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 계간<니> 49호, '돈에 휘둘리는 우리'
요즘에 '저녁이 있는 삶'이 이런 거구나 싶다. 아빠가 같이 저녁을 먹을 만큼 일찍 들어오진 못해도 아이들이 자기 전에 아빠 얼굴을 보고 놀다 잘 수 있는 생활 말이다. 올여름 무렵부터 시작된 변화다. 큰애를 임신했을 때부터 국회의원 보좌관을 시작했던 남편이 작년부터는 당 정책연구원서 일하다가 올여름 퇴직했기 때문이다.
실직 상태이니 경제상황이며 앞으로 거취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선은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하루하루가 여유로워진 것 같아 좋다. 남편은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고 아이들 얼굴 볼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아이들이 자는 새벽에 들어와 아이들은 자는 아빠만 봐왔다. 자기 전에 아빠를 찾아도 짧게 전화통화만 할 수 있었다. 주말에도 아빠는 자기 바쁘거나 일하러 나가서 같이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실하니 괜찮다고 해왔지만 마음을 표현하고 나눌 시간도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의 여유 있는 시간은 매달 받던 월급과 맞바꾼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남편이 소속된 곳은 없지만 맡던 일을 계속하는 게 있고 거기서든 실업급여든 돈 들어올 구석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지금의 여유를 느낄 수 있기는 하다. 돈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간만 많다고 행복하진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동안 너무 바쁘고 일이 많고 일과 가정 시간분배를 잘 못하는 것 아니냐는 나의 불만을 배부른 소리라 일축했었다. 내가 바라는 여유 있는 사람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고 그걸 바란다면 자기가 직장을 그만두면 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면 남편이 자신을 위해서라도 직장에서 일해야 하고 가족을 위한 돈도 벌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억울하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함께 혹은 전적으로 내가 생활비를 벌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난 나가서 돈을 버는 게 쉽지 않고 내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 거란 생각에 선뜻 그러마 하고 답할 수 없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 내가 힘들어하는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의 말에 뭐라 반박할 거리가 부족했다.
신문기사에서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정규직으로 자신의 능력을 살려 일하기 힘들고, 청년층도 알바와 비정규직을 전전한다고 나온다. 거기에 내가 끼어들어가 어떤 일을 구할 수 있을까, 돈을 벌어도 얼마나 벌게 될까 별로 희망적이지 않게 된다. 이미 돈 버는 세계에 있는 남편이 계속 벌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돈을 아끼며 사는 게 제일 낫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니 돈 쓰는 데 남편 눈치를 보는 것도 사실이다. 아낀다는 게 무조건 안 쓰고 안 산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뭘 사달라 할 때 선뜻 사주지 않고 일단은 돈이 없다고 하고 보니 아이는 "우리 집이 가난해?" 하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안 가난하고 꼭 필요한 건 살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난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어릴 땐 생활비가 부족해 엄마가 항상 어려움을 겪었고 엄마아빠가 싸우는 주된 이유였다. 엄마는 당시 아빠가 일하고 있음에도 예전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두고두고 원망했다. 아빠는 건설현장 일을 했기에 비 오거나 너무 추우면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런 때는 집에서 우리와 시간을 보냈는데 아빠가 부침개도 만들어주고 같이 눈사람도 만들어 좋았다. 그런데 돈에 쪼들리며 스트레스받던 엄마는 아빠가 예전에 본인 몰래 친구에게 돈 빌려주고 못 받은 얘기까지 꺼냈다. 이 모든 게 아빠의 경제개념이 부족해 생긴 것같이 말이다. 엄마가 이것저것 부업을 하고 나서부터는 엄마 덕분에 우리 집 경제가 굴러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게 엄마는 자신의 기여를 강조했다.
난 엄마가 싸울 때 아빠 탓을 하고 지난 얘기 들추며 신세한탄하는 게 싫었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돈이 많이 들 거 같은 건 바라지 않는 것, 돈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었다. 물질적인 욕망을 갖지 않으면 돈으로 인한 문제랄까 갈등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적게 벌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고 살다 보니, 그리고 나 자신도 물건에 대한, 돈을 들여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먹는 것 입는 것도 아이들이 먹는 거니 좋은 걸 사고 싶고 같이 여행도 더 가고 싶다. 그런데 아무래도 돈이 여유롭지 않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 가능한 선에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고 위안하지만 문득 나도 모르게 돈이 더 많다면 못한다는 아쉬움 없이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마음은 남편한테는 표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돈에 눈멀어 부정부패니 나쁜 길로 빠지는 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나에게 필요악이다. 없이도 개의치 않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뭔지 모르게 쪼들리는 느낌이 싫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먹는 것 입는 것이 모자라다고 불만이었던 적은 없다. 그저 엄마아빠가 돈문제로 싸우지 않기만을 바랐다. 엄마가 힘들었어도 아빠를 몰아붙이지만 않았다면, 아빠가 엄마를 다독여줬다면 어땠을까 싶다. 남편과 내가 싸우는 방식도 꼭 돈문제만 아니다 뿐이지 비슷한 양상이다. 서로 자신의 상황을 성의 있게 표현하고 그걸 이해한다면 그렇게 혼자만 억울하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싶다. 둘 사이 관계가 돈독하다면 같이 겪는 어려움은 동지애를 더 크게 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돈 말고 다른 중요한 가치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도 크리스마스면 산타에게 선물 받을 생각만 하는 큰아이에게 답답한 마음이면서 그런 걸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기가 바라는 선물이 비싸다는 느낌이 드는지 자기 용돈을 산타에게 보태주겠단다. 원하는 대로 사주는 것도 꺼려지고 무조건 그러면 안 된다고 하기도 내키지 않는다. 돈이 있으니 사주고 돈이 없으니 못 사준다보다 다른 걸 얘기하고 싶은데 나부터도 다른 건 모르고 살았다. 장난감보다 같이 노는 동생이 소중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봐야겠다.
정은선 꿈이 빠진 사람이라 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생생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알트루사에서 자원 활동하며 자신의 꿈과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