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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May 26. 2023

바람과 같은 인연이라도(1)

일상의 단상

문득 떠오르는 스쳐간 인연들이 있다. 눈부시게 빛났던 그 날의 우리는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락처조차 지워져 어디 사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는 곳이 달라져 그렇게 된 일이 많았고, 간혹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기도 했다. 세월은 바람처럼 빠르게 흐르고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와 남편이 되었거나, 어쩌면 사회적으로 우뚝 섰을지도 모르는 그 연들에 대해 가끔 떠올리며 상상해보곤 한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가장 부자 동네라고 하는 곳에 있었다. 승희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해졌다. 세월이 가도 그 이름 석 자를 잊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꽤나 그 친구를 사랑했었나 보다. 아빠가 같은 초등학교의 교사였기에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았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승희는 편견 없이 나를 대해 주었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자주 만나 놀이터에서 놀았다. 또 교환 만화도 그렸다. 승희네 집에 가서 오락도 하고, 밥도 먹고, 똑같이 남동생이 있어서 누나로서 겪는 고충도 이야기하며 그렇게 엄마가 집에 없는 하루를 재미있게 보냈었다. 승희는 유리구슬처럼 맑은 아이였다. 세상 근심 걱정 하나도 없다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내 힘듦이 날아가 버리는 듯했다. 뭐, 초등학교 5학년짜리의 힘듦이 얼마나 컸겠느냐만 말이다.

    

사실 나는 6학년 때 심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5학년 때에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소리(가명)라는 아이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그 아이는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살았고, 소리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우리 소리랑 잘 놀아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그 애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애가 지체 장애라고 해도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5학년 때 나는 반 친구들에게 소리를 잘 도와주자고 말했고, 잘 따라주어서 그리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6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었고, 아이들 태도가 달라졌다(그러니까 나는 소리와 2년 연속 같은 반이었다). 지금에 와서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치 중2병에라도 걸린 듯하다. 선생님께 무례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자신보다 약자를 괴롭히고 그에 상처를 입어 울기라도 하면 그게 훈장인 것마냥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윽고 그 무리(가해자들)의 타겟이 소리가 되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소리는 발육이 좋았다. 그 애는 학교 옥상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고 들었다. 날이 갈수록 남녀 할 것 없이 소리를 무시하고 괴롭히는데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오직 나와 몇몇 친구들만 소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의 딸로서 차마 동참할 수 없었고, 도무지 소리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내가 보기엔 모두 악마에라도 영혼이 씐 듯한 모습이었다. 그 무리는 나를 끌어들이려 부단한 애를 쓰다가, 잘되지 않자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일명 '은따'라고 하는 은은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일단 내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뒷담화를 했다. 예컨대, 선생님인 아버지가 체벌을 하시기라도 하면 "너희 아버지는 집에서도 저러시냐? 너는 쇠파이프에 맞고 컸지?"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일명 패드립인데, 난 그 주둥아리입을 바라보며 신기하기도 했다. 사내아이 같은 경우 이런 말을 들으면 주먹이 바로 날아갈지도 모를 말들이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명예를 생각해서 참았다. 아버지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체벌을 하셨으리라 믿었다.

     

은근한 따돌림은 티가 나지 않게 무시하는 것이다. 급식시간에 우리 반은 번갈아 가며 아이들이 배식을 했는데, 내게 배식할 때 국물을 일부러 흘려서 젖게 만든 일은 약과에 속한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외로워서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 모두 작정한 듯 나와는 대화를 하지 않았고, 이따금 내가 뭐라고 대화를 시도하면 짧고 차갑게 대꾸하는 일이 전부였다. 나는 점차 이들의 태도에 질려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고, 나는 6학년 2학기 전학 가는 날까지 소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생활 자체는 괴로웠다. 그 당시 내 벗은 늘 책이었다. 책은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나스타샤 책을 무척 좋아했는데, 부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세트로 전권을 사 주셨었다. 아나스타샤는 기록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나는 아나스타샤처럼 '나의 비밀 노트'를 만들어 그곳에다 일기를 썼었다. 괴로운 날엔 빨간 볼펜을 들고 그 아이들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내 소심한 복수였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내 소심한 복수였다.

     

그 무리 중 내가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남편과 결혼한 걸 보면 운명은 아니었던 것 같다. ㅋㅋ) 그 애와 나는 3년간 같은 반이었다. 아이들은 그 애를 영조 대왕이라고 놀려댔었는데, 그때마다 대범하게 받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애는 만화가가 꿈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 나는 그 애의 영향으로 만화를 처음 접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었다. 4학년 때 그림을 그려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돈을 받고 보여주는 장사를 하는 걸 보고, '얘는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내게 싱글거리며 웃을 땐 영락없이 장난꾸러기 소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애가 멋지다고 느꼈다. 그런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To be continue...


※허구가 아닌 온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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