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한지 일주일 만에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목에서는 목구멍을 향한 융단폭격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어 적잖이 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 온전히 누워서 쉬는 일 밖에 없으니까. 코로나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허용이 있으니까.
그렇게 한 이틀은 정말 말 그대로 누워서 지냈다. 몸은 침대에 누워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불안함이 치고 올라왔다. 휴직하기 전에 맞춰놓았던 이직 자리 알람이 울릴 때면 내가 이래도 되는 건지, 얼른 한 군데에라도 이력서를 내야 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왜 이토록 많은 건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그들의 영상으로 이끌 때면 나도 누워있지만 말고 뭐라도 해야 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그렇게 자꾸만 찾아오는 압박감에 괴롭기를 수차례. 나는 과감하게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일단 몇 주 동안은 오로지 쉬기만 하기로 했다. 내가 휴직하기로 결심한 것은 쉬는 시간 동안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함은 아니었으니까. 회사 다니며 바짝 쪼그라들었던 몸과 마음의 긴장을 느슨하게 푸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으니까. 휴직을 결심했던 최초의 목적을 상기시키니, 새로운 도전으로 나를 채우는 일보다 내 안의 묵은 찌꺼기들을 먼저 비우자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내려졌다. 그 뒤로도 불쑥불쑥 불안함이 자꾸 엄습할 때면, 일단은 “쉬는 게 먼저야”라고 조용히 나에게 말하고 초조해진 마음을 얼른 가라앉혔다. 그러자, 드디어 내 마음에도 평온함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로 머무는 게 실로 얼마 만이었던 건지. 또,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생각들의 연결고리를 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한 것이 실로 얼마 만이었는지. 새삼 나에게 벌어진 상황이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휴직하기 전 나의 상태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사고의 흐름이었으니까. 그때의 나에게 있어, 부정적인 사고를 멈추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체하는 시스템은 내 안에서 늘 작동 오류였다. 무언가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끊임없이 그 사건을 곱씹으며 부정적인 기운만 증폭시켜 나갔다. 회복탄력성은 길가에 오랫동안 버려진 자전거 바퀴처럼 바람 빠진지 오래였고, 희망 회로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버린 듯했다. 그랬던 나이기에 딱히 의도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걱정과 고민의 구렁텅이 속으로 또다시 파고 들어가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빛을 향해 가보자고 마음먹게 된 것은 나에게 벌어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 모든 게 회사로부터 멀어졌기에 생긴 마음의 변화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고, 동시에 도대체 회사는 그동안 나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나의 사고 회로는 그토록 망가져버린건지 씁쓸하기도 했다.
쉬어보니, 이제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왜 사람에겐 휴식이 필요한지. 앞으로 달려 나가기만 할 땐 몰랐다. 아니, 머리로만 알았다. "그래, 과부하가 왔으니 좀 쉬면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좋겠지." 하지만, 뭐가 어떻게 좋아질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쉬어보니, 알겠다. 쉰다는 건 나라는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휴직을 하고 경험해 보니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몸도 마음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존재다. 하물며 기계도 오랜 시간을 돌리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리는데, 왜 나는 십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쉼 없이 일하게 했던 걸까.
요즈음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휴직을 권한다. 우리는 한낱 연약한 휴먼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휴먼은 쉬어야 되고, 쉬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스스로의 변화를 만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