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자라 Mar 31. 2024

세상에서 제일 무자비한 단어

희귀 난치병


동생의 장애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글을 쓴 게 쌓이고 쌓여, 벌써 30개 넘는 글이 모였습니다. 매주 '이번에는 어떤 장애 이야기를 전할까?' 고민하는데, 이번 주는 평소와 다른 결의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네, 소제목에 있는 희귀 난치병이라는 단어입니다. 동생은 장애인이면서 희귀 난치병 환자인데요. 제가 당사자는 아니지만, 왠지 장애보다 희귀 난치병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무겁게,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25년 동안 아무 의심 없이 들어온 단어였는데, 정말 갑자기 말이에요.


여러분은 희귀 난치병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 것 같으세요? 1에서 10까지 무게의 척도가 있다면, 어느 숫자에 추를 둘 것 같나요? 대부분 무게 추를 끝까지 잡아당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9까지 확 끌어당길 것 같아요. 1은 희망을 위해 남겨두고요. :)


희귀 난치병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희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난치'병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들과 아픔을 공유하는 것도 힘들고, 매번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귀찮은데, 고쳐지지 않아 평생 함께해야 한다니요. 정말 이렇게 무서운 단어인 걸 이제야 알았다니... 저도 참 무심히 살아왔군요. ( ᴗ_ᴗ̩ )


기도하는 듯한 동생의 손


당사자도 아니면서 건방지게 희귀 난치병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왜 이렇게 무덤덤했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집중한 희귀 난치병의 특성은 '당장 바뀔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싫다고 몸부림치고,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난리를 쳐도, 그 병을 없앨 수가 없는 거예요. 동생에게서 떨어지라고 소리쳐도 아무 반응 없을 거고요. 동생이 눈을 감는 날까지 보란 듯이 몸에 착 붙어있겠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처음에는 착 가라앉아 우울의 끝을 달릴 겁니다. 내가 무능력해 보이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그래서 일상의 모든 것이-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꼴 보기 싫죠. 저는 다행히도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동생의 병을 들었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였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 딱 그거죠. 크면서 점점 알게 된 거예요. 동생이 지금도 곁에 있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엄마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엄마는 셋째의 병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기억해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지만 그 1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대요. 그래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라면, 이 아이에게 하루는 몇 년과도 같구나.'라는 생각으로 매일 몇 년어치의 사랑을 주기로 했대요.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자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게 되고, 동생은 사랑을 먹고 잘 자라 1년이란 시간은 우스울 정도로 오래 곁에 있어 주었죠. 올해 23살입니다 (*^▽^)/


먼저 마음을 굳게 먹은 엄마에게 자연스레 배운 것 같아요. 엄마가 '이렇게 마음먹어야 해! 내가 이렇게 생각했으니 너도 따라와!'라고 말했다면, 저는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최선을 다해 사는 엄마를 옆에서 봤을 뿐인데, '엄마처럼만 살면 너~무 잘 사는 삶이다.'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엄마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었고요. 


희귀 난치병을 극복하거나 잘 받아들이는 것에 정답은 없다고 봐요. 어떤 것이든 모두에게 같은 의미가 될 순 없잖아요.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고, 평생 투닥투닥 싸우는 분들도 있겠지만, 모든 희귀 난치병 환자분들이 조금 덜 우울에 빠지기를 바라봅니다. 금방 웃을 일 하나가 생기기를 바라고요. 생각한 대로만 이루어지는 평안한 나날이 앞에 펼쳐지길 응원합니다. 


푸른 봄하늘과 어울리는 오늘의 목련


당신과 평생 함께 가야 할 걸림돌 같은 존재는 무엇이 있나요?

그 걸림돌과 잘 지내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좋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이불에 똥칠하는 동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