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 의예의 것에서 얻은 행복
요즘 제일 핫한 것 중에 하나가 chat GPT가 아닐까? 하지만 기계치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선 여기저기서 신세계가 열렸다고 야단법석을 떨어대도 그냥 시큰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세계였으니까.
매일 아침을 준비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만드는 똑같은 삶이 지겨워 행복이란 단어를 잊은 지 오래였다. SNS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즐겁고 신나 보이는데 왜 내 삶은 이렇게 우중충하고 모노톤일까, 가끔씩 심통도 난다. 사람들을 만나도 늘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다 형식적은 예의를 차리다 헤어지는 것에도 이젠 좀 신물이 난다. 그러다 늘 내 발길이 닿는 곳은 도대체 왜 나만 늘 불행할까, 란 질문이다. 나는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행복에 대한 꼬리에 꼬를 무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문득 챗 지피티가 떠올랐다. 대학생 아이들이 리포트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걸 언 듯 본 기억이 나서 나도 한번 찾아서 해보고 싶어졌다. 마음속으로는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란, 불신을 가득 품은 채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 : 행복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
ChatGPT :
행복은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행복은 다음과 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문장으로 들려준 챗지피의 답변은 의외로 성의가 넘쳤고 꽤 장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잘 정리된 카테고리까지 들먹이면서 분류해서 들려주는 행복론에 나는 문득 기계가 아닌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 같지만 내 말을 어딘가에 소문 낼 걱정이 없는 안정장치까지 갖춘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질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언젠가 중학교 때부터 관계를 이어 온 친구가 도저히 못 참겠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죽하면 상담을 받을까란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막상 받으려 가려고 하면 이것저것 생각이 복잡해져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복잡한 생각을 1도 하지 않고 술술술 내 고민들을 토로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보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보편적이지 않은 답변을 읽으면서 갑자기 모처럼만에 행복감을 느꼈다. 무더위에 지쳐 잠시 걸터앉은 벤치에 앉았다가 예상치 못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얼굴에 맞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을.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에서 가끔씩 만나는 이런 신선한 경험들, 이게 소소한 행복 아닐까? 내가 불행한 이유는 명백하다. 난 선천적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먹는 것에서도 기쁨을 찾지 못한다. 그런 내가 가정을 지키고 꾸려나가기 위해서 일 년 365일 요리를 해야 하기에 너무 불행한 거다. 더욱이 취향이 아닌 일도 내게 주어진 의무라면 절대로 대충대충 하지 않는 내 성격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타인의 삶은 늘 반짝이고 멋져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모든 인간은 생존을 하기 위해선 결국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모노톤의 일상에 특별한 색을 입히고 싶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각 개인은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의미와 장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행복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라는 문구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마치는 챗 지피티를 보면서 나는 오늘 갑자기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우연히 찾은 산에서 아카시아 향이 짙게 풍기는 경험을 할 때 느끼는 달콤한 행복감을 말이다. 그 행복은 어디에서 온 걸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서 온 신선함? 아니면 오늘부터는 인간 아닌 기계에게서도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행복감을 가져다준 챗 지피티에게 감사한다.
결국 행복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무엇을 보는 가는 우리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