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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Feb 21. 2023

‘멋진 신세계’에서는 과연 행복할까?

2018.9. 계간 <니> 52호, '짜증' - 정신건강을 읽어요

너무나도 더웠던 이번 여름, 에어컨 없는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기 힘들어 시댁에 와 신세를 졌다. 새벽녘 몇 시간을 빼면 온종일 에어컨을 켜고 지냈다. 에어컨을 끄면 금세 땀이 나고 아이들 머리와 옷이 젖었다. 그렇게 2주쯤 지내다 최고기온이 좀 떨어졌길래 집에 왔는데 하룻밤을 땀에 절어 자고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시댁으로 다시 갔다. 그동안 그 집에서 일곱 번의 여름을 보내면서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여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더 이상 있기 힘들겠다 여겨 돌아왔는데 다시 시댁으로 가는 길에 떠오른 책이 『멋진 신세계』였다. 그 책 앞부분에 나온 목욕 장면. 깨끗하게 씻고 향수까지 뿌리고 나온 상쾌함, 보송보송함이 부러웠다. 쾌적한 환경이 유지되면 머리가 마르지 않아 짜증나는 일은 없겠지 하면서 말이다. 올여름에는 더위 탓으로 엄청나게 짜증을 냈다. 특히 외출 준비를 하면서 혼자서도 아이들한테도 틱틱댔다. 참는다고 참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고 짜증을 냈다. 에어컨 없이 사는 데에 자부심도 있었는데 올해는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린 건가 후회도 됐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세상은 짜증낼 일이 없다. 25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 속 세상은 쾌적해 보인다. 위생적이고 질병도 없는 듯하다. 일을 마치면 목욕을 하고는 상대를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을 기미가 보이면 소마를 먹는다. 소마를 먹으면 기분 좋게 잠드는 것 같다. 너무 많이 먹으면 일정에 맞게 못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면 자기 상태에 따라 몇 알을 먹을지는 정해야 하나 보다. 공유·주체성·안정을 표방하는 그 사회에는 결혼도, 아이 낳아 기르는 일도 없다. 내 경우 결혼·출산·육아를 경험하면서 얼마나 많이 짜증냈던가.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 현실이 다를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뭔지 모를 기분 나쁨을 뿜어내며 살았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는 호르몬 변화에 따른 몸과 기분의 변화 그리고 약해졌다는, 약자가 됐다는 느낌도 한몫했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아예 그럴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짜증을 내지 않게 하는, 그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며 살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그곳에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배아를 자동으로 기르는 장치가 있는데 계급에 따라 유전적 조건을 다르게 한다. 낮은 계급일수록 한 배아에서 여럿을 나눠 똑같은 인간이 많이 만들어진다. 배아에 알코올을 떨어뜨리거나 해서 일부러 발달을 못하게 하기도 한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능력은 가장 위의 계급에만 있다. 계급에 따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즐길 거리도 있다. 그 계층에 필요 없는 자질이랄까 특성은 없앤다. 예를 들어 군인계급에게는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공포심, 두려움을 갖게 아주 어릴 때 그 싹을 잘라놓는다. 잘 때 무의식적으로 접하게 되는 수면교육 그리고 조건반사훈련으로 그렇게 만든다. 태어난 대로, 아니 만들어진 대로 프로그램된 대로 의심 없이 살면 된다. 난 왜 이렇고 내가 사는 사회는 왜 이렇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태클이 들어온다. 특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분리해서 먼 섬에 살도록 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감정은 무조건 좋은 감정만 존재해야 한다. 행복만을 느끼도록 만들어 놨다. 고독할 틈, 혼자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소마가 있다. 그곳에서 사랑은 고통 없는 사랑이다. 아니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사랑이 있다 해도 육체적 쾌락에만 한정된다. 문명이라 불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살다가 야만의 세계에 떨어져 아이까지 낳고 살게 된 린다가 이전처럼 다른 남자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으니 창녀 소리를 듣는다. 린다의 아들 존이 문명세계의 레니나를 자기 식으로 숭고하게 사랑하다가 나중에는 같은 소리를 한다. 늙는 것은 추하다며 혐오하도록 만들고는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교육을 시킨다.


불편함이 없는 세계, 육체적 불편도 없고 감정적 불편도 없애려는 사회, 편함을 추구하는 사회다. 누군가를 위해 육체적 힘듦도 감수하겠다는 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계가 있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감정도 반응도 참 단순하다. 하긴 문학도 음악도 영화도 금지된 곳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촉감영화가 있을 뿐, 평소 느끼는 것 이상의 깊고 풍부한 감정을 느낄 기회가 없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느낌을 느껴볼 기회도 없다. 대신 고양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장치가 있던가. 그런 사회에서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상대방이 나와 다르면 불편함을 참지 못해 짜증 소동이 일어날 것 같다. 소마가 있으니 그런 짜증은 문제되지 않으려나? 유전자 조작과 무의식에 침투하는 교육으로 비슷비슷한 사람을 만드는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 같지 않고 기계 같은 사회에서 주체성을 표방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점점 멋진 신세계 속 세상을 닮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점점 더 편함을 추구해 쉽게 돈 벌고 성공하고 싶어 한다. 비슷비슷한 것을 추구하고 경쟁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척하기도 한다. 게임, 도박 등에 빠지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현실을 잊을 만한 것들은 소마랑 비슷하지 싶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힘든 건 피하고 편한 걸 안정적인 걸 추구하며 살아왔다. 항상 안정적인 삶을 바라던 엄마의 말이 나에게 수면교육처럼 자리 잡지 않았나 싶다. 삶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쉽고 편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되기를 꿈꿨기에 현실에 만족할 수 없고 쉽게 짜증을 내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나의 짜증 역시 조건반사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저 튀어나오는 기계와도 같은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짜증이, 인간이 부족하기에 생기는 인간적인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참 단순한 반응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덥던 이번 여름, 4주 정도를 시댁에서 보내면서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를 경험을 했다. 핸드폰을 장만한 지 얼마 안 된 시아버지께는 문자 보내는 법을 가르쳐드리고 시어머니와는 젊은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다른 의견도 끝까지 표현해보기도 했다. 집에서는 안 하는 손빨래를 하고 집에서보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잤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시어머니의 습관, 성격에 ‘맞아. 어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이지. 다른 게 당연하지’ 하며 알아 넘기기도 하고 이런 건 배워야지 싶을 때도 있었다. 예전에 엄마랑 살 때처럼 마구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걸 느끼고 답답함이 풀리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살면서 짜증내지 않고 사랑하고 사는 법을 조금 더 배우게 된 여름이다. 




♥ 정은선 _알트루사에 처음 왔을 때는 한 아이의 엄마였는데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알트루사에서 

자원활동하며 생생하지 않던 마음과 꿈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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