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를 읽고
<무난이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의 그녀들은 말한다. 걷자고! 뛰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걷기만 하겠다는데 그게 왜 이렇게 힘들어?
그녀들은 무난이다.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밤을 새워 일해도, 아무리 유능해도 그저 무난이다. 무난이는 무난하게 삶을 살아가지만, 행복은 무난함에서 오지 않는다.
<다해>
그저 턱이 있는 방에 사는 것, 그것도 요원하다. 턱이 있는 집도 아니고 방일 뿐인데. 다해는 원해 본다. 1이 아니라 1.2를. 그 0.2는 차원이 다른 삶의 수준도 아니다. 그저 방으로 오수가 들어오지 않는 방. 밥과 잠이 분리될 수 있는 그것. 얇지만 깊고 아늑한 어떤 것. 그것을 위해 주인공은 강장군의 휘하로 들어간다. 언니, 나도 데려가. 그 문으로. 다해는 인생에서 점프나 J커브가 없었다. 그저 작은 모래알을 쌓아 연약하고 바람이나 작은 파도만 일어도 사라질, 쌓는 사람도 의욕이 없는 성을 쌓고 있었을 뿐.
그녀의 방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도 사실적이면서 현실적이다. 다해가 집을 기숙사, 하숙집, 원룸으로 옮기면서 그녀의 주거환경은 바느질의 한땀 만큼만 좋아졌다. 때로는 그 바느질이 뜯어진 자리를 메우는 한 땀이었던 건지 이건 도통 좋아진 건지 아닌지, 전진인지 멈춤인지 퇴보인지도 모를 지경인 것이다.
다해가 먹는 핫도그는 핫도그 자체로 맛있다. 그러나 설탕을 꼭 굴려주세요! 그 반짝이는 설탕가루가 다해의 핫도그를 더 감칠맛나게, 반짝이게 할 것이다. 아저씨 설탕 많이요!
다해는 소설의 끝에 끝내 회사에 남기로 결정하는데, 이것은 다해다운 결정이다. 나는 이것이 은상이나 지송보다 미온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해는 아마도 은상이나 지송보다 큰 성공을 거두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은상>
돈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 돈이 취미인 사람. 강은상회의 주인 강은상. 내 편일 때 다행인 사람. 은상은 인어공주가 인간 세계를 탐험하듯 돈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은상은 시기의 문제일 뿐, 어떤 방식으로든 경제적으로 성공할 사람이다.
내가 그녀에게 부러운 부분은 그녀가 결국 돈을 차지하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그녀가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이 부럽다! 사회성 개차반, 말투도 틱틱, 그러나 일은 잘 해서 흠도 안 잡히는 사람. 자신이 사회성 개차반이라는 평판을 들어도 은상은 눈살 한 번 안 찌푸릴 것이다. 은상은 말하겠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한테 돈 주는 사람도 아닌데 뭐 어때! 은상의 그런 면이 부럽다. 난 사회성 개차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싫고, 그런 평판을 뛰어넘을 업무 능력도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은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사회성 개차반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은상이 부럽다.
또 은상은 사회성 개차반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다해와 지송에 대해서는 아낌 없지 않은가. 지송에 대해서 비난하는 마음도 있지만, 반면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도 크다. 피같은 이더리움을 나눠 주는 그녀의 아량이라니.
소설을 읽고 나니 외치게 된다. 강장군님! 소녀도 거두어 주소서!
<지송>
나는 지송이가 좋다. 지송이의 연애가 대책 없다고 생각한 내 자신을 반성한다. “근데 언니 나 얼굴이 포기가 안 돼.” 세상에 이런 숭고한 고백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이제 서른에 가까운 한 여성이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탐구한 결과이다.
지송은 위기의 여성 셋 중에서도 가장 낭떠러지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숙연하고, 장엄한 풍경이 가짜임을 피를 흘리며 통렬히 깨닫는다. 그리고 이더리움 열차에 마지막으로 탑승한다. 지송이가 깨달은 건 뭐였을까. 그녀가 본 장엄한 돌탑은 사실 하나하나 쌓은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의 기원과 소망으로 장엄하고 숭고한 돌탑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사실은 그 사이사이에 시멘트를 발라 넣어야 한다는 것. 하루하루의 노력과 정성으로 탑은 결코 쌓아지지 않는다는 것. 그녀에게 이제 필요한 건 성실함이 아니라 돌 사이사이의 시멘트라는 것.
지송의 존버는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알고 보면 은근히 배짱 있는 지송. 지송이가 본인의 소신대로 외모를 보는 연애도 잘 하고 사업도 잘 해나가길 언니의 마음으로 바래 본다.
<그녀들>
지송, 다해, 은상은 성격상 거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 지상 목표인 은상, 이에 비해 지송은 헛된 곳에 돈과 마음을 쓰는 사람. 다해는 그 중간에 있는 사람.
그들은 동기여서 서로 친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눈짓으로, 행동으로, 몸짓으로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배경 없이 위태롭게 바람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이 제주도를 여행할 때 그들의 트렁크는 그녀들의 상태와 같은 상태이다. 은상언니의 명품 트렁크는 우아하고 날렵하게 지송의 짐을 실어주고, 삐걱거리는 다해의 트렁크는 손목에 부담을 준다. 그리고 네 바퀴가 네 방향으로 날아간 지송의 트렁크….
사실은 달까지 가는 그들의 도전이 위태롭고, 걱정되고, 궁금해서 뒷 부분을 미리 넘겨봤다.
그래서 그들은 달까지 갔나? 그들은 지금까지 로켓을 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달이라니 세상에.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도 없어 하이힐을 신고 폴짝 뛰어본 것이 그들이 위로 간 전부인 걸요. 그들은 생애 처음으로 달까지 가기 위해 로켓에 탑승해 본다. 달까지 가기 위한 그녀들의 시도는 맹목적이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그런 커브를 그리고 싶다는 것을.
이 소설이 판타지 소설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끝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은 다해가 지금도 마론제과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녀가 오늘 전셋집에서 깨어나, 자차로 출근했다는 것은 마음 뿌듯한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