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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라 Jan 28. 2024

시각이라는 능력

동생에겐 없는 감각

고등학교 때 점자 도서 입력 봉사를 했어요.

점자 도서로 만들어지지 않은 책을 골라 봉사 센터의 허락을 받고, 책 내용을 한글파일에 입력하는 봉사예요.

그전에 단체에 방문해 교육도 듣고, 교육자료를 봐가며 열심히 입력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봉사는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작업이라 아주 편하겠네- 싶으시겠지만, 큰 어려움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도표, 그림 같은 것을 모두 문자로 묘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 당연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이걸 못하면 마지막에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수도 있어요.

입력을 다 하면 마지막으로 센터에 가서 직원분들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그때 도표나 그림 묘사가 자주 수정을 요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책을 고를 때 제가 읽고 싶은 책이나 재밌게 읽었던 책을 골랐기 때문에

그림은 생각지도 않고 입력을 시작했었는데,

도표는 어찌어찌 같은 말을 반복한다 쳐도 그림 묘사는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핀터레스트


그럴 때 저는 눈을 감고 머리에 떠오르는 요소 순서대로 입력하곤 했는데요.

동생도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동생에게 묘사해 준다는 생각으로 입력했죠.


색을 써도 안 되고, '바다'라고 써도 본 적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거고.

주로 촉감을 많이 활용했던 것 같아요. 겨울철 밖에 나가면 손등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날카로운 색.

이것도 완벽한 묘사는 아니겠지만 돌아 돌아 고심한 문장들을 써넣곤 했어요.



고3 때 수시 입시를 위해 자소서를 쓰면서 이 봉사를 언급했었는데요.

그때 담임 선생님께 위 이야기를 했더니 "진짜 그렇게 했어?"라며 의아해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설마 진짜 그랬나,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저는 진심이었거든요. 진짜 타닥타닥 치다가 눈 감고 그려보고 다시 입력하고..

엄마한테도 눈 감고 상상이 되는지 물어보고요.


제 방법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한 번도 센터에서 지적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만하면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 •̀ᴗ•́ )و ̑̑


대학생이 되고도 꾸준히 하려고 했던 봉사인데, 여러 핑계 같은 이유들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입력 봉사 외에도 목소리 재능 기부처럼 녹음하는 봉사도 있으니,

혹시 혼자서 할 수 있는 봉사 고민하신다면 한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타자 치는 그 시간이 제겐 꽤 힐링이기도 했거든요.

잡생각을 없애주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권리를 챙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자, 이쯤에서 질문드려 볼게요.


- 시각이란 감각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걸까요?

- 우리는 감각의 중요성을 얼마나 느끼며 살까요?


물건을 던져서 전달하다가 실수로 동생 몸에 닿아 깜짝 놀랄 때, 동생에겐 없는 감각을 상기하게 됩니다.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도 입체적으로 느껴지고요. 그 사이 거리 때문에 매번 머리에 물음표를 띄웁니다.

정답을 모르겠어요. 서로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그럴 때마다 감각의 차이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보자는 생각으로 고민이 끝납니다. '내가 몰랐던 것'은 곧 '내가 아는 것'이 되는 거니까요.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기만 해도 전 만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각을 가진 우리는 뭘 더 세심히 볼 수 있을까요? 혹은 더 보아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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