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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경 Mar 17. 2023

선임의 역할

군대 선임 말고, 회사 선임에 관한 이야기

이직을 했더니 선임이 되었다.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담당하는 실로 무거운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그동안 선임의 역할을 제대로 맡아본  없는 나에겐 매일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이직한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마케팅 한 직무만 계속 해온 나에겐 기획서 쓰는 일, 일정에 맞춰 시안 하나 만드는 일쯤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다. 나는 마케터로서 제법 잘 해오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동안 쌓아온 나의 마케팅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돌이켜 보니, 마케팅 기획서를 쓸 때 나의 관점은 실무자, how to say에 집중되어 있었다. 쉽게 쓰여진 그 마케팅 기획서를 전부로만 알았다. 선임이 된 지금은 실무자 시각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무용해졌다. 십년 넘게 체득화된 나의 기획서 흐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고객 설득 전, 내부 설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는데 임원은 how to say에 큰 관심이 없다. 목적성, 방향성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인플루언서, 파워페이지 바이럴을 한다고 해도 어떤 목적성과 어떤 방향성으로 할 것인지가 정해지면, 매번 같은 툴을 사용해도 결과물은 늘 다르게, 더 뾰족하게 나온다. 그래서 그 목적성을 찾고 방향성을 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었다. 방향성을 찾고 그것을 프레이밍하는 훈련이 아직 나는 부족한가 보다. 그토록 쉽게 쓰여지던 기획서가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프레이밍한 방향성을 팀장님께 보고하고, 협의하고, 수정하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된다. 보고 체계를 거쳐  방향성이 확정되면 이를 공유하고 업무를 분배한다. 젊은 감각으로 멋지게 결과물을 내는 90년생 마케터들을 보면서  구역에서 나만  하면 문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후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처음 맡아본 선임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지다 가도, 찰떡 같이 알아서 일을 쳐내는 90년생 마케터를 보니, 나도 힘을 내보게 된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90년생 마케터들에게 나도 좋은 영향을 주는 80년생 마케터여야 될텐데.


선임이 되니 기획서 쓰고 보고하는  못지 않게 후임에게 피드백을 주는 일도 중요해졌다. 괜히 내가 입을 보태어  보고라인에 수정 사항만 하나  느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동료들을 힘들게 만들까봐 대세에 지장이 없어 보이면  피드백은 최소화하고 담당자에게 대체로 위임했다.  생각엔 여전히 변함없지만, 결과물 개선에 대한 피드백은 아끼지 말아야   같다. 그것 역시 선임의 역할이라면.


빠른 업무 처리 속도가 이제 더는 나의 강점이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수정을 반복하여 옳은 방향성을 찾아내고, 그 결과물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현 기준 나의 업무 장점은 맷집과 끈기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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