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간의 밑바닥
마음이 죽었다. 한 때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한 때는 주위의 아름다운 것들에 초점을 두고는 했다. 하지만 참혹한 현실은, 인간으로 가득한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처량하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누군가와의 연을 단숨에 끊어버리지도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죽었을 때 마음 깊이 슬퍼할 것을 알고 있다. 평생을 그럴 것이다.
나의 고충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어서 고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걸 단점 삼아 이용하려고 한다. 사람은 말을 아낄수록 좋다.
십이 월이 지나면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된다. 오늘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한 순간에 변하는 것은 없다지만 때때로 사람들에게 마음 깊이 동조하고는 했던 나는 이제 사라졌다.
삶에 버팀목이 없어진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 없었다. 항상 인생은 혼자라고 되뇌어왔지만 정작 그랬던 적은 없다는 것이다. 가벼운 관계와 의미 없는 빈말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내 잇속을 챙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었던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아서 웃지 못하는 것인지 웃지 않아서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의 밑바닥은 끝이 없다. 나는 그게 무섭다. 슬픔에 잠식당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슬픔을 이겨낼 방법을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우주에서 티끌만큼도 못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지만 눈을 감으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