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맛있는 영화를 찾아 떠나는 식도락 씨네마입니다.
오늘은 무려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추억 맛집’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들을 함께 음미해 보실까요?
너만의 탑을 쌓아가거라.
고대 그리스와 인도에서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물, 불, 흙, 공기라는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각 원소는 ‘더움’, ‘추움’, ‘젖음’, ‘마름’이라는 네 가지 특성 중 서로 대립하지 않는 두 특성이 결합하여 형성되는데요. 이를 테면, ‘더움’과 ‘마름’이 합쳐져 불이, ‘추움’과 ‘젖음’이 합쳐져 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원소 중 하나만으로는 생명체가 살아갈만한 온전한 삶의 터전이 완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이 있다면 물도 있어야 하고,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이 있다면 착지할 땅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거짓말을 일삼는 왜가리와 올곧은 성품을 지닌 마히토의 애증 관계, 그리고 서로 정반대의 특성을 띠는 이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며 성장하는 마히토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 또한 우리와 대립하는 존재와의 상호작용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선으로부터 악을, 진실로부터 거짓을, 아름다움으로부터 추악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충돌과 화해라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와 타인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반면 모성애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펠리컨이 먹이 부족으로 인해 이세계를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생명체를 위협하는 포식자로 변모했다는 설정은 이러한 상호작용을 배제한 채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해 가는 것에 대한 경계의식을 강조합니다.
비록 세계가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할지라도, 생존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뇌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넌 내 심장의 일부야.
잊지 않을게, 영원히.
한편 <마루 밑 아리에티>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는 삶의 가치로 공존을 제시합니다. 심장병을 앓는 소년 쇼우의 집에 몰래 숨어 사는 소인족 아리에티와 그녀의 가족이 사용하는 ‘빌려 산다’는 표현은 타인의 것을 ‘점유’ 혹은 ‘수탈’한다는 표현과는 사뭇 다른데요. 이는 건강한 공존 방식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아리에티 가족의 가치관은 군수물자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도 전쟁이라는 재난적 상황의 수혜자라는 사실에 대한 죄의식을 갖지 못했던 마히토의 아버지의 가치관과 대조되기도 합니다.
쇼우는 아리에티가 쇼우의 집에서 몰래 가져가다가 떨어뜨린 각설탕을 ‘잃어버린 물건’이라 적힌 쪽지와 함께 아리에티에게 조심스럽게 돌려주는데, 이 각설탕은 둘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각설탕은 쇼우의 배려심에 대한 비유적 상징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쇼우가 인간에 대한 아리에티의 편견을 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치 각설탕이 가루가 되어 녹아내리듯 아리에티의 삶에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던 쇼우와 아리에티가 배려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삶에 깊은 의미를 새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공존하는 삶을 위한 바람직한 태도를 제안합니다.
이 세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의 고리가 있다.
저 사람들은 안쪽의 인간,
나는 바깥쪽의 인간.
<추억의 마니>의 주인공 안나는 입양아라는 콤플렉스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타인에게 마음을 열기 힘들어했고, 스스로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깥쪽 사람’으로 규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세계와 현실세계, 그리고 <마루 밑 아리에티>의 소인족과 인간의 삶이 결국 연결되듯이, 안나 역시 마니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지브리의 영화들 중 상당수는 대비되는 두 세계 혹은 인물들의 연결을 통해 불행과 행복은 긴밀히 얽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즉, 불행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죠.
<추억의 마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나는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서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마니가 단지 동경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게 됩니다.
이는 안나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사람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고통의 원인이 역설적으로 고통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지브리는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인간의 필연적 숙명을 보다 확장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아름다운 삶의 파동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대를 통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힘을 키워나갈 것을 강조하죠. 비록 고통과 갈등 속에서 상처받고 흔들리더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말자고, 다시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만이 우리의 본질적 가치인 사랑을 실천할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지브리의 영화들은 방황하는 모든 존재를 위한 잔잔한 울림을 주는 서정시로서, 앞으로도 시대를 막론하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마치 캐비어를 먹는 듯한 고급스러운 비릿함(3/5점)
<마루 밑 아리에티>: 서걱서걱하면서도 부드럽게 녹아드는 달콤함(4/5점)
<추억의 마니>: 홍차처럼 향긋하면서도 묵직하게 스며드는 씁쓸함(3.5/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