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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클레어 Jan 27. 2023

탕비실 정수기에 UX 필터를 장착했다

제발요ㅠ.ㅠ가 쏘아올린 작은 글

탕비실 정수기 위에 A4용지 한 장이 붙었다. 경영지원팀 매니저님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진 글 이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을까? 해당 종이 위에 동일 매니저님의 자필 메모가 한 마디 더해졌다.


제발요 ㅠ.ㅠ


이 메모를 보자마자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는 아니지만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도우고 싶었다. 급하게 파워포인트를 키고 기존에 붙어있었던 A4 카피를 꼼꼼히 살펴본 뒤 UX 카피 개선 방법을 생각해봤다.





PART 1. 기존 글 분석하기


이 글을 읽고 행동해야 할(=전환 시켜야 할) 임직원(=고객)의 입장에서 글을 분석했다. 힉의 법칙(중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울 경우, 사용자에게 더 많은 인지 부하가 요구)과 폰 레스토프 효과(중요한 정보나 핵심 동작은 시각적으로 눈에 띄게 해야 함)을 주로 참고해서 생각했다. 눈에 띄는 개선 사항은 크게 2가지이다.


음료가 담긴 컵으로 얼음을 직접 받지 마세요!
해당음료가 튀면서 얼음에 묻어 나올 수 있습니다.
"나"포함 임직원의 위생을 위하여 
절대 음료가 담긴 컵으로 얼음을 직접받지마십시오.
↓ 
온수,정수,냉수,물양 등 버튼을 길게 누르지 마세요!
해당 버튼을 길게 누르면 온수 및 냉수 전원이 차단되
어 미지근한 물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해당 버튼은 살포시 터치하여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 


1. 글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기 어려움

- 읽어야 할 글이 많고 중복 됨

- 문구의 중요도에 따른 크기 및 배치의 고려가 부족함 

- 글의 구성이 일관적이지 않음


2. 부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음

- ~하지 마세요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메인 카피를 사용함

- 반복적으로 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해 언급하여 독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음.






PART 2. 기존 글 변경하기


UX 라이팅을 다시 할 때 주로 생각한 관점은 3가지 이다


1. 바로 따라할 수 있는 직관적인 메시지를 줄 것

2. 유사한 목적을 지닌 중복 문구는 최대한 제거할 것

3. 카피의 크기와 배치를 중요도에 따라 나눌 것 


해당 관점을 토대로 가장 먼저 글의 레이아웃을 기획했다. 레이아웃은 크게 3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1. 유저가 해야 할 행동을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영역
2.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영역
3. 주요 키워드 및 행동으로 안내하는 영역


각 레이아웃 별 카피의 개선은 아래와 같이 진행했다.



1. 유저의 해야 할 행동을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영역

AS IS : 음료가 담긴 컵으로 얼음을 직접 받지 마세요!
TO BE : 음료가 담기지 않은 ★ 빈 컵에만 얼음을 ★ 담아주세요!

글을 읽었을 때 바로 행동할 수 있도록 문구를 수정했으며 가장핵심이 되는 구절에는 ★ 표시를 추가하여 유저의 시선을 집중 시켰다. 



2.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영역

AS IS : 해당음료가 튀면서 얼음에 묻어 나올 수 있습니다. "나"포함 임직원의 위생을 위하여 절대 음료가 담긴 컵으로 얼음을 직접받지마십시오.
TO BE : 그렇지 않으면, 얼음을 담을 때 음료가 튀어서 정수기 오염이 발생합니다.

금융 관련 마케팅을 할 때 주로 고려되는 '손실회피성향(=같은 이익과 손실을 볼 경우 이익으로 얻는 기쁨보다 손실로 갖는 괴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심리상태)' 을 참고 하여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장점보다, 행동하지 않았을 때 얻게 되는 부정적인 단점 위주로 카피를 변경했다.



3. 주요 키워드 및 행동으로 안내하는 영역

AS IS : 기존에는 아래방향의 화살표 도형만 있었음
TO BE : 도형의 배치나 크기 등은 그대로 유지 하되, 주요 키워드 '빈 컵만' 을 명시


마지막으로 글과 연계되는 행동이 이루어질 정수기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대로 유지하되, 꼭 기억해야 할 핵심 키워드를 한 번 더 기재하여 행동을 유도했다.


우측 영역에 기재되었던 온수버튼 관련 안내 영역도 동일한 레이아웃, 유사한 카피 구조를 고려하여 기획 후 변했다.




PART 3. 변경 의사 여쭤보기


내 입장에서는 도움을 드리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요소가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사전 기획한 내용을 담당 매니저님에게 전달드리고 A4용지 문구를 변경해도 될 지 조심스레 여쭤봤다.



○○님! 정수기 얼음 튀는것 때문에 붙여주신 사진 보고 힘드시겠다...했는데
제발요 ㅠ.ㅠ 를 보고...
작게 나마 도움이 되고자,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콘텐츠 카피를 조금 변경해보았어요.
괜찮으시다면 위 카피로 제가 인쇄해서 다시 붙여도 괜찮을까요?


앗 ㅠㅠㅠ너무 감사합니다 ㅠㅠㅠ
그럼 저야 너무 좋을껏 같아요 ㅠㅠㅠㅠ


그럼 인쇄해서 딱 붙여둘게요!! 제발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ㅠㅠㅠ
음료 튄거볼때마다 닦는데 마음아파유...


ㅠㅠㅠ너무 감사해요 □□님 ㅠㅠㅠㅠㅠㅠㅠㅠ




다행히 매니저님께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셔서, 정수기에 붙어있었던 주의사항이 담긴 A4 용지를 교체할 수 있었다. 교체한 지 2주가 넘었다. 아직은 음료가 튀지 않는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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