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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노 May 02. 2024

2일차: 전진을 위한 후퇴는 그래도 고통스럽긴 매한가지

100일 글쓰기 2일차

이주 쯤 전에 썼던 글을 잠시 들여다보자:

  일기를 쓸 때마다 편두통약, 자낙스, 소화제를 얼마나 먹었는지 기록하곤 한다(일기를 쓰기 전에는 전에 쓴 내용을 절대로 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일기 없이는 정신과 진료에서의 상태 보고도, 내 일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입원치료를 받기 전 내가 중독되었던 약은 독한 진통제 한 종류였다. 즉, 내가 중독된 약의 종류는 늘어난 셈이다. 불면증이 심해져 수면패턴이 뒤틀리고 심한 편두통이 만성적으로 이어지면서 복용하는 약도 하루에 총 5알까지 늘어났다(중독 증세를 알아채고 병원에 예약 전화를 걸 무렵, 나는 하루에 일상적으로 약 6알을 먹었고, 하루에 총 9알까지 약을 먹어보기도 했다). 수면패턴이 돌아오질 않으니 과수면과 불면이 반복되고, 심한 두통과 소화불량이 따라붙었다. 점점 내가 약을 먹는 이유가 정말 머리가 아파서인지, 관성적인 습관인지, 아니면 그저 잠을 더 자고 싶어서인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입원치료를 하기 전(외래 초진을 잡는 일은 얼마나 힘들던지!) 일주일분의 약을 넣어다닐 수 있는 필케이스를 써서 복용량을 조절했는데, 그 생활은 이제 끝이라고 필케이스를 "예쁜" 것으로 바꾼 것이 문제일까?수면패턴이 뒤틀리니까 먹어제 저녁 주문한 멜라토닌(수면유도제)가 도착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5알을 털어넣었다. 오늘은 저녁약을 약국에서 잘못 처방해줬는지, 하루치가 부족하다. 약을 먹지 않고 버텨야 하는데 그것이 두렵게 느껴진다.   

  삼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는 말이 믿기거나 와닿지 않는 요즘이다. 3월에는 체력이 조금씩 붙는 등 한 걸음 정도 전진을 했고, 4월에는 수많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4월에 들어서면서 내가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 횟수가 심각하게 늘어났다.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폭식이다. 지금도 (건면이라 속이 긁히는 느낌이 드는)생라면을 아무렇게나 입에 쑤셔넣었고, 오후에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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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진통제 중독, 편두통 등 허약해진 몸과 마음을 위해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주기적인 병원 방문과 운동, 그리고 글쓰기만을 하는 생활을 지속중인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기는커녕 조급하기 짝이 없다. 원래는 일년 정도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지만, 그 기간을 6개월 정도로 줄여보기도 했고(지금 생각해봐도 무리라고 여겨진다), 몸과 마음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과 마음은 정말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느리게' 나아진다. 성질 급한 나는 그것이 답답하다. 반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그리고 후퇴한 만큼 다시 전진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내 문제 중 하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반적으로 하는 행동(나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맹목적으로 믿고 선택해버린다는 것이다. 이 사고는 주로 음식으로 이어지는데(여행이나 콘서트 같은 것은 휴식기에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새벽에 깨어 있을 때도 매한가지다. 잠이 오지 않아서 깨어있을 때 (배부르면 잠이 올까 해서) 라면을 부숴먹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말씀드린 것처럼 위에 적은 글은 내가 이 주쯤 전에 작성했던 글이고, 지금은 멜라토닌이나 약의 과도한 복용, 낮잠 같은 몸에 좋지 않은 버릇을 전부 끊어냈다. 상담을 받을 때 내 지금의 상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멜라토닌을 끊고 진통제를 줄였다는 것을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났다. 그만큼 그 과정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루틴을 잡아나가고 있고, 약을 줄였고, 상담을 받을 때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들었고, 운동을 꼬박꼬박 나갔다는 이유를 들어서 오늘은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마라탕을 먹었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도, 내가 그걸 제대로 소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당연히 먹은 후에는 더부룩해서 한동안 카페에서 앉아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만 했다. 그 여파로 발생한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인해 소화제도, 두통약도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복용했고 약에 취해서 억지로 낮잠을 잤다. 다행히 산책을 하면 두통이 조금은 가라앉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은 (두서없지만) 글을 쓸 만한 상태를 회복했다. 

  야식을 먹는 습관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지만 대신 잠에서 깰 때 먹는 것을 프로틴바로 바꾸거나, 루틴을 맞추기 위해 먼지가 쌓인 알람시계를 다시 이용하고 있고, 필케이스도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을 구분해서 담을 수 있는 것으로 교체했다. 몸무게는 줄지 않았지만, 입는 운동복이 조금 헐렁해졌고 수영복 치수가 하나 줄기도 했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이러한 후퇴와 전진, 혹은 제자리를 유지하느라(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퇴를 하는 게 정체되어 있는 상태보다 더 나아보일 때가 많다)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답답하다는 말은 내 일기장에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함께 따라오던 과거 혹은 현재에 대한 불평은 많이 줄어들었다. 전진도 후퇴도 보이지 않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나는 이를 반복해서 치료를 받고 반드시 나아질 것이다. 아, 그래도 전진도, 그리고 이를 위한 후퇴도 너무 버겁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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