라이노 소스 끌어오는데 나는 하나하나 도면에서 그리고 라이노에서 만들고 그거 또 수정하고 하는 게 많이 힘들기도 했어. 그리고 모델 만들기 위해서 열선으로 한층 한층 다 자르는데 그것도 힘들었지.

재현: 컨셉에서 머릿속에 상상한 모형과 느낌이 있었는데 실제로 모델링해보니 어색해 보이고 앞으로 디벨롭해도 더 나아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하기 싫었어. 나는 중간 크리틱 직전에 그냥 컨셉과 모델을 다 뒤집을까도 고민했었어. 그런데 이미 반 이상 시간이 흘렀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냥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자 해서 모델링 작업을 더 파고들었어. 


Q. 비정형 건축 설계의 매력은?


주수: 다른 건축보다 틀에 갇혀 있지 않는다는 점? 매스를 표현하는 방법을 보다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고, 평면도 흥미로운 모양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점?

희선: 없어요. 없습니다.

수빈: 만들고 나면 격한 감동이 밀려온다는 거? 세상에 내가 비정형을 했다니. 곡선이 주는 감동도 있고.

재원: 나는 정형적인 것들은 깔끔하면서 아름답고, 비정형적인 것들은 특히 곡선을 사용하게 되면 조금 더 우아한 맛이 살아나면서 아름다운 것 같아. 포근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공간들을 감싸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그리고 비정형 건물이 더 눈에 띄고 만들 때 손이 더 가서 그런지 이제는 비정형을 사용하지 않으면 뭔가 만들다가 만 느낌이 좀 들기도 해서 계속해서 비정형을 하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 물론 컴퓨터로 표현할 때 더 많이 힘들긴 하지만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라 앞으로의 나의 설계도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아. 그래도 아름다움,,, 놓칠 수 없어,,, 예쁜 게 최고야…

재현: 아무래도 비정형은 일반적인 정형 건축에 비해 외관에서부터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오잖아? 설계하는 동안은 너무 힘들지만, 나름 완성된 후에는 정형 설계보다 더 독특하고 애정이 가는 것이 사실이야. 그리고 비정형을 설계가 많아지면 미래에 더 다양한 모양의 건축이 생겨서 재미있겠다는 상상도 하는 것 같아. 


Q. 한 학기 동안 비정형 건축 설계를 한 소감을 말해주세요.


주수: 한마디로 애증이 맞는 것 같아. ‘오 뭔가 멋진 것 같아!’ 랑 ‘아 내가 이거 왜 했지 진짜’ 이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했어. 그래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후회하진 않고 나름 만족해. 그리고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의 설계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

희선: 한 번 비정형 건축 설계를 한 사람은 그 매력에 빠져 다음 학기에도 비정형 건축 설계를 하게 된다는 얘기가 있어. 난 다음 학기 설계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주제가 비정형 건축물, 곡선, 뭐 그런 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각형 건축물을 만들 거야. 꼭.

수빈: 내적 갈등이 엄청났던 비정형 건축이었어. 그래도 기회가 되면 또 하지 않을까? 지금 설계가 끝나서 미화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

재원: 내가 힘들다고 남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얘기해 보자면 비정형 매스를 라이노로 구현하고, 비정형 평면에 맞는 가구를 직접 만들고, 도면을 그리고, 모델을 만드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조금 더 노력이 필요했던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해. 그래서 비정형 프로젝트가 나는 좀 더 애착이 가게 되고 소중해지고 더 열심히 해서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나름 만족스럽게 끝난 것 같아. 설계할 때는 진짜 그만하고 싶고 매일 밤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설계 그만하고 싶기도 했는데 결과물을 보고 나니까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되면서 추억이 되더라.

재현: 힘들었어. 진짜 힘들었어. 모든 설계가 힘들겠지만, 특히나 모양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어떤 모양이 더 예쁜지 계속 시도해봐야 했어. 이 모양이 괜찮은지 저 모양이 괜찮은지 사람들한테도 물어보고 교수님께 물어보고, 그러다 보니 서로 의견도 다르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설계를 하는 것인 것 아니면 조형예술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더라고. 그래도 한 학기 지나고 보니, 내가 실력을 쌓으면 더 나은 비정형 설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다음 학기에도 비정형을 할지 모르지만, 비정형 설계는 마약같이 중독성이 강한 것 같아. 설계하는 동안에는 싫은데, 완성하고 보면 다른 정형 설계보다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야.


인터뷰 도움 | 이주수, 김희선, 안수빈, 조재원, 조재현

사진 제공 | 이주수, 김희선, 안수빈, 조재원, 조재현

그림 | 송유연 



게재 : Vol.11 건축과 거리두기, 2020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S | 조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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