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
숨이 막혀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의 쾌청한 하늘과 바다는 마음을 트이게 하는 묘약이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서른 해 가까이 살며 출장과 여행 등으로 자주 오갔던 섬이다. 그럼에도 제주에는 지친 마음 달래주는 힘이 있었다. 도로 옆 목장, 풀 뜯는 말 서 있는 초원, 책 넘기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법한 카페 등 일상으로부터 도피한 사람을 반기는 곳이었다.
이번 제주에서는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았다. 수영은커녕 물이 무서워 바다에 들어가면 허우적대는 내게 서핑은 특기할 만한 도전이었다. 강사들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햇볕에 그을리다 못해 보기 좋게 익어버린 그들의 몸에서 젊음과 생기가 빛났다. 그들은 내 어색한 자세 때문에 계속해서 푸하하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웠기에 같이 농담 따먹기를 하며 놀았다. 이렇듯 설렁설렁 배운 채 입수하니 보드 위로 일어설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보드 위에 엎드린 내 뒤에 선 강사가 하나, 둘, 셋 구령 끝난 채 힘껏 밀면 취해야 하는 동작을 하기도 전에 물에 빠졌다. 평소 같았으면 혼절할 정도로 놀랐을 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해수욕장에서는 빠지는 일이 겁나지 않았다.
승마도 했다. 제주에서 시 쓰며 농사짓는 T 오빠가 데려간 승마장이었다. 내가 탄 말은 슈팅스타라는 이름의 어린 수컷이었다. 온순하지만 식탐이 강해 구보를 하다가도 멈춰 발밑의 풀을 뜯어먹는 아이였다. 나는 이 말 위에 타는 것이 미안해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잘 부탁한다. 말 위에 올라타 교관의 휘파람 소리에 맞춰 한 바퀴 돌았다. 말이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그의 등 위로 엉덩이를 내리 찧었다. 승마장의 대표와 교관은 이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연실 웃었다. 다행히도 몇 바퀴를 돌고 나자 자세가 편안해졌다. 하지만 승마를 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꼬리뼈가 욱신거린다.
제주에 함께 간 H 언니는 능숙하게 스쿠터를 몰았다. 우리는 훤히 등 파인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해안도로를 내달렸다. 뒤에 오던 차들이 앞질러 창문 내리고 우리를 쳐다봤다. 대부분 언니와 내가 즐거운 듯 미소를 짓거나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고개를 내젓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렴 언니와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게 없어진다.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계속해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제주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제주는 제법 큰 섬이다. 수년 전 내가 지냈던 지중해 위의 섬인 몰타도 제주의 1/6 면적밖에 되지 않는다. 드레스 한 겹만 입은 채 스쿠터 위에 한참 있었더니 어깨와 등이 빨갛게 타버렸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저녁이면 알로에 젤을 어깨 위에 바르며 아프다. 너무 아파. 말하고 다시 웃었다.
다음날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제주도다. 행복해. 이 맛에 사는 거지. 나는 언니가 운전하는 스쿠터 뒷좌석에 타 곧 그만둘 회사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