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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피 Mar 17. 2024

씩씩하게 만끽하는 법

제주에 도착하다 : 첫 번째 여정 (2)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첫 숙소는 종달리에 위치한 뚜르드제주라는 곳이다.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용히 머물렀다 가기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에 고민하지 않고 바로 예약했다. 


https://map.naver.com/p/entry/place/34332013?placePath=%252Fhome%253Fentry%253Dplt&searchType=place&lng=126.8999041&lat=33.4959077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 쉬어야겠다는 계획 하나만 가지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종달리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그 꽤나 긴 시간에도 혹여나 잘못 내릴까 걱정이 되었던 나는 달리는 내내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당시만 해도 해가 금방 져버리는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캄캄한 저녁 하늘에 기억에 남을 만한 풍경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다. 익숙한 삶을 벗어던지고 뭐라도 하려고 왔다는 사실만으로 벅찼으니까. 물론 남들이 볼 때에 별 거 아닌 마음일 수 있겠지만,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할 것도 없던 사람은 모든 감각이 낯설기만 했다. 


종달리는 아주 조용한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버스가 가까워질수록 불빛은 사라지고 어둑해졌다. 어둑한 거리에 홀로 덩그러니 내리고 나니 여행을 온 것을 실감했다. 짐칸에 실은 캐리어를 꺼내고, 잠잠한 도로에는 캐리어 하나가 드르륵 굴러가는 바퀴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한적하고 고요한 마을을 침범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어 조금은 긴장이 되어 뻣뻣해진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사실 나는 밤 9시가 넘으면 에어팟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만큼 어두운 거리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참, 심지어 길치다. 그러니 사람도 차도 가로등도 없는 거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몇 번이고 본 게스트하우스 건물이 눈 앞에 보였다. 고요한 건물에 들어와, 캐리어를 힘껏 들고 2층으로 향했다. 뚜르드제주가 좋았던 점은, 가격이 저렴한 1인실이라는 거다. 책상과 침대가 전부인 안락한 공간에 나는 짐을 내려놓았다. 옷걸이에 옷을 걸고, 캐리어 바퀴를 닦아 세워두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점심도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곧장 미리 알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바로 <괜찮은술책>이란 곳이었다.



딱 보기만 해도 아늑하고 고요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 시간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집이 아니면 혼밥도 잘 하지 않았고, 뚝딱거리기 일수였던 나는 혼자 있는 식당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배는 고프니까.


제주에서 먹는 첫 식사는 흑돼지 돈가스와 매실에이드. (쓰면서 보니 또 먹고 싶다.) 그간 달려오느라 축일 여유도 없던 나는 에이드를 받자마자 절반을 마셨다. 촉촉하게 튀김옷을 적신 소스와 큼지막한 고기는 최고였다. 속으로 침묵의 감탄을 하고는 곧장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쉴틈없이 먹었다.


"혼자 오셨어요?"


앉은 곳은 바 테이블이었는데, 또래로 보이는 직원분이 말을 걸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한동안 대화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는 걸! 혼자 여행을 왔다며, 종달리에 2일 머물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누군가와 오랜 소통을 하는 게 익숙치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너무 반갑고 설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수줍게 웃어버렸다. 


"혼자는 처음인데 너무 좋네요."


내 말에 요즘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많다며 여행 잘 하고 가라는 응원도 받았다. 그 말에 나는 씩씩하게 제주를 만끽하고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내세웠다. 뭐, 여행할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눈과 가슴에 담아가겠다고 굳건하게 다짐했다.


제주를 오며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하늘과 어두운 하늘을 본 게 전부였지만 어쩐지 인생에서 설레고 잊지 못할 순간이 펼쳐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낯설고 긴장되는 시간은 늘 설렘을 가져다 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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