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이 한 뺨씩 짙어지는 요즘입니다. 창가에 드리운 어둠이 깊고 가장 길다던 동짓날이 성큼 3주 뒤로 따라붙었기 때문입니다. 근래 들어 세시풍속이 고리짝 취급을 당하지만 누구나 목도하게 될 어둠의 깊이를 알게 된다면 자연의 순리에 고개를 끄떡이게 될 겁니다.
겨울 들어 밤이 깊어진 까닭은 봄부터 가을까지 농경사회에서 이어진 체력의 소모를 충분한 잠으로 보충하라는 의미였던 것이죠. 긴 겨울잠이 인간에게 보약이 되듯이 동물들도 척박한 겨울을 나기 위해 동면에 드는 이치입니다. 이렇듯 한밤중에 이룰 잠의 중요성은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을 재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요새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불면증 환자가 많아진 현실과 잠의 질 또한 현격하게 떨어진 현대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불면증은 아니지만 요즈음 새벽잠 시간대가 쪼그라들었습니다. 왜인지 어리둥절했습니다. 오래전 80대 직장 선배로부터 여기저기 몸이 아파 자주 깬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 역시 가끔은 골격부위의 통증으로 깰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만큼 잠의 질을 누리진 못하지만 내 또래에 비해서 괜찮은 수면을 취하는 편입니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새벽 5시에 자동으로 깨는데 며칠 전부터 3시나 4시 사이로 앞당겨진 일이 생겨났습니다. 한 번 깬 잠을 다시 이루려는 일은 헛수고일 뿐. 그 상황의 반복 전개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내친김에 즐기기로 했습니다. 향후 죽음너머로 긴긴 잠에 들 텐데 일시적으로 수면 시간이 준 듯 어떻습니까.
부스스한 얼굴을 펴고 제일 먼저 따뜻한 물 여러 잔으로 메마른 목을 부드럽게 적셔줍니다. 다음으로 책상 위에 널려있는 활자체에 마음을 담아 하루를 엽니다. 요즘 읽고 있는 건 『찬란한 멸종』입니다. 과학서인데 의외로 재미있어 술술 읽힙니다. 인간 탐욕에 의해 망가져가는 ‘인류세(人類世)’ 도래의 경종을 울리는 책입니다.
새벽 5시에 아파트 길고양이 돌봄에 선한 기운을 모은 까닭인지, 이어진 헬스장으로 향할 때 단정한 마음과 뿌듯함으로 벅차오르게 합니다. 오늘 하루의 시작도 나를 비롯한 주위의 돌봄에 지나치지 않았음을 안도하면서. 서있는 가로등 아래 드문드문 스치는 주민들의 몸짓 사이로 아랑곳없이 흩날리는 낙엽들. 가랑잎이 녹색인 채로 나뒹구는 낯섦과 뒤섞여 밟히는 낙엽의 이중주가 생생했던 그 새벽녘 길을 맘 쫑긋하며 걸어갔던 겁니다.
단지 그때 새벽길에서 매서운 초겨울의 맛을 몸에 고스란히 뒤집어쓴 결과로 새벽잠을 설친 원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11월에 들어섰지만 기온은 예년보다 높아 난방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방안이 스산하다 싶었으나 별생각 없이 보냈지요. 그랬던 2주 전인가 앞이마가 띵한 증상이 잦아들더니 급기야 지끈거렸습니다. 평생 두통을 모르고 살아 그 진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죠. 감기에 걸린 줄 모르고 며칠을 건넜습니다.
심한 상태가 아니라고 의사로부터 안심 처방까지 받아 연말의 특성상 중첩된 여러 모임에 참석하고 말았지요. 채식위주의 생활력을 지닌 채 연회장 분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했으나, 본의 아닌 과식으로 배앓이까지 했습니다. 감기약 복용의 중첩으로 가중된 증상은 잦은 병원출입을 키워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앓았습니다. 초겨울 새벽 찬 공기에 몸을 내던진 일은 미련한 일이었습니다. 80대 선배의 경우처럼 나 또한 몸 컨디션 조절 실패로 긴 잠에 이르지 못했을 터. 그 원인에 개연성이 큰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홀로 지내며 경계해야 할 점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 일이 늙은 내 몸에 해롭다는 점을 왜 생각해내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 왔듯이 뭐든 처리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이른 시간대의 돌봄으로 야기된 건강상의 소란함은 겨울 동안 낮시간대로 옮긴 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동반된 생각은 내 비록 권장 수면시간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깨어있는 순간을 포착해 몰입한 시간은 충분한 수면을 취한 것과 진배없다는 생각을 냈습니다. 이 또한 생활 명상의 효과인 것이죠. 명상은 잡다한 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순백의 시간입니다. 순백은 고단한 삶이 다가와도 성성해서 꺾이지 않고, 올곧은 성정이지만 부드럽게 대처하는 지혜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잡다한 일은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민과 걱정으로 몸을 병들게 해 소모적인 삶을 살게 할 뿐입니다. 그로써 불면의 시간이 만들어지고, 나쁜 잠의 질까지 조장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벗어나려면 포기해야 할 잡다한 일이 많아져야 하겠지요. 과도한 욕망의 끈을 내려놓은 일이기도 합니다. 잠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는 일에 즐거움이 따라야 하고 몰입의 순도까지 높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생활을 단순화시켜 몰입할 대상에 전력투구하는 생활만이 수면의 질을 높여 주리라 확신합니다.
2025년도 우리나라는 국민 5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또한 2022년 노인실태조사에서 국민들의 기대수명이 82.7세인 것과 달리 건강수명은 65.7세라 했습니다. ‘100세 시대’에 65.7세까지 건강을 보장받지만 나머지 30여 년은 한 가지 이상의 지병을 달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고달픈 한세상 살이 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꿋꿋이 견딜 힘을 주는 선도 높은 욕구 하나는 이래서 지킬 필요가 있지 않나요. 그로써 정신건강이 보장되고 불면증마저 없앨 실마리가 될 테니까요. 긴긴 겨울밤 눈 내리는 거리에서 군밤장수가 내뿜는 향기와, 지게에 지고 찹쌀떡을 외치며 지나가는 안온한 풍경이 뜬금없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그때나 지금이나 훈훈한 사람들의 지순한 인심이 그리워진 탓일 겁니다. 우리 서로가 지순한 주인공이 되어보는 건 어떤가요. 그와 같은 세상에서는 불면증 없이 잠 잘 자는 세상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