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고충 배틀
독박 육아하는 워킹맘. 나보다 더 힘들어?
한때 모든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를 혐오한 적이 있다. '생각과 관점을 바꿔라'. '잃은 것보다 얻은 것에 집중하라'. '깨달음을 찾아라'... 등등 이런 모든 말들이 부질없는 소리로 느껴진 적 말이다. 왜냐면 심신이 너무 지쳐 있어 마음이 꼬였고 꼬인 덤불 위로 가시가 돋아 났기 때문이다. '쳇. 나보다 힘들어 봤어?' 이런 심사? 그런데 요즘이 그렇다.
아침 7시 반. 잠에 못 이기는 아이를 겨우 깨운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앉아있는 아이에게 성급하게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긴다. 그리고 유치원 가방을 챙긴다. 유치원 가방에는 급식판과 그날 마실 물(작두콩차)을 우려 물통에 넣어주고 방과 후 수업에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읽을 책을 골라 넣어준다.
8시 10분 유치원 앞에서 아이와 작별인사를 여유롭게 하고 직장으로 허겁지겁 뛰어간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업무 특성상 상담실에서 혼자 일한다. 소통 단절) 문서를 생산하고 6시에 퇴근한다. 아직 상사가 퇴근을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원해야 해서요.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죄인 아닌 죄인처럼 인사하고 또 뛰어간다.
6시 50분. 피아노 학원 앞에는 아이와 아이의 단짝 친구. 그리고 그의 엄마와 퇴실 정리와 퇴근 준비가 이미 끝난 원장님. 이렇게 네 명이 내가 오는 쪽을 바라보고 서서 나를 기다린다. 아이의 단짝이며 옆 동에 사는 친구가 '감이랑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학원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나는 또 연신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하고 또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사죄를 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항상 똑같이 패턴. 허락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곧장 놀이터로 뛰어간다.
나는 배고프고 피곤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궁금했다. 이 일하지 않는 아이 단짝 친구의 엄마는 아이가 없는 동안 무얼 하는지.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뭐하세요."
"필라테스 해요. 산책도 하고. 시간 금방 가요."
"아..."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이들 소재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갑자기 궁금해서 더 호구 조사를 해보았다.
" 이사 계획은 없으세요? " (여러 가지 의도로)
" 저희는 계속 여기서 살 거예요. 동네가 마음에 들어 사서 들어왔어요. "
'헉... 서울 30평대 자가 아파트. 물론 당시에는 이 정도까지 고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3년 만에 3배가 올랐으니... 암튼 내 기준에는 부자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자금 도움 없이 결혼해 대출 낀 전세 살고 여태 쉬지도 않고 맞벌이하며 달렸는데...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어떻게 비교가 안될 수가 있는가.
7시 30분 놀이터에서 집으로 온다. 저녁을 준비하고 먹이고(혼자 먹지 않는다. 식탐이 없어 입에 넣어 줘야 먹는다. 늘 저녁에 "먹어. 씹어. 삼켜"를 백번은 하는 것 같다)
학습지를 시키고 그 사이에 서둘러 집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한다. 그 후 아이를 씻기고 말리고 동화책 3권을 읽어 준다. 퇴근 후에는 잠들 때까지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밤 10시. 아이가 잠들고 나도 잠든다. 이렇게 하루의 패턴이 끝난다. 지금 나에게는 시간이 흐르는 것만이 약이다. 아이가 빨리 자라기를... 대신 나의 늙음을 감수해야겠지만. 요즘은 체력도 몹시 딸린다.
나는 취업한 이후부터 헬스와 수영을 안 다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안 다닌다. 아니 못 다닌다. 아이 두고 운동 갈 수도 없고... 시간도 없고... 그럼 타인들은 집에서라도 운동하라고 하겠지... 에너지 총량의 법칙?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의 에너지는 빼야 하다. 육아와 가사와 업무와 자기 관리 중 나는 자기 관리를, 내 몸 챙기기를 놓아 버린 것 같다.
일찍 잠든 탓에 늘 새벽에 깬다. 그러면 알 수 없는 불안과 왠지 모를 슬픔이 엄습한다. 슬픔은 공허함과 비슷한 것 같고 불안의 실체는 상실이다. 나를 살게 해주는 가족의 완전한 상실. 죽음이다. 아마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때 무너졌던 원가족 때문인가 싶다.
남편은 올해 1월 워커홀릭들이 몰려 일한다는 곳. 모두가 기피하는 본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관사에 산다. 승진 매리트가 있는 것도 성과를 더 잘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그곳을 선택한 것은 '너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주변의 기대와 자신의 '인정 욕구'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성격을 알기에 가라고 했다.(내가 가라 마라 선택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난 생각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따금씩 무너진다. 특히 하루 일과 중 아이가 떼를 부리면 더욱 무너진다. 친구들과 지인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독박 육아에 워킹맘으로 사는 여자는 정말 나밖에 없다. (대인관계의 폭이 좁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도 반드시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를 신조로 열심히만 살아왔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은지...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결과는 노력을 배신한다고. 책 내용 중 하루키 에세이집에 실렸던 이야기가 있다.
'배가 난파돼서 뗏목에 남자와 여자가 남았다. 둘을 바다에 떠다니는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버티다 더 이상 마실 맥주가 떨어져 가자 여자는 살아야겠다며 헤엄쳐 어떤 섬으로 갔고 남자는 남아서 술만 마셨다. 둘은 나중에 각각 구조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떤 섬의 주점에서 둘이 다시 만난다.
남자는 여자가 반가웠는데 여자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살았지!', '난 당연히 죽은 줄만 알았어. 억울해.' '난 죽자 살자 헤엄쳐 얻은 삶이라고!'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니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노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 노력을 즐기고 과정에 의미를 두라는 말이다.
처음 시작에서 말했듯이 꼬여 있는 심사에는 어떤 말도 와닿지 않다. 오늘은 부정적인 마음에 완전히 완패한 날이다.
그래도 찾아본다. 독박 육아하는 워킹맘으로 얻은 것들을...
1. 브런치와 독서 : 하루의 끝에 그날의 감정과 생각과 느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 감정을 세탁하고 말려 잘 개어 넣어 둘 곳이 필요해 2월 말부터 시작한 브런치인데, 지금 내 삶의 낙이다. 새벽의 주된 정서 '불안'.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잊어버린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튼다.
또한 내가 쓴 글이 뭐라고 공감해주고 댓글 남겨 주고 구독을 해주신다. 몹시 감동적이고 감사하다. 조만간 시간 내 구독해 주신 분들의 글도 다 읽어 보는 것이 목표다.
2. 날로 느는 주량? 저녁 반주로 양주 서너잔에 피로를 씻는다.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난다. 누가 나에게 '힘든 삶에도 네가 아프지 않은 것은 술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 이라며 일은 땡땡이치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자꾸 꼬셨던 선배가 있었다... 주량이 늘어 좋은 것 하나 없구먼. 얻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없네. 없다. 하나도 없다. 얻은 것은 브런치 글쓰기 외에는.
어쨌든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니고 '내가 제일 힘들어' 외치는 사람들과 만나 삼겹살에 쏘맥을 마시며 고충 배틀을 해보고 싶다. 결코 이기고 싶지 않은 배틀을. 그리고 여기저기 쓰임이 많은 서로의 가치를 말없이 응원하고 또 위로받고 싶다.
눈빛만으로. 존재함 만으로도 충분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