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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m Mar 22. 2022

스케이트보드로 보는 성장

<미드 90>


<미드 90>: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형형색색의 스케이트보드에 깊이 담겨있다. 99번의 넘어짐과 1번의 성공. 스케이트보더들의 훌륭한 기술 한 번에는 숨겨진 99번의 실패가 있는 셈이다. LA의 따분한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년 스티브, 그리고 스티브 친구들의 일탈 뒤에도 보이지 않는 사연과 상처가 숨어있다.



줄거리 요약

 13살 스티브는 친형의 폭력에 시달리며 억눌린 채 살아간다. 그러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스케이트보더 패거리들. 스케이트 보드 위에서 거리를 질주하고 멋있는 기술들을 선보이는 당당한 그들의 모습을 동경하게 된다. 형의 폭력에 반항 한번 못했던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기에. 스티브는 아끼는 물건들을 형의 낡은 스케이트 보드와 교환하곤 그들의 일탈에 동참하게 된다. 친구라는 가까운 관계로 발전해갈수록 스티브는 그들에게 동화되어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어린 소년은 점차 성장해간다.





3 points

하나. 새로운 이름과 자아의 변화



별명을 짓는다는 것은 새로운 이름을 갖는 것과 같다. 별명은 자아와 일대일로 대응된다. 형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억눌려살았던 스티브가 친구들로부터 ‘땡볕’이라는 별명을 선물받은 것은, 새로운 집합으로의 흡수와 동시에 새 자아의 탄생을 상징한다. 스케이트 보드라는 테두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며 새 자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집합 속에서 스티브는 더 이상 겁먹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첫 시작에서 루벤이 건넨 담배를 받아 무는 장면에서 이를 선명히 보여준다. 처음엔 담배연기에 기침을 하던 소년은 이젠 먼저 담배를 꺼내 물고 직접 불을 붙인다. 어른의 상징인 술과 알코올을 들이키는 것에도 더이상 망설이미 않는다.


 이 집합 속에서 겪은 변화는 비단 일탈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중반에서부터 그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친형이 만들어낸 멍자국이 스티브를 억압시켰다면, 친구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생긴 상처들은 오히려 그를 자유롭고 강하게 만든다. 지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추락해 머리에서 피가 흘러도 친구들은 ‘fuck, shit!’이라며 스티브를 강한 사람으로 인정해준다. 그 상처는 오히려 패거리의 맏형 레이에게 새 스케이트 보드를 선물 받는 ‘보상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땡볕’이라는 집합 내의 별명처럼, 스티브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눈부시게 빛난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스티브는 때 묻지 않은 따뜻함을 주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자아와 별명의 대응이 정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이 자아상은 일시적일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면 입에 핫소스를 바르거나 스프레이를 뿌렸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떻게든 담배와 술 냄새를 지웠다. 하지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날수록 그의 자아는 하나로 정착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길에서 시간을 보내다 형을 만난 후에는 형에게 반항도 하고, 엄마가 스티브의 친구들을 찾아왔을 때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본다. 처음으로 말이다. 이렇게 가정, 그리고 친구라는 두 집합이 겹쳐 교집합을 이룰 때, 그는 가정 내에서의 어린 소년의 자아가 아닌 땡볕의 자아를 택한다. 13살의 나이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압박을 견뎌내기만 했던 어린 소년이 친구라는 작은 틈새를 통해 성장을 경험한다. 새 자아를 통해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 저항하는 법이 때로는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방황과 일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는 성장의 발판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둘. 원경과 근경

 스티브가 처음으로 스케이트보더 패거리들을 만나는 장면. 스티브의 위치는 그들이 위치한 인도의 건너편 인도였고, 그 사이에 차도를 두고 있었다. 원경에서 관찰한 스케이트 보더 패거리의 모습은 단숨에 스티브의 동경을 얻어낸다. 거친 말을 뱉고 무방비한 태도로 맞서는 그들의 모습이 스티브와 크게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원경에서 그들을 관찰하기만 했던 스티브는 조금 더 근경에서 그들과 눈을 맞추고 상호작용한다. 카메라도 롱샷에서 풀샷, 다시 풀샷에서 클로즈업샷으로 점차 인물 한명 한명에게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는 것을 . 멋있고 쿨하기만 했던 친구들도 가까이서 보니 다들 각자의 아픔과 사연이 있었다.


 스티브가 엄마에게 잔뜩 혼이 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레이를 찾아가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한다. 그러자 레이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삶 모두 불운을 하나씩 품고 있다고.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의 모습을 캠에 담는 ‘4학년’. 그는 그저 해맑고 밝은 평범한 청소년으로 보였으나 사실 양말 하나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형편에 처해있다. 스티브를 처음으로 파티에 데려가  멋있는  Fuckshit. 그는 온갖 유흥에 중독되어 현실을 개선해나갈 의지조차 잃었다. 루벤  또한 마약중독자인 엄마를 둔 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 스티브가 가장 동경하는 레이는 사랑하는 형제를 교통사고로 잃고 아직까지도 슬픔에 잠겨있다.


 모든 삶은 경에서 바라볼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경에서 개개인의 관점으로 각각의 인생을 돌아보면 마냥 장밋빛인 인생은 없다. sns에 대한 속담같은 유명한 말도 있지 않나. 타인의 인생 하이라이트와 내 인생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며 우울해하지 말라고. 이 말처럼, 내가 동경하고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도 알고보면 아픈 면을 지니고  것이다.


 마치 스케이트보드와도 같다. 우리가 주로 매체에서 보는 것은 멋진 기술이 담긴 단편적인 순간이지만, 실제로 스케이트보더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땀과 눈물을 흘린다. 영화의 주소재가 스케이트 보드인 것도  메세지를 담기 함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셋. “둘 다 멋있지만 기술이 조금 달라.”

 영화에서는 fuckshit 레이를 비교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말이 상징하는 바가 분명해진다. 둘은 제일 친한 친구이고,   스티브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삶의 태도에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레이에게 스케이트 보드단순 일탈이 아니다. 그에게는 스케이트 보드가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직시를 위한 수단이자, 살기 위한 길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보드 기술을 연습하고 프로다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스케이트 보더들이 모이는 광장에서도 그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보드를 탄다. 투어를 다니는 여러 프로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스케이트 보드에 대한 자신의 깊이 있는 계획을 공유한다.


 후반부에서 fuckshit 그러한 레이의 모습을 아니꼽게 여긴다. 열정을 잃은 자의 서러운 질투일  있겠다. 술에 잔뜩 취해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레이는 그런 fuckshit 모습을 보고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친구를 감싸주며 서글픔에 가까운 감정을 내비친다. 의지를 잃은 친구가 점점 방황하는 것을 지켜만  수밖에 없는 슬픈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듯 일전에 언급되었던 둘의 차이는 현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똑같이 불운하고 불행한 환경에서 한쪽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한쪽은 스케이트 보드를 통해 자신이 직시한 현실에 맞선다. 회피와 직시, 포기와 극복, 주저앉은 이와 의지를 갖고 일어서는 이의 차이이다.


 레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땡볓, fuckshit, 4학년에게 스케이트 보드란 일상에서 벗어나는 단과 같. 때문에 스케이트 보드를  때면 일상에서의 자아와 분리된 새로운 자아, 새로운 별명을 갖는다. 하지만 레이에게 스케이트 보드는 그의 일상 그 자체이자 삶의 목표를 담은 지표이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그의 모습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졌으며 미래의   목표를 향해 계속 이어질, 하나의 일관성 있는 모습이다. 그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그는 스케이트 보드를  때도 레이라는 본명으로 불린다. 이는 스케이트 보드에 담긴 열정과 노력으로 어떻게든 현실적 고민들을 해결해나가려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어린 스티브가 앞으로 나아가야  방향을 레이로부터 찾을  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이다.



마무리 (더하는 말)

 단순한 성장영화로 보이지만 조금은 결이 다르다. 90년대 음악과 문화들을 그대로 영화 속에 녹여내 표현한 <미드 90> 관객들을 90년대로 끌어내 어린 스티브, 그리고 친구들의 감정에 깊게 공감하게 만든다. 4:3 화면비율과 16mm 필름 촬영 또한 영화가 주는 감성과 감정에 크게 일조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중요함 또한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런 특유의 표현방식 덕에 우리는 등장인물의 사연과 대화에  귀를 기울일  있다. 영화 밖에서 접했을 때에는 그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탈일지라도, 영화를   후의 우리는 그들을 비행 청소년이라고 함부로 규정하거나 따가운 눈초리를 보낼 수가 없다. 상처를 품은 소년들이 만나 갈등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해나가는 모습.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연민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마지막 스티브의 병실에서 ‘4학년 만든 짤막한 레트로 감성의 영상을 보는 순간, 마치 나의 추억 인양 흐뭇하게 웃으며 영화 전체를 회상해보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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