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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Jan 09. 2023

존경할 만한 어른-내가 본 친구 엄마

2018.3. 계간 <니> 50호, '우리, 제대로 어른 되었나?'

난 언제부턴가 어른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주변의 어른들에게서 좋지 못한 모습만 골라 봤기 때문 아닐까 한다. 어려서부터 똑같은 이유로 계속 싸우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지겹도록 싫었고 부모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특히 엄마처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곤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보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사명과 보람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되는 대로 수업시간을 보내고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도 자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가 자신감 넘치는 담임선생님을 만나고는 너무 정치인 같다며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어른이 있었던가? 좋아할 만큼의 관심이 내겐 없었다. 내가 주로 읽던 소설책의 주인공들은 나이는 어른이지만 사회적 상황이나 자신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에 가로막혀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다고 내가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엄마에게 자주 혼이 났다.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자도 혼나지는 않겠구나’ 정도의 기대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지내는 나에게 아주 생생한 느낌의 친구가 있었다. 만화책과 대하소설을 즐겨 읽고 편지쓰기를 좋아하며 만나면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장윤미라는 친구였다. 친구는 당시 신도시 평촌에서 왕십리까지 통학했는데 그 먼 길을 음악도 듣고 생각도 하며 재미나게 다니는 것 같았다. 윤미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엄마는 물방울모양 김밥을 많이 만들어놓고 집을 비워주셨다. 그날 초콜릿쿠키도 만들어 먹었다.


당시 윤미 엄마는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학교선생님을 하다가 그만두고 미용실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었다. 윤미는 엄마랑 시사문제 얘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신문을 읽어도 재테크나 대입전략에 관련한 기사만 읽는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딸과 이야기 나누는 친구엄마가 부러웠다. 엄마와 대화가 된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예전부터 책 좋아하는 윤미와 윤미 오빠는 서점에서 다리 아플 때까지 책을 보고 오고 만화책을 봐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 집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건 엄마가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당신이 모르거나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에게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엄마 방식의 사랑이 그 당시에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윤미 엄마는 내 머릿속에 있는 존경할 만한 어른상에 맞는 분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이후, 사실은 그 이전에도 그분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눈 적은 별로 없다. 하던 사업이 잘못돼 채권자들로 인해 괴로웠던 시절도 있었고 나중에 동생이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들 돌보는 일을 하셨다는 사정을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사업실패 이후 쇠락하신 걸까 짐작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번에 같이 쓴 친구의 짝글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내가 몰랐던, 친구가 얘기하는 엄마와의 대화, 일화를  보니  ‘역시 멋진 분이었구나, 멋진 어른이었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작은 것에 매달리기보다 크게 볼 줄 아는 분,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 좌표를 제시해주는 분, 미래를 위해 꾸준히 준비하는 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신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엄마,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스무 살 봄. 대학도 들어왔고 나도 전보다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났다. 그때는 나에게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고 다 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막막함과 위축되는 마음도 컸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 뚜렷한 것 같은 데 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모호한 사람이란 생각에 모자라고 미성숙하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이 20대, 30대에도 계속됐다. 뭔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계속 20대 초반 같은 상태라는 생각에 나이만 많아지는 게 불안했다. 게다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으면서 내가 감당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후회도 되었다.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크게 보기가 참 어려웠다. 그때그때 그 순간에 갇혀서 아이의 행동 하나 기분 하나에 집착하고 걱정하고 화가 났다. 아이가 커간다는 것, 나도 아이도 바뀌고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한 채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에 지치기도 했다. 그리고 자잘한 잔소리는 어찌나 많이 하게 되는지…. 이럴 땐 이래야지 저럴 땐 저래야지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바꿔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들었다. 아이를 믿고 지켜봐주는 엄마는, 내 머릿속 이상적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세상만 아이에게 허용하는, 답답하다고 느꼈던 우리 엄마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니 우리 엄마도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내가 참 어리게 생각했음을 알았다. 더불어 난 이미 엄마가 됐는데 어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씩 심하게 들었다. 힘들다 여겨지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절망에 빠지고 나를 믿을 수 없고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휩싸인다.


지금 내가 어른이 되어 예전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어른의 모습이 되어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예전 청소년기의 삐딱한 내 눈에 차는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어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만든 바람직한 어른상의 덫에 걸린 것 같았다.


이제는 사람은 되어가는 존재이지 완성된 존재로 바람직한 모습만 갖추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내가 무시했던 어른들도 그 모습만 있는 게 아니고 지금은 또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네가 변하긴 뭘 변했냐?”고 하는 소리에 무척 발끈해하는 모습이 어른답지 못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 변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나는 나대로, 나답게 어른이 된 거고 내가 생각했던 바람직한 모습과 다른 모습이더라도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존경할 만한 어른인가, 내가 어떤 경지에 다다른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연연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내가 지금 어른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에 만족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책임이 무엇일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할 화두인 것 같다.



♥  정은선 _ 알트루사에 처음 왔을 때는 한 아이의 엄마였는데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알트루사에서 자원활동하며 생생하지 않던 마음과 꿈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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