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언제나 꿈꾸는
불온(不穩)은 예술의 근간이다. 시인 김수영은 불온성을 잉태하는 공간은 다름 아닌 꿈을 억압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세계라고 칭했다. 불온하다는 것은 편안한, 안정된, 확고한, 움직이지 않다의 모든 부정이다. 예술은 인간을 날뛰게 하고 세상을 깨부수게 하는 도끼이자 톱이면서 폭탄이다. 불온한 이미지들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일순간에 낚아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언제나 꿈꾸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은 아이스퀄로스 비극 전집의 표지로도 사용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그리고 아가멤논이다. 글을 읽기 전에 그림을 한 번 또렷하게 응시하길 바란다.
길고 긴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오른쪽에 있는 아가멤논은 자신의 나라인 미케네로 돌아왔다. 온몸을 편하게 늘어트린 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왼쪽엔 아가멤논의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자신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의 부추김에 의해 칼을 꽉 쥐고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얼굴엔 고민도 감정의 충돌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확신할 뿐이다.
고통의 순간보다 고통 직전의 순간들이 인간을 더 요동치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 아가멤논을 죽였을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고민 없이 아가멤논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그녀는 그리스 비극의 악녀로 남았다.
여기까지만 읽어본다면 그녀는 악녀가 맞다. 10년 넘게 이어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남편을 정부와 짜고 죽여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꿈틀거리며 배출되려 안달이 났던 것일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과 결혼하기 전 사랑하는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도 있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반한 아가멤논은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무참히 살해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심지어 아가멤논은 자신의 과오로 아르테미스의 저주에 걸리곤 그것을 풀기 위해 죄 없는 그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산 제물로 바쳤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입장에선 아가멤논에게 두 번이나 자식이 살해당하는 경험을 겪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카산드라를 전쟁의 전리품으로 데려와 첩을 삼기도 하였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을 약탈하고 빼앗아간 자
자만에 취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잠들어 버린 자
10년이 넘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
그림 속 그녀는 영원히 갈림길에 서있다.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인간에게 끝없이 불온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