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 May 16. 2022

‘못’ 해도 괜찮아∼

2015.3. 계간 <니> 38호, '우리 이런 학교 다녔다'

나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기억이 나는 한 가고 싶은 곳이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공부가 재미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라도 안 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곳이어서 일어나면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10년 뒤까지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수능을 봐야 하는 꿈을 꿨었다. 악몽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다르게 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음에도 막상 꿈속에서 현실로 닥치니 암담했다.



내게 학교는 처음 거짓말 한 계기이자 내 능력이랄까 내 본모습에 자격지심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노래를 잘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말에 엄마가 너무 기뻐하자 없던 공연도 해서 칭찬을 받았다는 둥 점점 더 거짓말을 하게 됐었다. 나중에는 엄마가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쁘기보다는 엄마가 선생님한테 얘기해서 들통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가 점점 그런 얘기를 안 하면서 스르르 넘어갔던 거 같다.


또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듣는 공부 잘한다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난 꾸준히 오랫동안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라 벼락치기로 집중해서 하는 타입이었는데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내 안에 쌓여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적은 괜찮게 나오지만 내 속은 텅텅 비어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진짜 내 실력을 알면 비웃을 거라 생각하게 됐다. 물론 거기엔 내가 평소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엄마가 하던 말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엄마는 잠이 많은 나에게 잠으로 허송세월 한다며 꾸준히 열심히 공부하는 누군가의 얘기를 해댔다. 그러면 난 자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성적이 잘 나와도 난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짜 점수란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랬기에 ‘최고보다는 최선을’이란 말에 끌렸었고 그 최선을 다했는가가 항상 내 마음을 괴롭혔다.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결과에도, 나 자신에게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가장 자신 없던 건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실기였다. 나도 잘한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엄마도 그 부분을 전체 평균을 깎아먹는 메워야 할 블랙홀로 생각했고 그에 대한 대비를 시켰다. 중학교에 가기 직전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을 갔었다. 중학교 때는 피아노 실기를 본다, 그림도 스케치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소문에 마지못해 다녔었다. 골고루 다 잘해야 높은 평균점수가 나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한 건 학교였을까, 엄마였을까. 나에겐 둘 다 내 본래 모습보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만족하는 부담스러운 무언가였다.




그런데 난 진심으로 곧 학교에 다니게 될 내 아이에게 “못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숙제든 시험이든 수행평가든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굳이 다 따르지 않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못해도 괜찮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을까? 못해도 괜찮다는 말은 내가 학교 다니면서 듣고 싶던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정말? 그래도 괜찮아? 괜찮다고는 해도 잘하면 좋아하잖아?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도 난 선생님의 말 듣기를 좋아했다.


선생님이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 흡수하고 그것에 대해 의문이 별로 없었다. 요즘도 OO을 잘하는 법, 실수하지 않고 만드는 법 등등의 어떤 일을 하는 일종의 매뉴얼, 내가 직접 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간접경험들을 찾아 그대로 하기를 선호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실수하고 틀리는 걸 싫어했던 아이인 것 같다.


학교 다니면서 뚜렷하게 좋아하던 과목도, 싫어하는 과목도 없긴 했는데 싫었던 숙제나 평가는 몇 가지 있었다. 초등 4학년 때 사회책을 외워 쓰던 숙제. 그리고 초등 6학년 때 지도 그리기 숙제. 중학교 때 줄넘기 쌩쌩이 30번 해야 만점이던 체육실기시험 그리고 대부분의 미술 그리기 숙제와 조각 숙제. 다들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던 것들이었다. 


사회책을 토씨 하나, 조사 하나 빠짐없이 외워 쓰려니 자주 틀려 집에서 연습하면서 짜증 내고 소리 지르고 책도 던지고…. 지도를 책에 나온 것과 같은 비율로 비슷한 구불거림으로 그리려니 잘 되지 않아서 계속 지우다 운 적도 많았다. 지역별 지도까지는 괜찮았는데 세계지도는 그리다 보니 중국이 너무 작고 모양도 다르게 그려져서 밤늦게까지 울며 붙들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가져가면 숙제를 못한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렇게 다르게 그려가도 만족스럽지 않고 딜레마였다. 


쌩쌩이는 연습 때는 30번 가까이 갔는데 막상 시험 때는 그 절반 정도에서 자꾸 걸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었다. 엄마 말대로 체육실기가 내 점수를 다 깎아먹을 거란 생각에 더 짜증이 났었다. 미술은 색을 꼼꼼하게 칠하기보다는 물을 많이 섞어 칠하고 뭐 다른 거 붙이기를 좋아했는데 상중하 중에서 하로 분류될 때가 많았다. 그냥 나는 미술을 못하나 보다 그러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졸기도 잘하고 하기 싫은 숙제는 제치고 등짝을 맞기도 했지만 그전까지는 숙제는 꼭 완벽히 해가야 하고 점수도 당연히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생각하기도 전에 뭐 자연스럽게 이뤄졌었다. 누가 시킨 거였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집에서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짜증 낼 거면 하지 말란 소리도 듣고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란 소리도 들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그렇게 숙제, 평가에 부담이 있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표현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 속에서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하는지, 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걸 배울 때, 과제로 할 때, 시험을 볼 때 그걸 왜 하는지 잘 알고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건데…. 말 그대로 완벽하게 하려는 데 파묻혀서 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느낌이다. 배우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 친구들과 함께하는 재미보다도 잘 안되면 어쩌나,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더 컸다.


내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에 바라는 바도 비슷하다. 뭔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질문도 많은 아이인데 그런 마음이 꺾이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것. 어느 점수 이상 맞는 것, 그걸로 줄 세워서 정작 배우는 것보다는 외우는 것에 치우치지 않는 교육을 원한다. 단계별로 동기와 의욕을 북돋워줘서 모두가 자기 수준에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진정한 교육 말이다. 학교 다니는 동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아이들이 배우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 친구들과 함께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모색하는 선생님과 학교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평생의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 사는데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기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도 아이를, 선생님을, 학교를 돕고 싶다.     



♥ 정은선 _ 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과 7살 세훈이와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몰랐다, 내가 이기적이란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