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나도 보살핌이 필요해, 자가간호란

by 김지니



퇴사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스스로 책을 찾아보고 연구해가며 우울과 헤어질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자가간호 이론이라는 것에 입각해 증상을 완화하고자 여러 방법을 시도한 것이다. 전공책에서 찾아본 오렘의 자가간호 이론이란 인간이 자신의 생과 건강과 안녕을 유지하고 위해 솔선하여 수행하는 행동으로, 인간 내부에는 자가간호를 위한 요구와 자가간호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먼저 나는 우울함으로 인해 자가간호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나름의 기준을 세워 실천하기 시작했다.




첫째, 충분한 수면과 적절한 영양공급을 할 것.


폭식하지 않고 적절한 양의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며 혼자 자취할 때에는 편의점 음식을 잔뜩 사다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러 나간 곳에서 먹은 안주로 식사를 해결했다. 이러한 습관을 덕지덕지 붙여서 본가에 돌아오니 엄마와 할머니의 건강한 집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본가로 다시 돌아와 생활할때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자취하다가 다시 공동 생활을 하려고 하니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부딪히는 부분이 생겨났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천히 나는 가족들의 규칙속에 나를 맞춰갔다. 그 규칙들은 오히려 나의 건강을 챙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한끼에 라면 4개를 끓여먹던 나는 나물 위주의 한식으로 구성된 건강한 식단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또, 생활패턴도 천천히 오전에 기상해 활동하고, 밤에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둘째,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고, 여행을 꾸준히 다닐 것.


하루는 산책을 나가서 걷다가 소량으로 저렴하게 판매되는 꽃을 발견했다. 꽃잎에 상처가 있어서 상품으로 판매되기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 꽃을 구입하고 집에 가져와 물에 담가두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한번씩 꽃을 바라보니 상처난 잎사귀마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품으로 판매되는 꽃들의 완전한 아름다움 또한 대단히 사랑스러웠지만, 상처난 꽃잎들의 치열한 생의 모습은 색다른 즐거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또, 내가 본가로 돌아온 시기에는 코로나시대가 오기 전이라 국내여행이 자유로웠다. 발길 닿는대로 다양한 곳을 찾아다녔다. 동네에 맛집, 번화가의 분위기 좋은 술집, 도시 외곽의 예쁜 카페, 조금 더 나아가 가까운 바다까지.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은 어떠한 거창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꽃, 바다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때 나는 삶에 대한 감사를 느겼다.


셋째, 현재 나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믿을만한 친구와 함께 이야기 나눌 것.


이전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퇴사까지 하면서도 이렇게 심적으로 힘든 나의 상황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심지어 부모님께도 (아직도) 나의 상황을 말씀드리지 못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자면 다양하게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두려운 부분은 '주위사람을 실망시킬까봐' 인것 같다. 나는 사람이 대인관계를 맺을 때,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생긴다고 본다. 연인사이에서도, 친구사이에서도, 직장생활에 상사와 동료관계에서도, 그리고 부모-자식간에서도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나의 상황을 말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나는 버텨냈다. 그러다 나의 아픈 부분을 툭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나의 사소한 일상, 기분, 어떤 상황에서 내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무너져내리는지 말할 수 있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친구.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 친구는 힘든 삶에 찾아온 선물같은 존재다.



이렇게 나는 자가간호의 대원칙을 세우고 시행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나는 나를 돌보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