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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Mar 07. 2023

오사카역사박물관 그리고 우토로평화기념관

변하지 않는 박물관 그리고 변화된 모습을 담은 우토로평화기념관 

지난주에 박물관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 지역의 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20여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박물관, 오사카역사박물관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오사카역사박물관은 오사카 시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NHK방송국이 들어선 건물과 쌍둥이 빌딩으로 만들어진 도시역사박물관입니다. NHK방송국 빌과 공동로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빌딩형 박물관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역사발굴지(유구) 위에 건물을 세워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하 1층에 발굴지(유구)가 보존 처리되어 있고, 로비 바닥에 유리로 유구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즉, 고대의 오사카 사람들이 살았던 터 위에 현대의 기술력이 집약된 빌딩을 세우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관람 동선 역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서 전시 시 관람 후 한 층씩 밑으로 내려오는 동선체계입니다.

오사카역사박물관은 2001년에 준공되었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오사카성이 있는 공원 내 건물에 역사박물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잠깐 박물관 건물을 보시겠습니다.

좌측빌딩이 오사카역사박물관 우측빌딩이 NHK방송국 건물이고 가운데를 유리천정돔으로 만들어 공용로비로 활용합니다.


오사카역사박물관의 특징은

1) 고대의 오사카(나니아노미야 왕국)에서 현대의 오사카를 바라보다 : 10층 첫 번째 테마인 오사카 고대 국가 나니와노미야를 소개하는 전시공간에서는 오사카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국가, 나니와노미야의 궁궐내부모습을 1:1 스케일 모형으로 연출해 놨습니다. 그리고 측면 유리창 부분에는 영상이 상영되는데, 영상이 끝나면 영상스크린이 내려와 오사카시내를 보게 됩니다. 특히 맞은편 나니와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즉, 오사카의 고대국가 궁정에서 현재의 오사카 시내를 본다라는 콘셉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스크린이 고장 나서 영상상영은 보지 못했습니다.


2) 시대적 연출과 관련 있는 유물전시의 조화 : 오사카역사박물관은 각 층마다 시대별 콘셉트를 가지고 1:1 스케일 모형 연출을 해놨습니다. 10층 고대국가, 9층 중세 물의 도시 오사카, 7층 근대 오사카 거리 등

그런데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는 모형연출이 흥미롭지만 그 옆에는 당시 시대에 발굴된 유물을 쇼케이스에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재현장면이 상상이 아닌 고증을 거친 역사적 장면임을 알리고 싶은 것 같습니다.


3) 유적지(유구) 위에 세워진 빌딩형 박물관 : 박물관이 건립된 부지는 유적지입니다. 보통 유적지는 발굴 후라도 그 위에 건축행위를 금지하는 게 통례인데, 이곳은 과감히 유적지 위에 10층짜리 빌딩을 세우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2002년에 말이죠. 고대와 현대의 결합이랄까요.


대략 오사카역사박물관은 이러한 특징이 있고, 다른 건 몰라도 모형연출과 그래픽연출은 정말 잘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출력이 뛰어난 박물관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오사카역사박물관은 개관 후 20년 넘도록 리뉴얼 없이 개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5년 즈음에 박물관 건립 프로젝트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도쿄와 오사카를 방문해서 에도동경박물관과 오사카역사박물관을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두 박물관 모습을 보고 참 배울게 많구나라고 느꼈기에, 사실 이번에도 많은 기대를 안고 갔습니다.

그런데 오사카역사박물관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10층 무빙스크린은 고장이 나서 작동이 안 되는데도 그대로 놔주도 있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박물관 중 하나인데 말이죠.


우리나라 박물관은 5년, 10년 정도면 전시공간 전체를 바꾸거나 적어도 부분 적으는 리뉴얼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좀 놀랐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좌측이 2005년 당시 찍은 사진이고 우측이 2023년 이번 방문 때 찍은 사진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까? 

가끔 뉴스를 보면 아직도 도장과 팩스로 대변되는 아날로그식 일처리가 일본전역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와 대조되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아마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각박에 사로잡혀 IT와 디지털로 대표되는 변화의 물결이 너무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 않나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아직도 1900년대 초반의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독일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틈만 나면 사죄와 반성을 하며 피해국에 용서를 구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유네스코 등재 관련해서도 강제징용에 대한 기록을 요구했음에도 일본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비단 박물관 전시환경뿐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내내 들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왜 그리 빠른 변화를 택하는지 한편으론 답답함 마저 드는 요즘입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상대방은 전혀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주도적으로 변화를 택하려 하는지.


우리가 뭐가 그리 아쉽다고. 경제적 발전 속도도 우리가 최근에는 훨씬 빠르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는 변화를 서두르는 우리가 왠지 아쉽습니다. 같이 변화하든지 같이 변화하지 않던지. 그리 해야 하는 건 아닌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우토로평화기념관


오사카에서 차로 1시간 더 가면 일본 고대 수도였던 교토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우리나라 강제징용의 아픔이 현대까지 고스란히 남겨진 우토로마을이 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잘 정비돼서 마을주민들이 아파트에 주거하고 마을 역시 여타 조용한 일본의 시골마을과 같은 풍경을 지니지만 불과 1980년대까지도 일본국가로부터 차별받는 그런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차별을 넘어 사람이 과연 살 수 있는 곳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마을 환경이었다고 합니다. 상하수도가 조성되지 않은 탓입니다. 상하수도가 없다는 말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 우토로 마을의 아픔은 1940년 한창 전쟁이 진행될 때 일본이 비행장을 짓기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하면서 시작됩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합숙소(함바)를 설치해서 지냈는데,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비행장 건설이 중지됩니다. 그러면서 이 땅을 일본기업에 팔아버리는데, 토지소유주가 된 일본기업이 우토로마을 조선인들에게 퇴거를 명하면서 우토로 마을 사람들은 기나긴 싸움을 하게 됩니다.

우토로마을은 1980년대 말까지 수도 시설 없이 우물물로 식수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 우토로마을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 회사 닛산차체(日産車体)는 주민들의 토지 점유를 묵인했으나, 불법점유를 이유로 수도 시설 등의 건설을 거부했고 1980년대 들어 닛산차체와 우토로 주민들이 수도관 부설을 두고 대립했으며, 1987년부터 우토로 일부 세대에 수돗물 공급이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닛산차체는 우토로마을의 토지를 제삼자에게 매각했습니다. 이후 우토로마을의 소유권은 부동산 회사인 서일본식산(西日本殖産)이 가지게 되었고 1989년 서일본식산은 우토로마을 주민 전원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으며, 교토지방재판소에 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998년 재판부는 원고승소판정을 내렸고 주민들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퇴거명령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퇴거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토로마을 주민들의 퇴거가 결정되면서 주거권 확보를 위한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 일본에서 결성된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은 2004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해 우토로마을의 실상을 알렸고 2005년에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우토로국제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일본국가는 상하수도도 불허하고 마을에서 쫓아내려 했지만 일본시민들은 우토로마을 사람들의 편에 섰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시민들과 정부(문재인 정부)에서도 도움을 펼치게 됩니다. 


1989년 일본에서 결성된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은 2004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해 우토로마을의 실상을 알렸고 2005년에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우토로국제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우토로마을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2007년에는 한국 국회에서 우토로 토지 매입 지원금 30억 원이 의결되었고 우토로 민간기금재단과 정부 지원금을 관리하는 우토로 재단법인은 각각 2010년과 2011년, 우토로 마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980여 평의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2014년 일본 정부는 ‘우토로지구 주거환경 개선검토 협의회’를 통해 우토로마을에 60채의 공영주택과 도로 건설, 상하수도 시설 정비 등 재개발을 통한 환경 정비 사업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고 작은 규모지만 우토로평화기념관을 건립하여 일본과 전 세계사람들에게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답사에 나선 우리 일행도 설명을 잘 듣고 관람을 마친 후 약소하지만 기부금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우토로평화기념관 / 조선인노동자합숙소(합바) 외부 및 내부



국가와 국민은 동일체인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국가, 하지만 작은변화를 택한 국민들...


국가의 결정과 국민의 생각은 무조건적으로 동일한 것일까?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국가, 하지만 그와는 달리 결국 인권과 사람다움을 위해 도움을 펼치고 작은변화와 행동한 국민들...


뭐가 그리 급한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변화를 택하는 국가, 하지만 아쉬움을 잔쯕 표하고 있는 국민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동일체인가? 아닌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의 뜻을 따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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