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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Aug 26. 2023

동네기록자, 학익동지킴이 / Eunbee's 로컬이야기

[로컬향기 7] 내가 살던 동네를 기록하고 아카이빙 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 : Eunbee's local interview




<시작하며>

우리 동네를 잘 아는 분들은 몇명이나 계실까?

정말 많다면 그 증거를 어떻게 증명해볼 것인가?

그동안 내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아카이빙하는 사람들은 몇명이나 있을까?

단지 보여주기가 아닌 직접 분석하고 자신의 느낀점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분들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위에 기재된 질문에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작가님이 있습니다.

곽은비 작가님과 짧지만 굵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여러 피드백이 오고 갔는데요.

(하하 물론 제 착오와 더 뚜렷하게 정보확인을 하지 못한 불찰도 있었습니다. 무안)

제가 던진 질문보단 작가님의 답변에 더 중점을 두고 읽어보길 권유합니다.

(그 이유는 읽다보면 이해할 것입니다. 전 작가님의 글을 읽다보면 한편의 스토리를 읽는 듯 했거든요.)


.

.



Q1. 자기소개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D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성골 인천人 곽은비입니다. 

제가 자라고, 현재까지 사는 동네이자 재개발로 사라질 ‘학익동’의 모습과 추억들을 아카이빙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Q2. 본인의 기록에 대한 강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현재 어릴적부터 거주하는 동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있어서 강점이 있다면 제가 동네 주민이자 토박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대한 수 많은 추억과 기억이 있고, 저희 아버지도 이 동네에서 국민학교를 나오시고 현재까지 거주하고 계십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이북지역의 피난민이었는데, 인천에서 정착해서 저희 아버지를 낳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동인천 일대에서 태어나셨는데, 어릴적 7살 즈음 현재 지금의 동네로 할아버지께서 집을 마련 후 정착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거주한 지 5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한 다리만 건너도 주민분들을 쉽게 만나서 인터뷰 할 수 있고, 건너건너 부탁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쪽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저희 옆집만 해도 아파트 입주 초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학익동 토박이로 50년 넘는 시간 동안 쭉 사셨습니다. 그 집은 삼대 모두 학익동에서 나고 자라서 인터뷰하면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제가 이 지역의 ‘토박이’ 집안이기에 강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익동 제국제마주식회사 조선인 사택 골목을 탐방 중인 모습.


Q3. 현재 본인이 살았던 학익동에 대한 아카이빙 과정을 담당하시던 계기가 무엇일까요?


사실 학익동을 아카이빙 하기 전에 인천의 ‘지역사, 향토사’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지금 29살인데(만나이 전 한국 나이 기준), 고등학생 때부터 지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 인천광역시나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발간한 조사보고서, 도서를 읽고 공부했습니다. 성인이 돼서 시간적 자유를 가진 이후 인천 내 여기저기서 무료로 진행하는 지역사 강의들을 찾아가서 듣고 공부하고 답사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제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애향심이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지역사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우리 동네보다 오래된 구도심과 개항장 일대인 ‘차이나타운, 동인천’에만 관심을 두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의 과거는 무엇이었지?’라는 호기심이 어느 날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가 대략 2015년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여쭤보고, 아버지한테도 여쭤보면서 우리 집 자리에 큰 방직공장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작점인 일제강점기 경인공업지대까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지루하다 느낄 이 부분들이 저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학익동이 바다랑 아주 가깝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경인공업지대를 개척할 때 내륙인 학익동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궁금증이 생겨 직접 찾아보며 관심을 가졌습니다. 덕분에 학익동의 역사를 많이 알게 되었고요. 그렇게 한창 우리 동네, 즉 학익동에 관해 공부하면서 천천히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아카이빙에 관심이 생겨서 무조건 ‘기록’을 했습니다. 딱히 그 기록물들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은 하지 않았고, 사라진다고 하니 ‘일단 기록해야겠다’라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학생이라 학부 공부에 집중하고(전공이 전혀 다릅니다.), 제가 학교가 타지라 자취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시절 동안은 인천 - 학익동과 조금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 인천으로 돌아왔는데 그 시점이 2019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인천 지역사에 관심을 두고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기록 활동들이 그리 자유롭진 못했죠.


그러다 작년에 집 뒤에 문화원에 취직해서 1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 당시 지금 기록하고 있는 학익동이 제 출퇴근길이었어요. 집에서 도보로 20분이면 출근할 수 있었고 매일 걸어 다녔는데 2022년 8월쯤부터 퇴근길이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불빛이 점점 사라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대형 폐기물 쓰레기가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재개발로 사람들이 한창 이주하던 때였고, 그제야 혼자 조급함을 느끼고 ‘학익동 아카이브’ 계정을 제작하고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10월에 퇴사하였고 현재의 계정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중입니다.




Q4. 작가님만이 추구하는 학익동 문화기획 일부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세요

(작가님의 무한한 생각 모두 통용됩니다.)


아이디어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이 학익동 문화와 기록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학익동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물론 거대하게 제가 해볼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지만 그나마 작업실 겸 전시 공간을 만들고, 학익동과 관련된 굿즈도 만들어보고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학익동 투어’도 진행해보고 싶어요. 


미추홀구 학익동은 인천 내에서도 엄청나게 평범한 동네입니다. 인천 사람 중에서도 잘 모르는 지역이며, 제가 학익동을 소개할 때 인천 - 부천 남성들에게는 ‘병무청이 있는 동네’. 다른 분들에게는 인천 3대 떡볶이 ‘얼레꼴레’가 있는 동네, 혹은 인하대학교 옆 동네 정도로만 설명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재미있는 풍경도 많고, 역사도 꽤 깊은 곳이 바로 학익동입니다. 특히 앞서 설명한 듯이 저희 가족들이 학익동에 대한 추억이 많은 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기획을 해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곽씨네 3대의 추억 따라 걷는 학익동 투어’ 느낌으로 저희 할아버지가 소개해주는 학익동의 모습과 산책길 투어 등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Q5. 왜 하필 자신의 어릴 적 배경에 대해 더 관심이 많으신 걸까요?


최근에 저도 이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저는 3남매 장녀인데, 제 동생들만 해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렸을 때 추억에 깊게 잠겨서 사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생들한테 종종 옛날 기억을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동생들이 ‘대체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봐?’라고 재질문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나만 다를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저에겐 그때의 기억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추억과 기억에 초점을 더욱 맞추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학익동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냈을 때가 초등학교 시절밖에 없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 중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뺑뺑이(지역 내 학교 임의 배정 제도)로 인해  집에서 버스로 30분 이상 걸리는 중학교에 배정받았습니다.


또한, 고등학교도 옆 동네 학교를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야자도 있고, 학원도 가야 하니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집 - 학교만 반복해서 학익동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고 물론 대학생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학익동’에 시간을 온전하게 보냈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으로 아카이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가 걱정도 없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에 그때의 추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Q6) 최근 4월에 작가님의 개인 전시 <학익동>을 기획 및 진행하시면서 가장 뜻깊었던 점과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점이 각각 무엇이며그 힘든 점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우선, 제가 학익동에 대한 인사이트는 많지만, 그것에 대해 풀어낼 작업물이나 결과들이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특히 제가 전시를 진행한 ‘스페이스 빔’이라는 공간이 생각보다 되게 넓습니다. 과거 양조장 공장 건물이었기에 규모가 꽤 있고 그 안을 혼자서 다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더욱이 제가 사진이나 미술작가들처럼 정식 ‘작품’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닥치는 대로 찍어놓은 수 만장의 ‘사진 파일’밖에 없었습니다. 이마저도 로우파일이 아니라서 인쇄로 크게 뽑아내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시 제안을 3월에 받고, 4월로 날짜를 확정하면서 인천, 경기, 서울 수도권의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보러 가면서 레퍼런스를 끊임없이 찾아다녔습니다. 저는 창작에 약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를 적용해서 활용하는 건 창작보다는 잘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와 꼭 맞는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아카이브 전시나 강연 등을 어떤 경우라도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바쁘게 산 것 같습니다. 원래 저는 귀찮음과 게으름,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시 준비하면서는 여기저기 휘몰아치며, 서울도 사람 많아서 가기 싫어하는데 일주일에 2 ~ 3 번씩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전시에 꼭 작품이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꾸미기에 능하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전 다이어리 꾸미기나방벽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전시장 = 재개발을 앞둔 학익동’으로 꾸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전체적인 컨셉이 잡히면서, 그때부턴 일이 술술 풀리더라고요. 재개발단지에서 어떤 오브제를 수집해야 할지, 어떤 사진들을 추가로 촬영해야 할지, 어떤 내용을 전시에 담아야 할지 좀 더 면밀하고 계획적이고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든 점은 이런 내용이었고, 그 힘듦을 해결한 건 마감일(데드라인)이었습니다.


역시 사람이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래서 여러 비슷한 레퍼런스를 엄청나게 찾고 오브제 수집도 하다가, 이걸 직접 디피해야 되는 때가 다가오니까 신 같은 능력이 발휘되어 제가 마감에 맞춰서 힘듦을 이겨내고 있더라고요. (ㅎㅎㅎ..) 


역시 사람을 극복하게 하는 건 마감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때 일주일 동안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작업했는데, 그래도 어찌 되었든 일이 술술 풀리긴 했습니다.)


전시 기획 단계에서 뿌듯했던 점은 크게 생각나지 않고, 전시하면서 굉장히 뿌듯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이쪽 동네에서 오래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동네 오래된 구축 아파트 단지의 관리소장님을 20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저희 할아버지와 오랜 구면입니다. 제가 전시 전에 학익동 아카이브를 하면서 학교 앞 분식집과 문구점을 인터뷰한 적 있는데, 알고 보니 분식집 사장님(자매)들께서 저희 할아버지를 잘 아시더라고요. 저희 할아버지도 분식집 사장님 자매분을 서로 잘 아셨습니다. 아파트 입주민과 관리소장님으로 20년 가까운 시간을 매일 인사하면 지내셨던 겁니다.

   

또, 문구점 사장님은 저희 할아버지랑 성당을 함께 오랜 시간 다녀 아는 사이셨더라고요. 그런데 때마침 저희 할아버지, 분식집 사장님들, 문구점 사장님(부부)들께서 한날한시에 약속한 것처럼 저의 전시장을 찾아주셨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반상회처럼 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들 재개발로 가게를 접고 이전하는 등 변화가 있다 보니 ‘이사 잘했느냐, 어디로 갔느냐?’ 등 근황 토크가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모두 저희 할아버지께 ‘손녀딸이 좋은 일 한다.’라고 칭찬을 마구 해주셔서 굉장히 흐뭇해하셨습니다. 이후로 제가 재개발단지에서 큰 물건을 주워오면 할아버지 댁 창고에 넣어두곤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은비 전시에 써야 된다!’ 하시곤 깨끗이 닦아서 안쪽에 잘 보관해주셨습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인연들이, 저로 인해 연결되었다는 점이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Q7) 현재 재개발 진행 중인 학익동에 대해 자신이 앞으로 어떠한 기획과 아카이빙을 할지 자유롭게 계획을 이야기 해 주세요.


생각보다 학익동 면적이 넓습니다. 추가적으로 학익1, 2동으로 이루어진 동네이며, 내륙부터 바다 바로 코앞까지가 학익동입니다. 현재 제가 기록하고 있는 이 동네는 그 중 아주 일부인 ‘학익 3 재개발 구역’으로 학익초 옆, 제 등하굣길이 있던 곳입니다. 8월 중순 기준 재개발 구역 내 모든 집 이주가 완료되었고, 폭염과 장마로 미뤄지고 있지만 정말로 곧 철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재개발로 ‘사라질 것에 초점을 두어 건물이나 도로, 풍경 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보려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토박이로 한 다리 건너면 학익동에 살았던 주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 이사한 분들을 찾아가 과거에 어떻게 사셨는지, 학익동에 대한 추억을 다양하게 구술 기록해 볼 생각입니다. 이를 토대로 책을 내고 싶은 생각도 있긴 하지만 아직은 한참 부족해서 일단 ‘기록’에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Q8) 맨홀과 적산가옥(제국제마 등)에 대해 부가적인 사진 아카이빙을 하시던데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레 무시하고 넘어갈 이 요소들에 대해 깊게 관심을 가지는 작가님만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지역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문화재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직도 여행을 가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그 지역의 ‘박물관, 문화재’입니다. 꼭 가봐야 할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 제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데, 문화재를 좋아하다 보니 그중에서도 제가 선호하는 문화유산들이 추려지게 되더라고요.


유년 시절부터 엄마가 항상 주말마다 박물관에 저를 데려가셨던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 성인이 돼서는 제가 직접 가고 싶은 곳들을 가니 저에게도 박물관, 문화재를 보는 ‘취향’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 취향을 잘 몰랐는데, 대학 시절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제가 ‘근대 건축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중고등학생 때 많이 갔던 차이나타운 일대 개항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인천은 개항도시라 정말 다양한 근대 건축 유산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산가옥’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학익동에도 적산가옥인 제국제마 사택들이 있었기에 더욱 관심을 두고 기록, 투어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의 제 관심사와 잘 맞았던 이유도 한몫했습니다.


그리고 맨홀은 11번 질문에도 추가로 작성할 예정이지만, 올해 3월에 서울 ‘충정 아파트 투어’를 간 적 있습니다. 그때 맨홀과 전신주 등에 초점을 맞춰서 투어 때 이야기 해 주셨는데,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맨홀 뚜껑으로 그 지역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후로 다양한 기사를 찾아봤는데 한 기사에서 ‘맨홀은 도시의 흔적을 간직한 나이테와 같다’라는 문구를 보게 됐습니다. 그때 ‘도시의 나이테’라는 말에 꽂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맨홀, 전신주, 주소 표식 등 스쳐 지나갈 법한 것들에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저 저한테만 재밌고 흥미로운 부분들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Q9) 작가님은 학익동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추홀구의 로컬 가치성을 문화기획을 한다면<누구를 위한 어디에 어떠한 목적으로 그러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현재 미추홀구에서는 생생문화재 사업으로 미추홀에서 비류 찾기라는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개항기 이후로는 인천의 도심이 ‘중구(차이나타운), 동구(동인천)’ 일대였기에 지금도 구도심의 매력을 찾는 분들은 동인천 - 차이나타운 일대를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백제 건국의 아버지 비류가 미추홀에 터를 잡았던 곳이 미추홀구 ‘문학산’입니다. 저희 집 바로 뒤에 가깝게 있어요. 그래서 저희 동네 공원에는 고인돌도 있습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는 훨씬 오래됐지만, 최근 변화된 도심의 위치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구민으로서 아쉽습니다. ‘미추홀에서 비류 찾기’ 프로그램도 유아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만 참여할 수 있으며, 사실상 ‘미혼의 청년(20~30대)’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볼 수 있습니다. 미추홀구 29년 차 주민으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점입니다.


그래서 <청년을 위한 미추홀구에 지역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 청년 프로그램 전무>라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물포에 ‘청년 공간 유유기지’라고 있는데, 이곳은 ‘취창업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지 청년들이 지역에 관해 탐구하고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또한 저희 지역의 또 다른 강점이 있다면 ‘인하대학교’가 있다는 점입니다. 인하대학교 학생들은 타지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들이 인천과 미추홀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많았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Q10)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기획 탐방 및 프로젝트가 있을까요로컬 및 전시회미술관 등 다 포함됩니다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학익동 아카이브’를 운영하면서 크게 영향을 준 프로젝트 하나, 문화탐방 프로그램 하나, 전시 하나 하여 총 3가지를 답해 보겠습니다.


① 프로젝트 : 둔촌주공 프로젝트 

: 10년의 세월 동안 본인이 살아가는 ‘아파트’와 지역에 초점을 맞춰 기록한 유명한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둔촌주공을 통해 ‘아카이빙을 개인이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 아카이브는 무언가 역사적으로 잘 정리된, 특히 각 지역 박물관이나 시(市)‘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둔촌주공을 보고 ’개인‘이 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그 방식도 딱딱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닌, 개인의 추억에 기대어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과정들이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둔촌주공 프로젝트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나는 어떤 식으로 아카이빙을 할까‘라고 고민도 하고, 레퍼런스로 참고도 많이 했습니다.


② 문화탐방 프로그램 : 충정투어 (충정아파트 투어)

제가 지역사를 좋아해서 검색도 자주 해보니 어느 날 알고리즘에 ’충정 아파트 패밀리(@chungjeong1937)‘가 떴습니다. 그래서 팔로우하고 보다가 여기서 ’투어 프로그램‘ 운영하는 글이 보이더라고요. 이때 인생 처음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경험해봤어요. 이전까지 답사는 혼자 계획하고 혼자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면 사학과 친구들이 소개해줘서 친구들끼리 가거나 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지역을 바라보고 걸어본 적이 처음인데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이때 가이드 해주신 근대건축연구가 ’손염‘님이 맨홀과 전신주 등을 설명해 주셨을 때 저랑 딱 잘 맞는 내용이라 너무 재밌어서 이후로 손염님이 하시는 답사 프로그램들은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③ 전시 : 인천시립박물관 <골목-남겨진 기억> (2022.05.31.~08.14. 현재는 전시 종료)

인천의 오래된 동네 ’숭의동 109번지, 전도관 마을‘이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 수집한 각종 오브제로 꾸며낸 전시였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처음 태어난 동네기도 하고, 아빠 친구분들이 이쪽 동네 거주하셨기에 어렸을 때도 종종 가보았습니다. 재개발로 사라진다고 해서 저도 개인적으로 기록하긴 했는데 이 전시가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대문에 붙어있는 종교 표식과 수도 명찰, 대문, 주소 안내판 등 다양한 오브제를 수집해서 전시했거든요. 이 전시가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 이후 제가 <학익동> 전시를 할 때 참고도 많이 되었습니다.




Q11)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천과 서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지역적 차이인 ’바다를 끼고 있느냐‘가 가장 큰 차이점 같습니다. 인천은 수도권이지만, 바다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함께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개항도시라서 가지고 있는 특징, 수도권과 가까운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는 인천 특유의 특징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계지가 있어서 차이나타운 가면 중국 - 일본 건축물을 여럿 볼 수 있고 근대 건축물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가까우니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피난민들이 정착해서 만든 동네의 풍경이나 역사도 재미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으니 생선, 어패류 음식들도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천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쉽게 바다를 볼 수 있다.‘라는 이유입니다. 인천 사람들이 서해가 똥물 바다라고는 하지만 차를 타면 쉽게 월미도, 을왕리를 갈 수 있으며, 섬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인천시민 할인이 되는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섬 여행도 가능합니다.


또한, 바다가 있기에 음식이나 문화가 서울과는 다른 점들이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활용한 문화 프로그램이나 전시들도 종종 있습니다. 간척지가 되어도 아직도 ’어촌계‘가 있는 동네들도 소소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학익3구역의 마지막 겨울, 학익초 체육복을 입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의 마지막 하굣길을 표현하고 싶어서 재개발로 문을 닫는 문방구에서 구매한 체육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Q12) 작가님의 어릴 적 추억(장소환경인문환경 등)을 학익동과 엮어서 한 문장으로 표현하신다면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추억이 묻어있는 나의 고향>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제가 많이 다루고 있는 초등학생 유년기 시절의 학익동이 당시에는 저에게 전부였고,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시간이 가득했던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Q13) 마지막으로 해줄 말씀 자유롭게 펼쳐주세요.


학익동 아카이브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전시를 진행하고, 많은 활동과 관심을 받고 있어서 부담도 되지만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요즘입니다.


앞으로의 행보를 물으신다면, 우선 사라져가는 ’학익동‘을 꾸준히 계속 기록할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학익동에서 조금 더 확장해서 인천의 사라져가는 동네들을 지역 토박이분들인 8090년생들과 함께 걸어보며, 이야기를 풀어보는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갓혁 : 저도 이 계획이 제일 궁금하더랍니다.)


제 활동들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보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이 글을 기재하고 갓혁 본인이 느낀 감성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내 고향은 강서구 화곡동이고, 그 위로 이사하여 현재 공항동 옆 마곡동에 거주하고 있다.

불과 10년전에는 허허벌판 논밭에 거름을 피우던 서울특별시의 마지막 허파였는데

그 많았던 농가와 농민들을 이주시키고 뻣뻣한 고층빌딩과 보타닉 공원을 설립하였다.


현재에 살고 있는 나 또한 과거의 그 마곡동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야자시간에 당직선생님 몰래 아이들과 농구 후

코트 위에서 논밭 개구리 울음소리를 실컷 들으며 집으로 갔던 기억처럼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공간과 환경, 그리고 그 과거에 머문 추억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난 아직 우리 동네의 변천사 과정이나

문화 및 역사적 자료에 대해 관심이 없을뿐

오히려 타 동네의 정체성에만 관심이 있었다.


최근에 공항시장을 둘러보고 그 옆동네 공항동에 대해

일주일간 현장 답사를 해보고 건축물과 유동인구 행태를

스스로 조사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느낌의 은비 작가님이지만

작가님은 자신의 동네, 학익동에 대해 더 진득히

연구하고 수집하고 기록을 하셨다.


난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작가님의 게시물이나 스토리를 볼 때마다

근현대적 역사 건축물과

맨홀, 마크, 상징적인 오브제를 분석하고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어쩌면 자신의 동네를 먼저 바라보고

소중한 추억을 먼저 알아가는게

더 우선적인 부분이 아닐까한다.


작가님처럼 말이다.


스스로 로컬 크리에이터라 행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작가님의 

뚜렷한 가치관과 관념, 신념에 대해

한번더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된다.


진짜 자신의 동네를 사랑하는 분들이

몇명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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