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로얄 오키드, 그곳은 어디인가.>
놀랍게도 여행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PIC를 낮12시에 체크아웃을 한 이후에 그 다음 날 새벽 3시 5분 비행기를 타게 된다는 걸. 새벽에 비행기를 타는 건 알았지만 낮12시에서 그 다음 날 새벽 3시 5분까지가 비어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 했다. 공항으로 밤 12시에 출발하므로 정확히는 낮12시에서 밤12시까지가 시간이 빈다. PIC에서 짐을 맡아주므로 체크아웃 후에도 물놀이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18시까지. 아이들은 아직 어려 타국에서 숙소 없이 저녁부터 자정까지 있기는 곤란하다. 아니 영어도 안 되고, 성격도 샤이한 우리 부부 둘만 있었어도 잘 못 버틸 것이다. 급하게 여행사에 연락을 해보니 우리가 너무 늦게 레이트 체크아웃을 알아봤다며, 되긴 되는데 추가 비용 55만원이 발생한다고! 세상에 12시간에 55만원이요? 급하게 또 알아보니 PIC에서 신호만 한 번 건너면 되는 곳에 로얄오키드라는 저렴한 숙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박에 10만원 가량 되는 가성비 숙소로, 우리 가족 같이 새벽비행기로 가는 경우나, 새벽비행기로 도착하는 경우에 0.5박 정도 머물다 간다고 했다. 몇 개 남지 않은 숙소를 간신히 예약했다.
그리고 출국 전 날 남편에게 아이들 물놀이를 지켜보라고 하고, 나 혼자 체크아웃 후 로얄오키드로 짐을 옮겼다.
아아, 근데 이곳. 심상치 않은걸. 이건 마치 70년대 미국 호러, 공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비주얼이야. 특히 냄새. 곰팡이 냄새를 덮으려는 엄청나게 세고, 싼 방향제를 뒤집어 쓴 이 냄새.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버튼도 심상치 않았다. 지은지 최소 몇 십년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낮에 혼자 타도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402호 방문을 열었을 때! 내 귀에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
오우, 쏘리, 하하하하하!!!!!!!!!!!
왜죠? 왜 체크인 하고 들어간 내 숙소에서 사람이 나오죠? 아, 청소하는 직원이 나오는데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그 숙소 후기를 보니 체크인 하고 들어갔을 때 전에 사용하던 사람의 흔적이 전혀 치워지지 않은 채였다는 것도 듣고 보니, 청소 다 끝내고 나오는 직원을 만난 건 일도 아닌 거였다. 아휴, 무서워라.
그리고 샤워기를 봤는데, 와우! 샤워기 필터 쪽이 정말 새카맸다. 평소 깔끔하지 않은 걸로 유명한 나로서도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벌레가 많다, 바퀴벌레가 침대를 지나가는 걸 봤다라는 후기도 있어서 걱정했으나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 신랑의 말로는 몇 십 년 전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지어진 호텔이 쇠퇴한 느낌의 숙소란다. 위생상태 보다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문제였다.
그러나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버텼다면 더 큰일날 일이 발생했따. 인천공항 활주로 문제로 그 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두 시간 정도씩 늦어졌다는 것!
아이들은 숙소를 들어 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갈 때부터 잔뜩 긴장했고, 몇 시간을 자고 난 후 아이들을 깨워서 숙소를 빠져나갈 때도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했다. 로얄오키드를 빠져 나와 공항으로 가는 차 안의 어둠 속에서 막내가 ‘엄마, 너무 무서웠어.’하고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면세점에는 무엇을 파는가.>
일단 기본적으로 남편과 나 둘다 쇼핑에 관심히 현저히 낮은 편이라, 유명한 쇼핑몰 같은 곳은 전혀 가지 않았다. 면세점도 그냥 눈으로 훑고 지나간 정돈데. 새벽 시간에 괌 면세점을 지나면서 남편이 말한다.
“자기야, 괌 면세점에는 장바구니도 판다.”
“뭐?”
아, 그것은 롱샴이라는 가방 브랜드였다. 관심이 없는 나도 알고 있는 브랜드다. 장바구니라니, 장바구니라니.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지마!
<아, 이건 어른들한테만 빡센 스케줄이군요!>
그러니까 일정은 그렇다. 오후 8시 20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괌에는 다음 날 자정 이후 도착, 마지막은 새벽 세 시 비행기. 마지막 날에 로얄 오키드에서 아이들이 서너 시간 자고, 다시 공항으로 가서 두 시간 정도 쉬고, 또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자는 험난한 비행코스. 겁났다. 새벽1시에 깨어있어 본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자다가 새벽 1시에 일어나면 어른이라도 짜증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두 시간 대기하라 하고, 또 좁은 비행기에서 네 시간 있으라 그러면 어린이들이 버티겠는가.
아아, 그러나 버티더군요. 로얄오키드에서 새벽 1시 30분에 깨울 때는 힘들어 하더니, 4시간 비행 후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평소와 같은 눈빛이었다. 평소처럼 9시간 정도 잔 맑은 눈빛이었다.
그러나 신랑과 나는, 사십대 우리 둘은. 이것은 지금 사람인가, 괴물인가,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냐, 꼬마들 너네는 누군데 날 닮았니. 여기가 어딘가. 공항인가, 도떼기 시장인가.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또 두 시간을 운전을 해야 하는데. 이러다 삼둥이를 태운 위험천만 고속도로 졸음 운전으로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니냐. 신랑과 나는 영혼을 괌에 두고 육체만 한국으로 온 몸과 영혼이 분리된, 한 마디로 맛이 간 상태.
그러니까 이런 스케줄은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성인들이 문제다. 성인들은 아이들을 시간 맞춰 깨워야 해서 쪽잠도 못 자고, 캐리어도 들어야 하고, 아이들도 케어해야 하고. 아니, 아니. 그냥 어린이들 보다 늙어서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이 오전 인천 공항에서 너무나 팔팔해서 다행스러우면서도 놀라웠다.
나는 남편의 졸음운전을 막으려고 운전석 옆에 결연하게 앉았으나, 30초짜리 결연함이었다. 내가 정신이 들었을 무렵 우리 차는 이미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선 후였다. 남편은 졸지 않기 위해 강냉이를 한 포대 씹어 먹은 후였다.
<그래서 삼둥이와 해외여행, 또 가시겠습니까!>
오브 코오오스~~~ 내가 가진 건 많은 자식, 게으름, 없는 건 돈, 시간이지만, 가진 걸 갖고, 없는 걸 채우면서 기회를 봐서 또 가고 싶다. 아마도 체력의 한계로 역동적인 배낭여행은 못 하겠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만 해도 충분히 역동적이다…. 떠나자, 삼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