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워케이션, 인디펜던트 워커, 긱 워커에 대해 아시나요?
사람들은 누구나 적게 일하고 많이 쉬길 원한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 모든 사람이 꿈꿔온 사회는 어쩌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상은 아닐까? 일은 최대한 적게 하면서 원하는 것들은 모두 누릴 만큼의 비용이 넘쳐나는 삶, 이런 삶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 꿈꾸는 삶이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식 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같은 열풍이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로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종잣돈이란 게 필요하다. 그러니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우리는 여전히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여전히 인류에겐 자유로운 삶과 노동에 얽매인 삶 사이에서의 투쟁이 계속되는 거 같다.
2000년 이전의 노동은 비교적 심플했다. 지식 노동, 육체노동 등과 같은 큰 범주는 있었지만 아침이면 직장으로 출근한 뒤, 일을 끝마친 저녁이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큰 사이클은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21세기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스마트폰은 이런 노동의 단순한 형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들어보았는가? 이 용어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지혜가 있는 전화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함으로써 널리 퍼지게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들은 어마어마하다. 손안에 놓인 작은 기기 하나면 업무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정보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사람들 사이엔 일터와 휴식 공간 간의 경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장비 하나만 있으면 누구든지 창업도 가능하고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스마트폰을 제7의 장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인류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니 말이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제7의 장기처럼 부착하고 다니는 신인류들을 일컬어 '포노 사피엔스'라 부르게 되었다.
그럼 이러한 스마트폰의 등장은 인간을 노동에서 과연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노동의 해방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업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은 가져다 준거 같다. 엄밀히 말하면 스마트폰 속 클라우드 시스템이 가져다준 변화이지만.
21세기의 인류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느 장소에서건 쉽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업무를 보기 위해서 반드시 일터로 출근해야 했던 기존의 근무 형태는 더 이상 포노 사피엔스들에겐 의미가 없어졌다. 이러한 사회 트렌드와 코로나란 비대면 사회라는 흐름을 틈타 수많은 2030 세대들이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 디지털 유목민)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첨단 디지털 장비만 갖추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어디서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신인류는 너도나도 새로운 디지털 유목민의 시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여기저기서 퍼스널 브랜드를 외치는 직업 컨설턴트들의 영향도 이러한 현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주창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정말이지 너무 이상적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이는 블로그에 하루 30분만 투자해서 몇 천만 원을 벌여들였다 하고, 어떤 이는 매일 찍어 올리는 동영상으로 억대의 부자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많은 2030 세대들은 적은 노력으로 극대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오프 세상에서의 직장을 뛰쳐나와 디지털 세상의 노동 속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디지털 노마드 열풍은 사회 곳곳에서 더욱 과속화되어 갔다.
작업 공간의 자유를 획득한 사람들에겐 다양한 노동 형태가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워케이션이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여행지에 머무르면서 일을 병행하는 근무 형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일명 '한 달 살기' 프로젝트다. 공기가 좋은 제주도나 남해 마을, 혹은 강원도 속초 바닷가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디지털 유목민들에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 휴식과 일을 동시에 구현하는 삶이 현실로 다가온 것만 같았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양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해 여행객을 유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한 것도 이런 새로운 트렌드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인구 감소 위기 대안으로 '한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까지 개발해서 진행하고 있다. 타 지역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한 편 인터넷 시설이 잘 구축된 휴식 공간들을 제공해서 워케이션 업무를 보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지자체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숙박료와 활동비까지 지원해 주면서 경쟁적으로 방문객 유입을 늘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2030들은 인디펜던트 워커를 꿈꾸고 있다. 인디펜던트 워커란 한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 다양한 고용 형태의 등장,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업무의 확산 등의 이유로 최근 몇 년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최근 유튜브나 블로그 등 다양한 소셜 플랫폼에서 젊은 세대들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인디펜던트 워커가 되기 위해선 우선 자신만의 콘텐츠를 개발하여 브랜드화시키는 걸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선후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막연하게 인디펜던트 워커의 삶으로 뛰어든다. 고용이 자유롭고 유동적인 노동 형태인 만큼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수입 역시 자유롭고 유동적이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급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디펜던트 워커들은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헛되게 소모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아직까지는 적은 노동을 기울여서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은 없다. 블로그로 몇 천을 벌었다는 사람은 소수이고 유튜브로 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는 사람들 역시 극히 드물다. 심지어 잘 나가는 소셜 인플루언서들은 대게 오프라인에서 이미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져 놓은 사람들이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디지털 노마들과 유유자적 한 달 살기를 실현하고 싶었던 인디펜던트 워커들은 결국엔 다시 오프 세상 속의 직장으로 돌아오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 3.0이 가져다 줄 메타버스 세상의 도래로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한 직업들이 생겨난다. 세상은 이렇게 눈부시게 빨리 변화하지만 그에 비해 사람들은 느리게 변화해 간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의 통념은 느리게 변화한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지식과 노동 형태를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초고속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디지털 노마드의 꿈이나 인디펜던트 워커의 삶이 뚝딱 실현될 수는 없다.
성급하게 오프 세상의 직업을 모두 끊어내고 온라인 세상의 노동만을 쫓는 건 위험하다. 수많은 디지털 노마들들이 성급하게 인디펜던트 워커의 꿈을 좇다 긱 워커(Gig worker)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긱 워커는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회성 노동을 수행하는 등 단기간의 직업을 제공받는 근로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그때그때 임시로 연주자를 섭외해 단기 공연을 했던 '긱'에서 차용한 용어다.
지금의 긱 워커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공유 경제가 확산되면서 등장한 근로 형태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자나 배달 라이더, 유통 등 각종 서비스 업체에서 일하는 1인 계약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긱 워커라고 해서 부정적인 노동시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천천히 변화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긱 워커 시스템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고 많은 문제점들을 아직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적게 노동하고 많은 수확을 얻는 삶을 꿈꾼다. 그래서 작업 공간의 자유를 이끌어낸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하지만 공간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유를 획득해 낸 건 아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과 인디펜던트 워커들의 삶을 살기엔 아직 그 시장이 너무 불안정하고 무수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고 싶다면 아직까지는 확실한 수입원인 오프 세상의 노동을 발로 차 버려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먼저 오프 세상이 안정시킨 후 디지털 세상에서의 다양한 노동을 키워나가는 게 아직은 맞는 거 같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향해 질주하기 전에 그 속에 담긴 빛과 그림자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