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목표치가 이렇게 낮았던 건 아니었다. 너무너무 좋은 엄마,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너무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상처때문에 나 닮은 딸 하나만 딱 낳아서 잘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전남편 닮은 아들 하나만 낳게 되었는데 그래도 귀엽긴 무진장 귀여웠다.
엄마랑 갈라설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나한테 너 같은 자식 낳아서 어디 한번 키워보라 그랬지? 내가 애 낳아서 기르니까 엄마가 이해가 더 안돼.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줄 자신에 넘쳤다.
좋은 엄마가 되기엔 내 정서가 별로 좋지 않음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잘해주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이벤트 엄마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일년 52주, 52개의 이벤트를 짜서 밖으로 나갔다. 정말 서울 방방곡곡을 아이랑 지하철 타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몇년이나. 상상나라에 가도 개장부터 폐장시간까지 있었고 문화누리에서 제공하는 공연 티켓, 각종 블로그 응모들로 전시회, 시사회 그 해에 개봉하는 모든 어린이 공연과 애니메이션은 다 본 것 같았다. 그 외에 카누체험, 조개체험, 숲체험 등 여행들도 캐리어 풀기가 바쁘게 다시 싸서 다녔다. 앨범이 미어터져나갔다. 덕분에 아이는 매우 즐겁고 밝은 정서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이었다. 공부를 전혀시키지 않았던 유아기에는 문제 없이 늘 즐겁게 놀러다니기만 하면 됐는데 입학을 2달 남겨놓은 8살이 되어서도 한글을 전혀 읽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입학 후에는 매주매주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오며 노이로제가 걸리기 시작할 때 나는 모진 말과 분노를 퍼붓어대고 있었다. 매일 ‘좋은 엄마가 되어야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 속에서 절망과 슬픔은 아이를 등교시키고 다 해바리고 하교시켜와서는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잘 될리 없었다. 늘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내 좋지 않은 정서는 편안하게 보듬어 주지 못했다.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그냥 엄마만 해야겠다.
잘해주려고 굳이 팔자에도 없는 상냥을 찾지 말고 화라도 내지 말자. 그냥 좋은 엄마 하지 말고 엄마만 하자. 그래도 아이랑 씨름을 할 영역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학교 다녀오면 옷 정리하기, 손 씻기, 가방 정리하기 이런 기본적인 습관들이나 숙제하기, 글씨쓰기 등을 잠깐 딴 데만 쳐다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결국엔 일거수일투족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모든 일상을 다 같이 했다.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면서.
그래도 방학 때에는 숙제만 해서는 도저히 학교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고 꼭 엄마가 예습을 시켜서 보내야 했다. 구구단도 가르쳐야했고 시계 보는 법도 가르쳐야 했고 받아올림도 가르쳐야했다. 새로운 것을 배울때마다 반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방학마다 전쟁통이 되었다. 그렇게 이제 나는 나쁜 엄마로 목표를 더욱 하향 조정했다.
아이가 풀어온 받아올림이나 구구단 문제를 암산으로 후루룩 채점해 돌려주면 ‘엄마가 틀린 거 아냐? 이렇게 빨리 계산할 수가 있어?’ 도리어 엄마가 틀렸다고 했다. ‘이렇게 어려운 걸 시키는 엄마가 나쁜 엄마야!!!’라고 했다. 물러날 수 없었다. 다행히 ADHD더라도 지능은 정상이었기 때문에 핑곗거리도 없었다.
“넌 잘할 수 있어. 어려웁게 느껴지는 것도 여러번 연습해서 잘하게 되면 쉬워지는 거야. 엄마는 너가 쉬워질 때까지 계속 다시 연습할거니까 너가 포기해. 엄마는 나쁜 엄마라서 절대 포기 안해. 너가 포기해.”
앵무새처럼 방학내내 저렇게 말하며 클레이도 가르치고, 계단 오르고 내리기도 가르치고, 국어책 읽고 쓰기, 구구단, 시계보기, 선긋기,삐져나오지 않게 색칠하기, 칠교놀이, 공 던지고 주고 받기 등등등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채워주려고 나는 그렇게 더욱 나쁜 엄마가 되었다. 그래도 너에게 엄마의 엄마보다는 조금은 덜 나쁜 엄마가 되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