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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나니아 May 22. 2023

마블을 집어삼킨 PC주의

응, 빌어먹을 PC가 마블을 망쳤어!

"히어로 무비는 유치해, 그런 영화는 어린애들이나 보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영화관에서 본 <어벤져스: 인피니티워>는 이랬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전투에 앞서 나노 슈트를 장착하는 아이언맨, 완다와 비전을 구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나타난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스톰브레이커를 휘두르며 타노스의 군대를 쓸어버리는 토르의 모습에 나는 머리부터 발 끝에 이르는 전율을 느꼈다. 입덕의 순간이었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마블 영화 정주행을 시작했다. 영화 광고에나 나올 표현이지만, 그 화려한 영상미와 실감 나는 액션, 그리고 입체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는 나의 두 시간을 순삭 하기 모자람이 없었다. 깨알 같이 숨겨진 이스터 에그와 유튜버들의 리뷰 영상은 재미에 재미를 더 했다. 여기에 또 더해, 마블 영화에 담긴 철학적 담론들은 단순한 히어로물 이상의 의미와 생각할 거리를 내게 안겨 주었다. 한 예로, <어벤져스: 시빌워>에서 그려진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 이면에는 개인의 자유 vs 정부의 통제라는 사상적 논쟁이 흐르고 있다. 아무튼 내게 마블 영화는 편하고 재미있는, 가끔은 진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니 나는 그 시점을 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3월 개봉한 <캡틴 마블>을 시작으로 마블 영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 마블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은 많이 사라지고, 무언가를 억지로 구겨 넣은 듯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영화 곳곳에서 느껴졌다. 마블 영화가 어떤 특정 이념·사상을 주입하는 선전도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안타까운 변화에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가 있고, 이 PC주의가 내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들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PC주의, 정치적 올바름


PC주의의 기원은 20세기 초 러시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게 된다. 레닌은 권력 유지를 위해 정당 정신을 규정하고, 이 정당 정신에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이념적 순도와 정통성을 뜻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웠다. 레닌과 스탈린의 폭정 하에서 이들이 규정한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보복이 가해졌다.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묵살시켜 버리는 PC는 전체주의의 전형이다.

 

PC는 마르크스주의와 괘를 같이한다.  마르크스는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노동자들이 단결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했다하지만 1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유럽의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연대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나갔다. 1 세계대전이 종전될 무렵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 혁명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고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와 헝가리의 기외르기 루카치는 서구문명(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에 가치 바탕을 ) 노동계급의 눈을 가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 이익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하려면 서구문명을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919년 루카치는 ‘누가 우리를 서구문명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헝가리의 문화부장관이 된다. 그리고 학교 내 급진적 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 아동들의 성적 윤리관을 훼손시켜 사회의 기독교적 가치와 가족 제도를 파괴하려 했다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비판이론을 제시하며서구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모든 제도(기독교가족제도가부장제권위도덕애국심관습) 무자비하게 비판하며 붕괴시키려 했다. 또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해 준 자본주의에 만족한 노동계급을 대신해, 성적 해방을 혁명의 원천으로 삼았다그리고 여성흑인성소수자 등을 억압받는 피해자 집단으로 규정하며 이들을 반서구 혁명의 동력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론은 이후 현대의 페미니즘, Black Lives Matter(BLM) 운동, 그리고 친동성애 운동 등의 사상적 뿌리가 된다.


앞서 언급한 비판이론은 동성애자유색인종젠더지역문화  '연구(studies)' 붙은 모든 정체성 학문 분야의 바탕이 되었고, 대학가의 이러한 학과들은 PC 사회에 확신시키는 진지가 되었다. 또한 1960년대 대학을 다닌 "어설픈" 지식인들은(프랑크푸르트 학파 이론에 영향을 받은) 현재 미국의 정부, 기업, 언론매체, 교육계에 자리를 잡고 PC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자칭 깨시민인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진실을 다수에게 재교육시켜 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 위의 내용은 홍지수 작가의 책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중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마블은 페미니즘, 친동성애 그리고 반기독교 메시지를 꾸준히 영화에 담아내고 있다. 아래에서는 PC가 진하게 묻은 마블 영화들을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페미니즘이나 동성애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가 PC에 물들어 히어로 물이라는 그 본래의 재미를 잃어가고 있음이 그저 안타까워 쓰는 글이다. 이 점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마블과 페미니즘


영화 <캡틴 마블>에서 여성 주인공 캡틴 마블은 남성 빌런 욘 로그에게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을 억누르도록 끊임없이 가스라이팅 당한다. 영화는 캡틴 마블의 회상 신을 통해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파일럿이 되기까지 여성이기에 받은 차별과 편견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후 캡틴 마블은 자신을 억압하는 통제 장치들을 벗어 버리고 능력을 각성한다. 그리고 빌런 욘 로그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이 영화의 전반에는 남성 중심의 시대 속에서 여성은 억압받는 피해자이며 남성은 억압하는 가해자라는 페미니즘 서사가 흐르고 있다. 


마블의 <블랙 위도우>는 페미니즘 사상이 더 잘 나타나는 영화이다. 영화의 메인 빌런 드레이 코프(탐욕스러운 백인 남성의 이미지로 묘사되는)는 납치한 소녀들을 레드룸이라는 곳에서 철저히 세뇌하고 훈련시켜 자신에게 절대복종하는 암살자로 양성한다. 영화의 여성 주인공 나타샤는 해독제를 통해 이 여성들이 드레이 코프의 정신 조종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영화는 여성의 해방과 깨어난 여성들이 연대해 자신들을 지배한 남성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급진적 페미니즘 사상을 담고 있다. 감독은 영화의 서사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상호 보완 관계가 아닌 대립의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요 히어로들은 모두 여성인 반면 악역은 남성들이다. 유일한 남성 히어로인 레드 가디언은 일전에 드레이 코프에 부역한 과거가 있고, 이제는 힘만 세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마초남으로 묘사되며 딱히 큰 활약은 하지 않는다.


역대 최고 흥행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된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페미니즘이 어떻게 마블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어벤저스 멤버들이 타노스의 군대와 최후의 결전을 펼치는 장면이다. 속된 말로 마블 뽕이 차고 흘러넘쳐야 하는 이 장면에서, '뜬금없이' 여성 히어로들이 집결해 세상 비장한 표정으로 화면을 노려보는 '억지' 연출은 가히 실소를 짓게 한다. 여기에 더해, 마블이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기점으로 마블 캐릭터 중 가장 전통적인 남성상을 가진 토르를 힘만 센 마초 백인 남자 개그 캐릭터로 격하해 묘사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여성 히어로 집결 씬


마블과 동성애 코드


마블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시작으로 동성애 코드를 영화에 끊임없이 녹여내고 있다. <어벤저스:엔드게임>의 존 루소 감독은 카메오로 캡틴 아메리카가 이끄는 심리 치료 모임의 한 남성 참석자로 직접 영화에 출연한다. 그리고 타노스의 스냅으로 사라져 버린 최근 연인과의 첫 데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존 루소 감독이 연기한 그 남성 참석자는 자신의 데이트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녀(She) 대신 그(He)라는 대명사를 사용한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존 루소 감독은 실제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몇 년간의 다른 마블 영화에서도 동성애 코드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블은 <이터널스>에서는 한 남성 히어로가 그의 남편과(아내가 아닌) 동성 간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는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머리에 입을 맞추는 장면을 그려냈다. 두 장면 모두 영화의 흐름에서 딱히 필요한 장면이 아니었다. 나아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마블의 차기 히어로 아메리카 차베즈는 마블에서 LGBTQ의 대표성을 띈 캐릭터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아메리카 차베즈가 입은 옷을 살펴보면 가슴 왼쪽에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배지가 보인다.


2021년 6월 공개된 디즈니+ 마블 드라마 <로키>에서 로키의 성별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Fluid(유동적)라고 한다. 젠더플루이드라는 이 개념은 한 개인의 성별이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느낌과 판단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는 매우 극단적 젠더 이론 중 하나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어떤 한 사람이 오늘은 남자 내일은 여자로 자신의 성별을 규정해도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이분법 성 구분(남/녀)을 타파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이터널스>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 나오는 동성 간 키스신
TVA가 작성한 로키의 프로필에 로키의 성별이 FLUID(유동적)로 기록 돼 있다.


마블과 반기독교 메시지


무신론적 유물론(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는)에 기초를 둔 PC주의는 본질적으로 반 기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한 예로, PC를 추종하는 이들은 타 종교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크리스마스를 홀리데이로 부르자는 주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마블은 2022년 11월 공개된 디즈니+ 드라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을 통해, 크리스마스에서 예수님을 지워버리자는 PC주의자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은 연말의 뉴욕 시내를 걸으며 여러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며 기뻐한다. 그러다 아기 예수님과 동방박사 모양의 장식을 본 주인공들은 스크린을 향해 세상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필요한 장면이 아니었지만 마블은 굳이 이 장면을 넣었다. 


마블의 디즈니+ 드라마 <로키>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영화의 표면적 빌런인 타임키퍼스(그 외형이 삼위일체 교리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와 흑막에 감추어졌던 빌런 캉(예수님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은 시간을 창조한 존재이며, 모든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예정하고 주관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타임키퍼스는 TVA라는 조직을 통해 자신이 정한 신성한 타임라인을 어지럽히는 이들을 색출해 없애버린다. 이 드라마를 볼 때, 타임키퍼스와 캉은 하나님, 이들이 창조한 시간은 기독교 사상, TVA는 기독교 사상을 따르는 이들, 그리고 신성한 타임라인을 어지럽히는 이들을 기독교 사상을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비유되고 있음을 끊임없이 느낀다. 마블은 이 드라마를 통해 배타적인 기독교 사상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다른 사상과 종교를 말살하려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기독교 사상에서 벗어나 이를 물리쳐야만 진정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굉장히 촘촘한 연출과 대사를 통해 반기독교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에 그 내용을 여기에서 모두 다루는 것이 어려울 정도이다.


연말의 뉴욕 거리를 즐겁게 걷던 멘티스와 드렉스는 아기 예수와 동방박사 장식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진다.


<로키>의 표면적 빌런 타임키퍼스와 흑막 속 빌런 캉




누군가는 영화가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을 담아내는 것이 무슨 문제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 마블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마블이 PC주의에 몰입되어 재미있는 히어로 영화라는 마블 영화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마블은 전 세계가 사랑하는 마블 영화를 급진적 PC주의를 전파하는 하나의 선전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최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빌런 하이에볼루셔너리는 자신이 그리는 완벽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생명체들을 잔혹하게 개조한다. 나는 이 하이에볼루셔너리가 현재의 마블과 오버랩 된다. 자신들만이 도덕적으로 깨어있고 옳다고 믿는 PC주의에 빠져, 마블 영화 본연의 가치와 재미를 파괴하는 그 모습 말이다.


<참고 도서>

홍지수.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북앤피플. 2017

벤샤피로. 『권위주의적 순간』. 노태정(역). 기파랑. 2023


<참고 영상>

영사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해석 그루트의 마지막 대사 진짜 의미. 2023

https://www.youtube.com/watch?v=4pgzRA0GU3g&t=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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