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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pr 03. 2024

비정형 건축

11호_건축과 거리두기_프로잡담


한 학기 동안 비정형 건축물 설계를 하며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설계의 과정과 방식에 따라 결과물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비정형 건축물에서 구조적인 부분은 어떤 식으로 고려되며, 시공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의 해답을 얻은 질문들, 궁금증을 위주로 비정형 건축 Q&A를 작성해 보았다. 이 Q&A가 본인들의 설계, 디자인 과정에 새로운 영감을 더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해 본다. 


형태를 생성해 내기 위한 디자인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우연성을 기반으로 형태를 생성하는 방식 외에 또 어떤 디자인 방식이 있을까? 





종종 설계하며 더 나은 형태, 더 이뻐 보이는 형태를 찾기 위해서 손에 들린 재료들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서로 맞추어 보곤 한다.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해 우리는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볼 수밖에 없고, 우연성이라는 요소는 필연적이다. 이러한 우연성을 활용해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를 디자인해 볼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건축가가 고려해야 하는 구조, 시공의 디테일들은 결코 우연성에 기댈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연적으로 생성된 형태를 실제 건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형태적으로 많은 수정이 필요하게 된다. 다양한 형태를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구조적으로도 안정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인 방식은 없는 것일까? 


비정형 건물의 형태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 중 생물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패턴을 생성하는 방식이 있다. Morphogenesis 기법이라고 알려진 이 방식은, 생물학적인 알고리즘을 이용해 비정형구조물의 구조패턴을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 기법은 자연생명체가 자기 성장을 통해 얻어지는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를 생성하여 건축물에 적용하기 위한 생물학적 모델링 방안이다. Morph-ogenesis 기법의 다양한 형태생성 모델 중 하나인 L-system 모델에 대해 알아보자. 


L-system 모델은 알고리즘에 따라 문자열을 생성하고, 그 문자열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1 [0]1 [0]0이라는 배열에서 1은 나뭇잎이 붙어있지 않은 가지, 0은 나뭇잎이 붙어있는 가지, [ ]가 새로 뻗어 나가는 가지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면 이 숫자열은 다양하게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알고리즘의 규칙에 따라 이 숫자들은 끊임없이 자기로부터 다음 세대를 재생산해서 스스로 형태를 생성해 나가게 된다. 비정형 구조물의 패턴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원리가 쓰인다. 간단히 비정형 구조물의 패턴 형성 방법을 소개해보겠다. 


비정형 구조물의 구조패턴을 생성하기 위해 사용문자, 치환규칙, 초기문자, 반복 횟수의 데이터를 설정하고, 이후 초기문자에 치환규칙을 반복 적용하면 최종문자열을 생성할 수 있다. 생성된 최종문자열을 절점(구조물을 구성하는 부재와 부재의 접합점)의 좌표로 가정하고, 문자열에 따라 절점의 이동 및 회전각의 크기를 달리하면 구조패턴을 형성해 낼 수 있게 된다. 가령, 사용문자로 A, B, C를 두고, 치환규칙은 A→CB, B→BA, C→AC, 반복 횟수를 3이라고 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초기문자가 C일 때, 반복 횟수에 따라 문자열은 AC, CBAC, ACBACBAC와 같이 생성됨을 알 수 있다. 이후 아래 그림과 같이, 생성된 최종 문자열을 절점의 좌표

로 가정하고 해석을 수행하면 된다. 





김호수, 오주영, 박영신, 「생물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한 비정형구조물의 패턴생성」(2012). 


이 방식을 이용하면 건물의 디자인과 구조를 동시에 고려해서 건물의 형태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방식도 패턴이라는 일정한 규칙을 지닌다는 점에서 형태적으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우연성을 바탕으로 건물의 형태를 디자인하는 방식 외에도 이처럼 다양한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본인의 설계에 맞는 방식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더 적합하고 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공간의 활용성, 경제성 vs 건축가의 의도, 디자인. 무엇이 우선일까? 





비정형 설계 시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점 중의 하나가 공간의 활용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벽이 곡면인 경우, 각이 져 있는 경우,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가구의 배치도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이용 가능한 면적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곡면의 휘어짐 정도를 조절하거나 벽의 기울기를 조금씩 조절해서 초기 디자인 컨셉은 살리면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로 지어진 비정형 건축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비정형 건축물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현상 설계와 계획 설계 단계에서의 변화를 살펴보자. 먼저 현상설계 당시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정도의 층수를 보이고 있지만, 계획설계 단계에서는 요구면적의 증가로 인하여 지하 3층, 지상 4층으로 계획되었다. 이처럼 비정형 설계 시 요구되는 면적을 맞추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 비정형으로 디자인한 처음 형태를 그대로 건물로 쓰려고 하면 기울어진 벽면으로 인하여 사람이 서서 다닐 수 있는 면적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하로 층수를 늘려 면적을 확보하거나 스킵플로어의 공간 구성을 활용해 층 구분으로 인한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² 스킵플로어: 건물 각 층의 바닥 높이를 일반적인 건물과

같이 1층분의 높이 만큼씩 높이지 않고, 각 층계참마다 반층차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한, 내부공간 실의 형태 및 배치에 있어 현상설계 당시에는 비정형 형태였지만 계획설계 단계에서는 실의 공간 효율성 및 경제성을 고려하여 정형적인 형태로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비정형 설계를 하다 보면 형태적으로 마음에 무척 드는데, 공간적으로는 활용하기 힘든 부분이 꼭 생긴다.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다 보면 공간의 효율성 또는 이용자의 편의를 생각할 것이냐 아니면 건물의 디자인 또는 재미난 공간 구성을 선택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모두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한쪽은 부분적으로나마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DDP의 수정된 도면을 보면 수정 전의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내부 벽면이 모두 정형적인 형태로 바뀌어 있다. 기존의 곡선으로 된 벽면에서 이용자들은 새로운 공간을 체험하며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상업시설이라는 현실적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도면을 수정했음을 알 수 있다. 공간의 효율성 및 경제성을 고려할 것이냐, 디자인적인 요소를 고려할 것이냐는 건축가와 건축주의 우선 사항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며, 두 요소 사이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손으로 만든 실물 모델을 디지털 모델로 변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번 학기에 비정형 건축물 설계를 하며 가장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 실물과 디지털 모델 사이의 변환이었다. 1학년 때는 라이노와 같은 컴퓨터 툴을 잘 쓰지 못하더라도 설계 수업을 하며 느낀 큰 한계점은 없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나무젓가락, 실, 철사와 같은 실물의 재료들을 활용해서 이루어졌고,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것에 흥미를 느끼곤 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이번 설계 수업 때도 학기 중반까지는 계속 여러 가지 실물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나무 막대, 실, 그리고 폼보드를 다양하게 잘라보고 이어보고 돌려가며 마음에 드는 형태와 공간을 구성해 내기 위해 노력했고, 스스로도 만들어낸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본드로 단단하게 붙여 놓은 나무막대와 폼보드들 사이로 자를 들이밀어 길이를 잴 수도 없었고, 면적을 계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수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평면을 구성할 수도 없었고, 실물 모델을 바탕으로 패널에 쓰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즉, 디지털 모델이 없이는 설계를 구체화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실물 모델을 만들 때의 디자인 방식과 비슷하게 라이노에서 아예 새로운 모델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손으로 만든 모델에서 느껴지는 형태적인 미에 비해서 라이노 상의 디지털 모델은 무엇인가 아쉽게 느껴졌다. 손으로 만든 모델에서의 아름다움을 라이노에서 살리지 못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더욱 3D 모델링 툴로 디자인을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실물 모델을 디지털 모델로 만들어주는 기술이나 장치는 없는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지어진 비정형 건축물들은 어떤 디자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해졌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해 알게 되면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에는 3D Digitizing이라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과정은 3D 스캔 장비를 이용해 실물 모형의 좌표 정보를 추출하여 디지털 모델로 만드는 과정이다. 따라서 게리는 수작업을 통해 실물 모델을 완성하고, 3D Digitizing 과정을 거쳐 이로부터 디지털 모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물 모형이 디지털 모델로 완벽하게 전환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변환된 디지털 모델을 바탕으로 다시 실물 모형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디지털 모델의 정확성을 검증한다. 이처럼, 게리의 실제적인 디자인은 실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실물 모델을 통해 수작업의 장점을 그대로 살릴 수 있게 된다.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그가 더욱 과감하지만 자연스러운 비정형 건물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를 하며 느꼈던 한계점들과 이에 관한 고민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게리 본인도 초기에는 컴퓨터 상에서 구축하는 모델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디지털 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도부터 계속해서 디지털 모델을 활용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가며 지금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디지털 툴은 디자인 과정과 구축 과정을 아우르며 비정형 건축을 가능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 때 이러한 디자인 프로세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비정형 건축물을 대하는 건축가로서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여러 비정형 건축물을 설계한 김찬중 건축가는 그의 비정형 건물들에 대해 ‘모두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시도한 것일 뿐, 일부러 특이한 건물을 지으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가 설계한 ‘강남 커머셜 빌딩’의 비정형 공간은 건축법상 지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내부 공간을 넓히기 위한 방법으로 기존의 네모난 모양의 건물에서 벗어나 건물의 모양을 찐빵처럼 부풀린 것이다. 


   




다른 예로 그가 설계한 ‘한남동 오피스’가 있다. 보통 오피스 공간에 발코니를 만들면 면적에 포함시킨다. 우리나라에서는 발코니에 창문을 달아 실내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곡선 형태로 발코니를 만들어 발코니 면적을 실내 면적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곡선 형태의 발코니에는 창문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건축주에게는 기존보다 더 커 보이는 건물을 제공할 수 있었고, 직원들은 언제든 외부로 나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의 입장에서 비정형 건축 설계를 하게 된 계기에는 독창적인 형태를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 디자인 능력을 인정받고 또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설계 과정에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형태적인 아름다움, 독특해 보이는 건물 내외부 디자인에 가장 신경을 많이 쏟은 것 같다. 실제로 건물 속에서 살아갈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하는 과정, 그리고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 논리를 구축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물의 용도에 알맞게, 앞서 말한 가치들이 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비정형 건축물은 그 가치와 잠재력을 더 뽐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찬중 건축가가 한 말을 인용하며 건축가로서 비정형 건축 설계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실험적인 공법과 소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특이한 모양을 전제하고 접근한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려면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 되니까. 좀 더 많은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형태로 건물을 짓고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호수, 오주영, 박영신 (2012). 생물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한 비정형구조물의 패턴생성.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구조계, 28(8), 53-60

하지희, 정성원 (2010). 비정형 건축의 설계프로세스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 계획계, 30(1), 277-279

이재국, 이강복 (2011). 비정형 건축 구현을 위한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한 연구. 한국디지털건축인테리어학회 논문집, 11(2),

10-16

박정대, 김진균 (2004). 프랭크 게리의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계, 20(10), 173-182

추은희 (2018.05.10). 건축가 김찬중 vol.2 실험적인 건물이 아니면 설계하지 않는다 [온라인 블로그] 



도판목록

사진출처

사진1 | Pixabay(pixabay.com/)

사진2 | INHABITAT(inhabitat.com/)

사진3,4 | THE_SYSTEM LAB(thesystemlab.com/)




게재 : Vol.11 건축과 거리두기, 2020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S | 조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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