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점점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클을 뽑는 날이 되었다. 나는 합창부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가위바위보를 잘못해서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놀려댔다. 그때 우는 나를 손으로 가려주며 그 애가 말했다.
"얘는 성악가가 꿈이야. 얼마나 들어가고 싶었으면 울었겠냐?"
그러자 아이들이 그 애와 나를 얼레리 꼴레리 하며 놀려서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6학년 들어 그 애가 소리를 괴롭히던 무리와 같이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더는 옆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 일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일도 없어졌다. 생각해 보면 남자답고 싸움도 잘해서 그 애는 어딜 가나 무리의 중심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애에게 내가 느꼈던 배신감은 생각보다 심했다. 그래서 빨간 볼펜으로 그 애 이름을 수없이 많이 적는 날도 있었다. 그동안의 잔정을 생각할 때, 그 애가 나를 따돌리는 무리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그 애가 나를 옹호하는 소리를 들었다.
“걔는 너희들과 달리 순진해서, 절대 같이 하지 않을 거야!”
목적어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소리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연히 들은 그 말에 그간의 오해가 녹아내렸다. 여전히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뻤다.
며칠이 지나 나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전학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 마음이 아프실까봐 속앓이만 했던 나였다. 하지만 더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간의 일을 다 털어놓으니 가슴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내 전학이 결정되고 무리 중 가장 나를 대놓고 괴롭혔던 여자애가 날 화장실로 불렀다(나는 그 아이 이름도 기억하고 있으나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나는 또 얼마나 심한 괴롭힘을 자행하려고 이러나 싶어 두려웠지만, 겉으로는 당당히 걸었다. 곧이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앞에서 그 아이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눈을 의심했다. 사실 내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저 한 타겟을 정해서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는데, 괜히 정의로운 척하며(그들의 눈에는 착한 척이었겠다) 동참하지 않는 내가 밉게 보였던 거다. 막상 전학 간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죄책감이 들었나 싶었는데,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내겐 5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던 승진(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예쁘고 노래도 잘했는데, 이상하게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따라 했다. 내가 합창부에 가입한다고 하면 따라서 가입하고, 교내 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따라서 나가는 승진이였다. 승진이를 가리켜 박쥐 같고 이간질을 잘한다는 소문도 들려왔었지만, 내게는 항상 생글거리고 잘 대해 줬기에 친하게 지냈었다. 물론,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 당시엔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전학 간 지 며칠이 지나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게 사과했었던 그 여자애였다. 내가 전학 간 뒤 곧바로 자신이 따돌림의 타겟이 되어 고통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 힘들었다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말 반성한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물론 나는 그 애를 향해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단지 박쥐 같았던 내 친구 승진이가 그 따돌림을 주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승진이의 최후도 편치만은 않았다. 그다음 대상은 승진이였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훗날 고등학생이 되어 싸이월드를 시작했는데, 승진이가 내 미니홈피에 찾아왔었다. 늘 나를 질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나를 정말 좋아한 친구였던 거다. 승진이는 지금 한국에 살지 않는다고 했었다. 내가 보고 싶었다고, 어떻게 그렇게 사라져 버리냐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힘든 학창시절 내내 힘이 되어 주었던 승희와는 전학 후 중학교 때까지 서로 연락하고 만났다. 승희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었는데, 닌텐도도 그 애 때문에 알게 되었다. 함께 재미있게 했던 ‘젤다의 전설’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고등학생이 되어 서로 입시에 열중하면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승희가 꿈은 이루었는지, 하얀 얼굴에 해맑은 미소는 여전한지, 너무도 궁금하다.
지금은 웃으며 추억할 수 있지만,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는 유년기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유년기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찍어 두신 사진첩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아들이 나처럼 훗날 유년기의 기억을 모두 잃었을 때 추억할 수 있도록 일기를 쓴다.
바람처럼 스쳐갈 인연일지라도 기억 속에 남는다. 매사 행실을 조심하고 바르게 살려 노력한다면, 결국 진가를 알아줄 날은 온다. 마침내는 내 앞에 무릎꿇었던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나는 내 신념을 절대 꺾지 않고 살아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한 것은 물론이고, 내게 소중한 인연을 보는 눈도 생겼다. 겪지 않아도 될 그 일 때문에 나는 성숙할 수 있었다. 단지 인연이었을지도 모를 친구들을 놓친 것이 아쉬워,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돼서야 스치는 바람결에 그리워해볼 뿐이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위안하면서.
바람처럼 스쳐갈 인연일지라도 기억 속에 남는다.
※허구가 아닌 온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제가 '더 글로리'를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더불어 학교 폭력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피해자는 절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강력히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빨간 볼펜으로 이름을 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생생히 남아 있어서...
이것을 쓰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진짜 본명을 밝히고 싶지만, 사과했기에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