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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Mar 15. 2024

건강과 환상궁합, ‘좋은 습관’

  활동 무대에서 건강하단 말을 곧잘 듣는 편입니다. 체질 상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거나 약골인 사람은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 없이 규칙적인 생활리듬과 ‘좋은 습관’을 몸에 붙이면 대개 괜찮은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외부의 돌봄 없이 자라나는 나무처럼 절박함이 키운 의지와 기상이 꿋꿋하다면 저 하늘과 맞닿지 않을까요. 결심 여부에 따라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코앞에 전개된 현실만을 쫒는다면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겠지요. 결행을 미루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맛볼 수도 있습니다. 태어나 제대로 살아볼 기회가 평생에 한 번 주어질 뿐인데, 미적거리다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미루고 미루다 노년에 이르러 감행을 시도한다고 한들 저하된 체력과 젖어든 타성에 밀려 ‘좋은 습관’을 체화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음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좀 더 이른 나이 때부터 ‘절도 있는 루틴’과 ‘착한 습관’이 안착돼 조화로운 삶을 이룬다면, 이만큼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또 있을까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인간입니다. 남들보다 이른 시각에 어둠을 깨고 시작된 하루는 꽤나 특별한 느낌을 안깁니다. 사위가 어두컴컴하고 적막 고요함마저 깔린 거실의자에 앉아있으면 마음 안정에 깊이를 더해주더군요. 잠시라도 그 어둠의 파장에 몸을 맡깁니다. 일어나자마자 따뜻하게 덥힌 물을 마십니다. 따뜻한 물 여러 잔이 내장을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면서 변의마저 일으켜주는 게 아닌가요. 불 밝힌 커튼 사이로 하루가 무사히 열렸음에 합장하는 두 손입니다. 주변의 모든 감각을 깨우는 일과의 개시가 당연함을 넘어 쉬이 찾아드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 건 노년을 맞고 나서였습니다. 거창할 것도 없고 신박하지도 않은 나의 일상이지만, 바라는 그대로 이어가는 힘에 고무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지금 막 인생의 전성기를 걷고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요. 그런데요 이런 일상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관계의 절사가 뒤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절제된 감정에 힘이 실리듯 절제된 욕구만이 자신의 성을 쌓아갈 수 있으니까요. 일상에서 벌어지는 섣부른 ‘욕심’을 거두고, 잡다한 주변 일의 관여로 ‘화’낼 일을 만들지 않으며, 무의미한 일에 끼어들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겠노라 맹세하지만, 때로 궤도를 이탈하려 할 때에는 이내 알아차려서 그 순간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읽습니다. 수신된 메일이나 시민 단체의 글은 늘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달라는 주문을 마구 던집니다. 새벽에 배달된 신문에서는 요즘 세태의 흐름을 읽으며. 대중교통 이동 중에는 차 안에서 몇 줄이라도 책을 읽거나 오디오북으로 갈아타 듣습니다. 주로 인문학 도서입니다만 사회과학분야의 문지방도 넘나들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곁들여진 인문학강좌를 거쳐 알아가는 심오한 세상에 인도될 때마다 이 늙은이의 눈이 번쩍 뜨이며 환희에 젖게 합니다. 인문학은 살면서 제대로 알아야 할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연구하고 탐구하는 영역입니다.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자기화하려는 노력이 노년으로 갈수록 요구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이렇게 무궁무진한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여느 여행 못지않게 내 삶에 윤활유가 됨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로써 진리가 ‘나’를 사로잡을 때, ‘나의’ 영혼을 받쳐주고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곳으로 인도해 주었을 때, 훗날 더 오르고 싶은 경지로의 입덕도 기대할만하지 않겠어요. 향후 고독한 노년기에 머물 것을 대비해 고립되지 않도록, 다양한 매체가 이끄는 사유 세계로의 글 서핑을 해야 할 것 같군요. 


  홀로 있는 시간이 편안할 정도로 익숙합니다. 조용한 시간은 영혼 밝히는 순간으로 뒤집어 놓는 마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유가 의미 없는 소음과 잡념에서 벗어났을 때만 찾아든다고 했나요. 파스칼도 일찍이 ‘인류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요즘 사람들의 다수는 ‘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뿐더러 고요한 순간을 애써 외면하려 합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상태가 두려워서 하나의 행동에 이중 삼중의 일을 보탭니다. 이 같은 군중 속 소란함 속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나’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굳건한 의지, 이것이야말로 탁월한 ‘능력’이 아닐는지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질수록 이 같은 능력을 키울 기회가 배가되리라 확신합니다. 혼자의 시간을 잘 건너는 사람은 무리 속에 있어도 합리적인 조합을 일으킵니다. 왜냐면 그 능력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아, 주변에 배려하는 마음까지 생성해내는 까닭이지요. 이로써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는 여유를 지니게 되는 겁니다. 


  이 늙은이와 동반한 ‘좋은 습관’을 위에 열거해 보았습니다. 나와 환상궁합을 이루었지만 어찌 읽혔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일정에 치여 헬스장 출입이 뜸해졌습니다.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해서라도 잘 관리해야 하는 이 몸이니 오늘은 거르지 않겠습니다. 아파트 내 산수유나무 꽃봉오리가 잔뜩 부풀려져 있네요. 곧 피워낼 꽃의 기대에 한껏 반응하고 있는 몸입니다. 식물 색소의 하나인 카로티노이드는 색조를 띄우는 역할 외에도 사람들에게 유익한 영양소를 별도로 제공해준다는 점을 아시나요. 카로틴은 비타민 C 그리고 비타민 E와 합성되어 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을 제거해주는 항산화제 역할도 한다는 점이지요. 꽃들은 우리에게 무상 증여를 통해 보약 못지않은 영양소를 조건 없이 선사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고서라도 발걸음도 가볍게 양재꽃시장을 들려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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