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이등분 한 뒤 각각의 끝에 골대(혹은 득점 에어리어)를 구비해 놓고 제한된 시간 내에 이것을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팀과 개인의 기량을 겨루는 대부분의 구기 종목들(축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핸드볼 등)은 그야말로 '전쟁의 축소판' 입니다.
인간이란 전쟁을 혐오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흥분과 매력을 느끼는 기묘한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장 위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쉼 없이 펼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상황에 맞게 팀을 조율하는 '전술'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경기 내용에 빠져드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구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파이팅!)
그런데, 야구는 조금 독특합니다.
경기 진행의 양상이 '전쟁의 축소판'이라기 보다는 장수들 간의 '일기토'의 반복을 지켜보는 듯 합니다. 경기 내용의 대부분이 마운드에 선 투수와 타석에 선 타자 간의 맞대결이니까요.
그렇기에 '전술'의 의미는 퇴색되고 상대적으로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용인술'이 더욱 부각되게 됩니다.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말이 그냥 등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폿라이트가 쏟아지는 마냥 극적으로 묘사되는 용장들의 일기토는 전쟁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습니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 당대 최고의 장수였던 여포가 유비, 관우, 장비 3형제와 맞대결을 펼치는 장면)에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흥분과 감동을 느꼈습니까.
하지만, 여포의 방천화극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던 이름 모를 장수들의 분투(?)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KBO리그 경기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삼영전여포 보다는 후자의 일기토의 반복을 지켜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렇듯 야구 보기 좋은 가을 날, 시즌 막판 치열한 순위 싸움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오늘 진행된 프로야구 3경기의 합산 관중 수는 1만 명에 못미쳤습니다. (도합 9,877명)
같은 시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전쟁의 축소판'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 몰린 관중 수가 6만 여 명에 달했던 것을 보면 글쎄요...
'전쟁>일기토'라고 단순히 결론을 내리기도 그렇고...
오늘날 KBO리그는 팬들과 잠재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 걸까요?
관습과 관성에서 벗어나 나의 관점이 아닌 팬들의 시각으로 프로야구 산업을 다시금 찬찬히 뜯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분명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를 정성껏 챙기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선을 긋고 확인하는 숭고한 작업입니다.
리그와 구단의 존재의의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기고 가능하다면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여 재정립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팬들은 '내가 그것을 선택해야 될 이유(Why)'가 있으면 기꺼이 이를 얻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 이들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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