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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정한 온도 Nov 05. 2022

씨앗을 뿌린다는 농부의 마음으로




오늘은 11월 5일. 2022년이 공식적으로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2개월에서 마이너스 4일. 그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다시) 글을 쓰려한다. 무엇이라도 써 버릇하고, 생각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본업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본업이 카피라이터인데 어휘력, 문장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머릿속의 생각들은 정리하고, 정리한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엇에 대해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근황에 대해서. 2022년 나는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찌 보면 조금 많이 이른 연말정산이 될 수도 있겠다.


올해(정확히는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가 어떠했나를 돌이켜보면, 수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물장구를 친 것은 같은데, 멀리서 내려다보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형국이랄까. 한마디로, 메이드 된 일이, 눈부신 성과로 마무리된 일이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이직 준비도, 회사 업무도, 제2의 직업을 야심 차게 꿈꾸며 도전하고 있는 일러스트 작업도.


작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이직 시도를 하고 있다. 1년 반 정도가 지나고 있는 지금, 여전히 난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지원하고 싶은 채용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몇십 번이나 주물렀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또다시 매만지고 이쁘게 꾸며 서류를 접수한다. 지원 동기는 무엇인지,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나의 업무적 역량을 돋보기로 꾸역꾸역 찾아 써내 지원 제출을 누르고 나면, 모니터 앞에는 하얗게 재만 남은 내가 있다. 운이 좋아서 면접 단계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이제부터는 더욱더 본격적으로 나를 뽑아줄 것을 어필하는 시간이다. 면접 팁이라는 것들 중에 자신을 상품으로 생각해 자신을 판다고 생각하라는 말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애초부터 자신을 어필하는 일에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나를 파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나라는 사람을 갈아 넣은 결과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죄송합니다. 귀하는.."으로 시작하는 메일들 뿐이다.


그토록 회사를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 업무를 대충 할 수는 없다. 입으로는 호기롭게 월급 루팡이 되겠다는 말을 외쳐대지만, 뼛속까지 들러붙어있는 노예근성이 오늘도 내일 회의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밤새 골머리를 썩이며 준비했던 회의의 아이디어들이 다 통과가 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작은 성공을 쌓아 나가도 모자랄 판국에, 내가 냈던 아이디어들은 인어공주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작은 실패들을 꾸준히 모으고 있으니,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눈앞에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걸 피할 수 없다. 이 외에도 6월부터 달리기 시작해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을 제외한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이모티콘 작업은 아직도 출시일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내 2022년의 근황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나오는 형국. 결과만 따지고 보면 그다지 좋지 않은, 아니 나쁜 한 해였다. 하지만, 지난 10개월을 쭈욱 늘여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한 해를 잘 살아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내가 보인다. 연거푸 이직의 고배를 마시고도 새로운 지원 공고가 뜨면 다시 또 머리를 쥐어뜯으며 서류를 준비하는 나. 회의 아이디어가 안 나와 '나는 똥멍청이인가 보다'라고 자책하면서도 회의 5분 전까지도 고민을 멈추지 않는 나. 회사만 갔다 오면 녹초가 된 몸뚱이를 멱살 잡고 끌고 가 다시 아이패드 펜을 잡게 만들어 결국은 이모티콘 승인을 받아낸 나.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지만, 나의 2022년 인생은 멀리서 보면 보잘것없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금씩 성장한 내가 있었다. 어쩌면 그런 나를 발견한 것이 2022년의 가장 큰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끊임없이 나아가는 나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올해 가끔씩 일이 정말 이리도 안 풀릴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치고 올라올 때마다 내가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직의 씨앗을 뿌리고, 회의를 위한 씨앗을 뿌리고, 일러스트 작가가 되기 위한 씨앗을 뿌리고. 단, 이 씨앗은 뿌린다고 해서 열매가 언제 맺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은 열매가 안 맺힌 채 운명을 다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씨앗이라도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하던 대로 씨앗을 뿌린다. 인생이라는 나의 밭에, 언젠가는 내가 뿌린 씨앗들이 점점 자라서 나다운 열매와 풀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비록, 올 한해 내 손안에 명확하게 잡히는 열매는 수확하지 못했지만, 매일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히 씨앗을 뿌려나가는 행위 하나는 얻게 된 것 같다. 


아마 내년에도 후년에도 나는 씨앗을 뿌리고 있을 것이다. 수확의 기쁨 외에 씨앗 뿌리는 일의 가치를 알게 되었으니까. 나에게 이른 새해 인사를 건넨다. 내년에도 “올 한 해, 잘 씨 뿌린 것 같다”라고 씨부릴 수 있게,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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